[아주초대석] '90세 현역' 신동식 한국해사기술 회장 "명품백처럼 선박도 브랜드화 고부가·친환경 기술 집중해야"

윤동 기자입력 : 2021-06-17 05:05
돈·기술 다 있는 요즘 '조선산업 육성' 정부 의지 부족 아쉬워 '글로벌 최고 조선소' 이젠 낡아···스타일·시스템도 전부 바꿔야 수주로 中 이기려 애쓰지 말고 탈탄소 미래동력 개발에 주목을
오랜 기간 불황에 시달려온 국내 조선산업이 코로나19라는 변수로 때아닌 호황을 맞이했다. 올해 들어 국내 조선사는 일제히 수주에 성공하면서 낭보를 전하고 있다. 다만 이럴 때일수록 다가올 불황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 나이로 90세를 맞이한 신동식 한국해사기술 회장이 이 같은 의견의 주인공이다. 신 회장은 국내외에서 '조선공업의 아버지'로 평가받는다. 구순의 나이에도 그는 왕성히 활동하는 덕에 '가장 경험 많은 현역'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1960년대 비하면 지금은 천국···박정희 대통령 같은 강인한 의지 필요"

신 회장은 지난 9일 아주경제와의 대담에서 현재의 호황에 정신을 빼앗기지 말고 다가올 불황을 대비해야 한다고 봤다.

그는 "조선산업은 장기적인 사이클이 있는 산업으로, 일희일비하기보다는 국제적 호황을 맞이했을 때 불황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며 "호황에 정신없이 수주 이런 것만 신경 써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불황에 대비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거시적으로 문제를 예측하고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내다봤다. 다가올 불황을 넘어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신 회장은 "우리나라가 글로벌 최고의 조선소를 만들어놨지만 이미 그것도 40년이 지나서 낡았다"며 "조선소도 현대 기술에 맞춰 바꿔야 하고, 매니지먼트 스타일, 시스템도 다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런 것은 각각의 조선소에 알아서 맡길 것이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신 회장은 대담하는 내내 정부와 통치권자 차원에서 조선산업 육성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고 박정희 대통령과 만나 우리나라의 조선산업의 기틀을 세웠던 신 회장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지적이다.

그는 서울대 조선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로이드 등에서 근무하다 박 대통령을 만나 초대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 및 대통령직속 해사행정특별심의위원회 위원장(장관급)으로서 조선·해운·수산·항만 분야를 포괄하는 해사산업 전반에 대한 기획을 도맡아 했다. 이후 신 회장이 담당하는 영역은 제철·조선·석유화학·기계·전자·과학 기술 등으로 확대돼 갔다.

신 회장은 1960년대 우리나라의 경제 상황이 절망적이었다고 회고했다. 보릿고개에 국민이 굶어죽고 양철 하나도 만들기 어려운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1965년에 조선공업 중장기 발전계획을 만들어 대통령에게 보고했는데 다른 군인들과 경제전문가들은 다들 계획에 반대했다"며 "양철조각도 못 만드는데 무슨 수로 배를 만드냐 이런 목소리가 적지 않았지만 조선산업을 육성하려는 의지가 강했던 박정희 대통령이 나를 믿고 밀어줬기에 조선산업이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1960년대 상황에 비하면 지금은 상황이 너무 좋다고 설명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새로운 조선산업에 대한 발전을 충분히 준비할 수 있다는 시각이다.

신 회장은 "옛날 40년전 아파트랑 요즘 주상복합 아파트는 차원이 다르지 않으냐. 그런 차원의 더 발전된 조선산업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한다"며 "1960년대와 비교하면 지금은 돈도 있고 기술도 축적돼 있지만, 조선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정부 차원의 의지가 부족한 것 같아서 아쉽다"고 말했다.
 

신동식 한국해사기술 회장[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명품백처럼 가치 창조해야···중국과 경쟁하지 말자"

조선산업의 발전방안에 대해서도 신 회장은 똑 부러지는 의견을 내놨다.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더라도, 다른 사람이 아니라 우리가 조선산업의 미래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다른 사람이 만든 미래에 적응하려고 하는데, 가장 확실한 것은 내가 만드는 미래에 대응하는 것이 가장 확실하게 대비할 수 있는 것"이라며 "1960년대는 정보가 없었지만 지금은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다. 미래의 정보에 맞게 대비해 나가면 된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중국 등과의 경쟁에서 이기려 하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국이 잘하는 선종에서 경쟁하지 말고 우리나라가 더욱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는 "조선이라는게 참 여러가지 있는데 광석 운반선 이런 것까지 우리나라가 만들 필요는 없다. 중국이 광석 운반선을 잘 만들면 그쪽이 하라고 줘야 한다"며 "우리나라 재벌의 특성상 모두 다 하려고 하는데 이제는 그런 생각을 버리고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해야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석·박사 많은 우리나라는 중국이 못 만드는 원유운반선 등을 만들 수 있지 않으냐. 이 같은 기술력으로 더 빠르고 더 안전하고 더 친환경적인 그런 배를 만들어야 한다"며 "수주로 중국을 이기는 것보다 고부가가치·고기술 산업을 육성하는 것으로 시각을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 회장은 조선산업을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우선 브랜드화(化)가 필요하다고 봤다. 여성들이 명품 가방에 수십 배의 가치를 지불하듯이 국내 조선사가 만든 선박도 브랜드화해 가치를 창조해야 한다는 시각이다.

신 회장은 "중고선박 매매할 때 국내서 만든 선박은 다른 것에 비해서 두 배 가격을 받는 것을 보면 지금 거의 브랜드화의 단계로 가고 있는 것 같다"며 "선주들도 쓰다보면 고장도 안 나고 유지비도 덜 들고 하니까 국내서 만든 선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신 회장은 브랜드화를 위해서 친환경 등 일부 기술을 더욱 개발해야 한다고 내다봤다. 선박이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나 여타 독성 물질을 크게 절감할 수 있는 그런 기술을 완성한다면 다른 나라 선주들도 국내 조선사가 만든 선박을 우러러 볼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다.

◆"친환경 미래동력 R&D 집중···탈탄소·디지털전환이 미래 키워드"

신 회장은 기술 분야에서도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을 설득해 미국 원조로 과학기술처를 비롯해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한국과학기술원(KAIST), 과학기술정보센터(KORSTIC), 한국과학기술진흥재단을 설립하는 데 영향력을 발휘했다.

본질적으로 기술자였던 신 회장은 기술 관련 기업을 경영하는 것에 마음을 뺏겼다. 1971년 공직에서 물러난 그는 여러 대기업과 공공기관으로부터 러브콜을 물리치고, 1969년 설립 후 경영난을 겪고 있었던 한국해사기술을 인수해 경영자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신 회장이 오랜 기간 운영해온 한국해사기술은 국내 최초로 설립된 조선해양기술 전문 용역회사다. 50년 이상 기술력을 축적한 덕에 국내 유일한 자체 선형개발이 가능한 기술업체로 꼽힌다.

한국해사기술은 쇄빙선, 심해 탐사선, 핵폐기물 운반선, 친환경 선박 같은 특수선을 비롯한 2000척 이상의 선박을 설계했다. 감리를 맡은 선박도 1400여 척에 이른다. 또한 대우 옥포조선소, 삼성 거제조선소 등 국내외 35개국에 첨단 설비와 생산 시스템을 갖춘 초대형 조선소 25곳에 대한 건설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운영에 조언을 했다.

신 회장과 한국해사기술은 최근 암모니아·에탄올·수소·원자력 등 친환경 미래에너지 동력 선박 관련 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신 회장은 "이런 동력의 선박 기술을 5년 개발해야 할지 10년 개발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며 "그때까지 기름이나 액화천연가스(LNG)로 배를 움직여야 하는데, 여기서 이산화탄소나 이산화황 같은 부산물을 줄일 수 있는 기술도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래 사회가 '2D'를 중심으로 움직여 갈 것으로 내다봤다. 탈탄소화(Decarbonization)와 디지털 전환(DX)이 중요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신 회장은 "앞으로 사람들은 탄소를 줄여서 친환경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자기 일을 디지털로 전환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그에 맞지 않으면 삶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신 회장은 인류를 위해 기여한다는 이타심과 애인정신(愛人精神)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개인주의가 확산되고 있지만 반대로 점점 상호의존도는 높아지고 있어,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사회가 됐다는 진단에서다.

신 회장은 "배 밑바닥 용접하는 기술자가 열심히 일하지 않고 적당히 하더라도 일일이 검사할 수가 없다"며 "그래서 사람이 사람을 믿고, 그 사람이 자기 일을 사랑하고 열심히 일하는 그런 점이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미덕 같다"고 말했다.
 

신동식 한국해사기술 회장[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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