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장애인 표준사업장, 왜 A기업은 취재를 거부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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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영 기자
입력 2021-06-04 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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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사업장을 알리는 게 부담스럽습니다.”

자회사형 장애인 표준사업장을 운영하는 한 대기업에 취재를 문의하자, 돌아온 대답이다. 예상치 못했다. 본지 산업부는 지난 3월부터 3개월에 걸쳐 자회사형 장애인 표준사업장 실태를 담은 기획 <장애인과 함께 크는 기업> 시리즈를 진행했다. 그동안의 취재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준 기업도 있었지만, 생각보다 많은 기업이 부담스러워하며 취재를 거절했다. 일부 사업장은 취재불허 방침을 고수해 끝내 기사화 하지 못했다. ‘장애인 고용 창출’이란 좋은 일을 하고 있는데 왜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일까. 의아했다.

취재를 거부한 기업들은 대부분 그 이유도 명확히 말해주지 않았다. 그러다 한 기업 관계자는 계속 채근을 하자, “장애인 표준사업장을 만들긴 했지만 잘 운영하고 있지는 못하다”며 속내를 털어놨다. 장애인 고용 촉진 및 직업재활법에 따라 장애인 고용 의무를 지키지 않으면 기업은 매월 부담금을 내야 하는데, 이를 피하기 위해 면피성으로 하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아예 사업장을 설립하지 않고 부담금을 토해내는 기업도 적지 않다.
 

SK하이닉스의 장애인 표준사업장 '행복모아' 직원들이 방진복을 제작하고 있다. [사진=SK하이닉스 제공]


자산 총액 5조원 이상 대기업 71곳 중 장애인 표준사업장을 설립한 곳은 단 15곳에 불과하다. 당장 사업장을 마련해 장애인 고용 창출에 기여한 대기업은 충분히 칭찬 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장애인 표준사업장은 장애인들을 위한 특수 시설을 갖춰야 하고, 별도의 교육 프로그램도 필요해 더 많은 비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대기업이라도 쉽게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다.

반면 자회사형 장애인 표준사업장을 설립하고 싶지만 못하는 기업도 있다. SK그룹의 한 계열사는 과거에 사업장 설립을 검토했으나 결국 포기했다. 공장 등 제조시설이 없어 사업장을 설립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신 서울 본사에 시각장애인 안마사를 고용했고 임직원들은 매월 회사 안에서 안마를 받으며 피로를 풀고 있어 만족도가 상당히 높다.

결국 장애인 고용은 기업 스스로의 의지에 달렸다. 단순히 법적 기준을 지키기 위해, 정부에서 시키니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사회적 책임 관점에서 더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자사가 100% 지분을 가진 자회사형 표준사업장 ‘행복모아’가 2020년 기준 매출 200억원, 사원수 450명에 이를 정도로 꽤 큰 규모로 성장했다고 자랑했다. 단순히 시혜적인 사회공헌 사업이 아니라 말 그대로 어엿한 사업장 역할을 제대로 해, 모회사의 매출에도 기여하고 있다는 말이다.

한 사업장에서 근무 중인 장애인은 “이곳에서 일하며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사업장 운영이 단순히 비용의 문제일 수 있지만, 장애인 직원 입장에서는 어엿한 직업인이 되어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 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얻게 된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도 장애인 표준사업장의 설립 취지가 장애인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적 자립을 지원하는 역할이 크다고 강조한다. 더 많은 장애인들이 일할 수 있도록, 기업들의 보다 적극적인 태도 변화를 바라며 이번 기획 시리즈를 시원섭섭하게 마쳤다.

 

[장은영 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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