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게 무슨 성희롱? NYT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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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석 과학작가, ‘나는 과학책으로 세상을 다시 배웠다’ 저자.
입력 2021-05-1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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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랑구르 암컷은 왜 자기 새끼를 죽인 수컷을 유혹했을까?

[최준석 과학작가, 언론인] 


[최준석, 과학의 시선] 미국 신문 뉴욕타임스가 보내는 이메일 뉴스 레터를 매일 받아본다. 아침 6시쯤이면 나의 이메일 박스에 쏙 들어온다. 제국의 최고 신문인지라, 뉴욕타임스가 전하는 세계 이야기와 이 신문 편집자들의 시선을 의미 있게 본다. 5월 13일 한국 발 뉴스가 한 개 들어있었다. ‘한국 경찰이 코미디언 박나래를 성희롱 혐의와 관련 조사하고 있다. 그녀는 동영상 방송 중에 남자 인형의 옷을 벗기고, 부적절한 말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South Korean police are investigating Park Na-rae, a comedian, for “sexual harassment” for undressing a male doll and making “inappropriate” remarks during a skit).

제국의 신문은 한국의 정치 경제에는 관심 없고, 한 명의 여자 코미디언에 관심을 표시한다.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링크를 따라 들어가 기사 본문을 읽었다. 이런 내용이다. “박나래 코미디언의 유튜브 쇼는 서양 코미디 기준으로 보면, 공격적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그녀의 나라 한국에서는 스캔들이 되었다. 분노한 젊은 남자들이 그녀를 성희롱이라고 고발했고, 경찰이 조사하고 있다. 스캔들은 몇주 새 주요 뉴스가 되었으며, 박씨의 경력에 오래 피해를 줄 것으로 보인다. 그는 2년 전 넷플릭스 스페셜의 호스트가 된 한국의 첫 여성 코미디언이기도 하다.”

고백하자면, 나는 박나래 소동을 잘 몰랐다. 소식을 접했는지 모르나 주목하지 않았고,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그러다가 ‘딴 나라’ 언론을 보고서야, ‘이 나라‘에서 일어난 일을 찾아보게 되었다. 구글을 검색해 보니, 나무위키에 ’박나래 성희롱 사건‘이라는 단어 페이지가 만들어져 있었다. 나무위키에 페이지가 생겼다는 건, 한국인이 그만큼 관심이 많은 사안이라는 걸 말한다.

박나래씨 관련 문제는 지난 3월 24일 유튜브 프로그램 ’헤이나래‘ 동영상이 발단이다. 나무위키에 따르면 “요약하자면 남자 인형의 팔을 늘려 사타구니 사이로 집어넣어 남성의 성기같이 보이게 하며 희롱한 것이다.” 고소한 사람들은 그걸 성희롱이라고 보고 있고, 뉴욕타임스의 시선은 “그게 무슨 성희롱? 이해하기 힘드네, 한국”이라는 거다.

박나래씨 논란에는 남자와 여자라는 두 개의 성이 등장하고, 섹스라는 인간 사회의 민감한 이슈가 그 가운데에 있다. 각각의 이슈도 폭발적인데, 두 개의 뜨거운 이슈가 만나니, 그 폭발력이 더 하다. 많은 한국 여성의 시선은 이런 걸로 보인다. “섹스에 대해 여자가 남자처럼 공개적으로 발언하니 남자들은 불편한가? 남자 코미디언 신동엽은 ‘19금 개그’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는 구설수에 오르지 않는다. 왜 여자 코미디언만 문제 삼느냐? 여자의 자유를 남자가 억압하고 있는 거 아니냐.”
인간사회는 성에 관해 ‘여자는 수동적이다‘라는 식으로 설명해왔고, 또한 그래야 한다는 식으로 가르쳐왔다. 하지만 여자의 새로운 관점은 이를 강력히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과학에서도 그런 게 보인다. 새로운 세대의 여성 과학자가 나오면서 ’남자의 시선으로 편향된 과학‘을 흔들고 있다. 물리학, 화학보다는 특히 생물학에서 그런 게 있다.

영장류 학자 새러 블래퍼 허디(미국 캘리포니아대학 UC Davis 교수)는 ‘다윈주의 페미니스트’라고 불린다. 허디는 1971년부터 1979년까지 인도 라자스탄에 가서 랑구르 원숭이의 영아 살해 행동을 연구했다. 그리고 그는 “1970년대 초반에도 다윈주의자는 여전히 암컷이 성적으로 수동적이며 ‘수줍어한다’(coy)”는 가정을 널리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런데 가서 보니) 암컷 랑구르 원숭이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라고 말한다.(허디의 1999년 책 <어머니의 탄생>).

라자스탄 아부 산(Mount Abu)의 랑구르 원숭이가 새로운 집단에 침입해 어린 새끼를 죽인다는 건 1962년 일본 교토대학의 영장류 학자 스기야마 유키마루(杉山幸丸)가 최초로 관찰, 학계에 보고했다. 태어난 새끼 전체의 33%를 침입자 수컷들이 살해했다는 보고는 이후에 나왔다. 침입자 수컷은 왜 어린 새끼를 죽이는 것일까? 남자 영장류 학자들은 대체로 새끼에 대한 폭행이 스트레스 상태에 있는 동물들이 무작위적으로 벌이는 행동이라는 식으로 해석했다.

허디는 다르게 보았다. 새로운 수컷들은 뚜렷한 목표를 갖고 젖먹이 새끼를 데리고 있는 어미를 쫒아다니며 공격하고 있었다. 수컷 랑구르는 알고 있었다, 젖을 빠는 새끼를 죽이면 그 암컷이 빨리 새로운 임신할 수 있는 상태에 들어갈 수 있다는 걸. 그래서 자신과 짝짓기를 하면 자기가 번식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놀라운 건 이에 대한 암컷의 대응 행동이다. 암컷은 뜻밖에도 낯선 수컷의 살해 행동에 공모자인 걸로 나타났다. 어미들은 자신의 새끼를 죽인 바로 그 수컷들을 유혹하고, 함께 번식했다. 랑구르 수컷은 먼저 암컷의 유혹을 받지 않으면 교미하지 않는다. 랑구르에서는 강간 사례가 보고된 적이 없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새라 허디는 암컷의 행동이 궁금했고, 결국 그건 ‘적응 행동’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암컷 입장에서는 집단 내 다른 암컷과의 경쟁을 감안하면 새로운 수컷과 짝짓기를 미룰 수 없다. 수컷이라고는 점령자밖에 없는 상태에서 자신이 배란을 미루면 미룰수록 유전적인 손해가 된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더 많은 자식을 낳아 기르려면 새로운 수컷 점령자와 ‘공모’해야 한다.

또한 랑구르 암컷들은 다수의 수컷들과 짝짓기를 하고 있었다. 암컷이 성적으로 수줍다고 하는데, 이들은 수컷들과 교제만 해도 되는데 왜 짝짓기까지 하는 것일까? 그건 자신의 새끼를 수컷들의 공격으로부터 지키기 위해서다. 수컷은 자신이 짝짓기를 한 암컷이 낳은 새끼는 거의 죽이지 않는다. 그러니 암컷은 많은 수컷으로부터 자기 새끼를 지키기 위해 가능한 많은 수컷과 짝짓기를 해야 한다. 허디는 “20세기 말이 되었을 무렵 사회생물학자는 암컷이 수동적이거나 성적으로 수줍은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걸 밝혀냈다”고 말한다. 그는 “자기희생적인 어미는 드물다. 인간 어머니도 자신의 생존과 번식 사이의 타협에서 균형을 잡는다”라고 말한다.

버지니아 헤이슨은 미국 생물학자(매사추세츠 주 소재 스미스 칼리지 교수). 포유류 번식 시스템의 진화를 연구한다. 그가 2017년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 출판부에서 낸 책 <포유류의 번식-암컷 관점>이 올해 한국에 번역, 소개되었다. 포유류 암컷의 번식 관련 연구를 나온 걸 정리(review)한 책이다. 버지니아 헤이슨의 책은 앞서 보았던 <어머니의 탄생>과 또 다르다. 새라 블래퍼 허디보다 그는 앞으로 더 나갔다. 책을 열면 “암컷 포유류는 그들의 번식에 대해 비범한 통제권을 갖고 있다. 짝짓기와 수태뿐만 아니라 자식의 생존, 성장, 발달의 중요 측면을 그들이 조절한다”라는 문장이 나온다. 그리고 이어 “그래서 암컷 관점을 취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암컷의 관점은 푸대접을 받아왔다”라고 헤이슨은 주장한다. 그 말에서 강한 도전적인 에너지가 느껴진다.

그는 생물학자가 사용해온 일부 단어를, 아리스토텔레스 이후로 사용된 ‘남성 중심적 용어’라며 거부한다. ‘유산’(miscarriage), ‘수정’과 같은 익숙한 용어가 그 예다. 헤이슨에 따르면, ‘유산’이란 용어는 태아를 유산한 책임이 태아를 잘못 배달(miscarriage)한 어머니에게 있음을 시사한다. 태아 자체에 결함이 있을 가능성이 더 크고 실제로 그런 때인데도 ‘잘못 배달(유산)’했다는 단어를 사용하는 건 잘못이다. 그래서 ‘배아 거부’(embryo rejection)이라는 용어가 더 적절하다. 또 ‘수정‘이란 단어는 젠더 중립적이 아니기 때문에 거부한다. “(수정이란 단어는) 수컷은 능동적이고 암컷은 수동적이라는 울림을 바닥에 깔”고 있다. 대신 ’수태‘라는 단어를 선호한다. 또 ’수정란‘ 대신 ’접합자‘를 선호한다. 같은 맥락에서 책에는 ’자궁(子宮)‘대신 포궁이란 단어가 사용된다. ’아들의 집‘이라는 자궁이 아니라 ’세포의 집‘이라는 포궁을 쓰고 있다.

우리는 남자-여자의 짝짓기 이후 수태가 되는 과정을 흔히 ‘정자들의 달리기 대회‘라는 은유로 표현한다. 헤이슨은 이를 강력히 거부한다. 전통적인 생각은 가장 빨리 헤엄칠 수 있는 정자가 유리하다는 것이다. 헤이슨은 “정자 경주 가설은 더는 옹호할 수 없다”라면서 “정자는 정액질에 저장된 약간의 에너지를 제공받기는 하지만, 자체의 힘으로 수태의 자리까지 여행할 에너지 자원도 그리고 방향을 정할 능력도 없다. 다행히 액체의 역동성과 암컷 생식로의 운동성이 이런 결함을 무마해준다”라고 말한다. 예컨대 포유류의 경우 일반적으로 정자가 난관에 도착하려면 생식로의 수축과 생화학적 정자 인식이 필요하다. 그리고 수많은 방법으로 암컷의 생식로는 정자의 통행을 허용하거나 보조하거나 차단한다.

여자 생물학자의 시선으로 보면 오늘날 학교 성교육은 구태의연하다. 정자 경주 가설을 여전히 가르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두 아들이 있는데, 둘째 아들이 어느 날 유치원에 다녀오더니 엄마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러면 형이 1등하고, 제가 2등한 것이에요?”

박나래씨의 행동이 부적절했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2019년에 한 스탠드 코미디를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 ‘박나래의 농염주의보’라는 제목이다. 그는 코미디를 수백 명 앞에서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자신의 스탠드 코미디가 영상으로 제작돼 넷플릭스에 올라가면 “몇 개국에서나 (별 탈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지 모르겠다”. 그는 자신이 경계를 허물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면에서 박씨는 또 다른 혁명가다.

<모세오경>의 첫 번째 책 ‘창세기’ 5장 6절은 “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라고 말한다. 여자의 계보는 말하지 않는다. 이런 ‘남자의 나라’는 지구상에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2500년, 3000년 전의 현실일 뿐이다. 한국 남성은 새로운 현실, 달라진 현실에 적응해야 한다.

 

[랑구르 원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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