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혁신 앞서 본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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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현아 기자
입력 2021-04-24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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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10기가 인터넷 속도저하 논란 관련 유튜버 잇섭의 영상 화면 갈무리. ]

최근 지인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지인은 게임에 진심인 사람이다. 명절만 되면 지방에 거주하는 부모님댁에 내려가는데, 서울 집에서 쓰던 컴퓨터 본체를 아예 떼서 들고 갈 정도다. 최적의 게임 환경을 위해서다. 컴퓨터 사양 이외에 그는 인터넷 속도도 중시한다. 지인네 부모님 댁에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 상품에 가입해드린 이유기도 했다고 한다. 열심히 서울에서 들고 간 컴퓨터 본체를 모니터와 연결한 뒤, 게임 셋팅환경 조성을 위한 마지막 단계로 그는 매번 인터넷 속도를 점검했다.

측정결과는 매번 가입한 상품이 제공하기로 했던 속도의 절반에도 훨씬 못 미쳤다. 지인은 매번 고객센터에 전화했고 인터넷 속도가 회복되는지 확인한 뒤에야 게임을 즐겼다. 1기가 인터넷 서비스 상품에 가입한 서울집에선 10분이면 다운로드받을 수 있던 게임이 부모님댁에선 6시간이 넘게 걸린 적도 있다고 했다. 이처럼 유튜버 잇섭이 던진 KT의 10기가 인터넷 속도 저하논란을 두고, 온라인 커뮤니티는 물론 주변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증언이 잇따른다.

이는 허점투성이 제도 탓이다. 정부는 2002년 8월 초고속인터넷 품질보장제도(SLA)를 도입했다. 모든 인터넷 서비스에 대해 통신사들이 공지한 속도의 30~50% 수준의 최저보장속도를 약관에 규정하도록 했다. 최저보장속도 이하로 속도가 나오면 요금감면과 해약 등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LG유플러스의 초고속 인터넷 품질측정 서비스 이용화면. LG유플러스는 해당 서비스를 사용해 고객이 30분 간 5회 이상 측정한 뒤, 측정횟수의 60% 이상이 최저속도에 못 미칠 경우 보상한다고 이용약관에 명시하고 있다. 500메가 인터넷 상품의 속도 측정값은 300Mbps를 넘지 않지만, 최저속도는 150Mbps다. 

문제는 최저보장속도 이하로 서비스가 제공되는지는 고객이 직접 확인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KT뿐만 아니라 이통3사 모두 고객에게 이를 고지하지 않는다. 지인처럼 평소 데이터 이용량이 많은 소수 고객 정도나 주기적으로 속도를 점검할 뿐, 어떻게 측정하는지, 속도를 측정해야 하는지조차 모르는 고객도 태반일 것이다. 이통사들이 일단 인터넷 속도를 제한하고, 항의가 들어온 뒤에야 복구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 배경이다.

최저 30% 수준까지 설정할 수 있는 최저보장속도의 기준 자체도 낮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에 논란이 된 KT의 10기가 인터넷 요금제의 최저보장속도는 3Gbps다. 10기가 인터넷 상품에 가입한 뒤 절반에도 못 미치는 3Gbps 이하까지 속도가 떨어진 상황에서만 이동통신사에 보상을 요구할 수 있는 구조인 셈이다. 최저보장속도 제도를 느슨하게 운영한 정부도 논란을 자초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KT도 정부도 부랴부랴 후속대책을 마련했다. KT는 10기가 인터넷 이용자 대상으로 조사한 뒤 오류를 확인하고 즉시 수정했다고 밝혔다. 방통위는 이번 논란을 계기로 KT 이외에도 SKT와 LG유플러스의 인터넷 상품까지 전수조사하겠다는 방침이다. 과기정통부는 국내 현황과 해외 사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이용약관 등 제도개선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이번 논란이 인공지능(AI)와 같은 화려한 기술부터 꺼내들고 혁신을 외치기에 앞서 기본부터 돌아보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차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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