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영 칼럼] 도전받는 반도체 한국...체력 키울 비책 뭡니까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김재영 고려대 교수
입력 2021-04-22 20:13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김재영 고려대 융합경영학부 교수]


어렸을 적 기억에 가장 답하기 힘들었던 질문이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는 물음이었다. 아마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 모두 이러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어떻게 답을 해야 하나? 사실 이러한 질문은 대답 자체가 어렵다기보다는 답을 한 이후가 두려운 것이 사실이다. 장난스럽게 웃으며 하던 질문이 현실 속 지금 우리 기업들에 직면하였다.

지난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웨이퍼(wafer)를  꺼내든 채 반도체 인프라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삼성전자와 대만의 TSMC 등 주요 반도체 회사 대표들과의 화상회의에서 미국 내 반도체 투자를 확대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미국이 구축하고 있는 반도체 가치동맹 밸류체인(Alliance Value Chain, AVC)에 참여하라는 것이 그 이야기이다. 그 뉘앙스를 살펴보면, 말이 요청이지 미국인지 중국인지 선택하라는 무언의 엄포인 것이다.

미국 대통령이 반도체 업계 회의에 모습을 드러낸 것 자체가 미국의 반도체에 대한 전쟁의 서막을 알리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상황이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은 아니다. 중국은 2015년 ‘중국제조 2025’라는 마스터플랜 속에 ‘반도체 굴기’를 선언하였다. 반도체 핵심 설계 기술을 확보하고 칩을 자체 생산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반도체 기업에 투자를 단행하였다. 하지만, 미국의 제재가 발목을 잡았다. 초기 미·중 간의 반도체 전쟁은 우리 기업들에 좋은 기회로 여겨졌다.

하지만, 트럼프에 이어 바이든 대통령이 현실판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질문을 하면서 오히려 문제는 심각해졌다. 지금은 쉽게 웃을 수 없는 상황이다. 회의에 참석한 삼성전자는 미국뿐 아니라 중국에 대규모 공장을 가지고 있으며, 현재로서는 미국보다는 중국 수출비중이 높다는 점이다. 최근 G2로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과 이를 견제하려는 미국의 싸움에서 기업의 입장에서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를 비롯한 국내 기업들이 반도체 영역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지만, 미국은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의 50% 가까이 장악하고 있는 반도체 선도 국가이다. 중국 역시 반도체 산업을 사람의 심장에 비유하며 반도체 산업이 갖는 전략적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우리로서는 고래 싸움 속의 새우 신세가 되었다. 트럼프 행정부에서부터 보호무역주의를 강조하였고, 이후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탈세계화의 흐름 속에 미·중 간의 무역전쟁은 더욱 본격화되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사태를 경험하면서 중국 중심의 글로벌 공급망은 변화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한국은 대중국 교역 의존도가 높아 공급망의 전면적인 탈중국화 또는 축소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사정이 이런데, 국내 언론은 문제의 본질을 오도하고 있다. 지난 16일 국내 경제단체장들이 홍남기 경제부총리를 만나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사면을 건의했다 한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장들 역시 같은 의견을 내세우고, 언론들은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사면을 최고의 대책으로 언급하며 여론 몰이에 나섰다. 어쩐지 의도가 다분해 보인다. 막말로 이재용 부회장은 엄마인지 아빠인지 결정할 수 있는가? 아니면 미국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수용해야 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것인지 의문스럽다.

그간 우리 정부는 시대적 흐름을 알고 있었지만, 현재 상황에서 선택을 미루어 왔다. 작년 우리정부는 대일본 수입 의존도가 높았던 소부장 품목을 국산화 및 글로벌로 확대함으로써 공급망의 재편을 위한 투트랙 전략을 진행하였다. 다시 말해 엄마와 아빠 둘 다 좋다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이번 바이든의 요청은 근본적인 전략의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

이제 반도체는 미국에 의해 국제적인 안보 이슈로 변화되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회의 중 반도체를 더 이상 비즈니스가 아닌 국가적 안보 문제로 보는 미국 정부의 입장을 다시금 명확하게 드러냈기 때문이다. 만약 이러한 상황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중국까지 자국에 반도체 공장을 확장하라는 요구를 하게 되면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중국과의 교역량은 미국과 일본을 합친 것보다 많다. 무역 흑자도 중국이 최고이다. 많게는 600억 달러, 적게는 300억 달러 수준이다.

불확실성은 경제질서의 새로운 개념을 필요로 한다. 제대로 된 경영자라면 실리를 따져 시장을 우선적으로 고민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치·외교 및 국제적 안보의 이슈라면, 우리로서는 면밀한 준비가 필요하다. 본 사안의 본질은 미·중 갈등에 따른 불확실성의 증가에 있다. 미국의 기술력과 중국의 시장성을 앞세운 보호무역주의 속에 한국 반도체 산업이 나아갈 방향을 찾는 것이 시급한 문제이다. 지금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경쟁은 글로벌 산업 지형을 자국의 중심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데 있다. 반도체는 그 시작일 뿐이다. 미국은 첨단 부품 공급망에서 중국을 제외시킴으로써 오랜 기간 반도체 굴기를 외쳐온 중국의 반도체 생산능력과 기술역량을 제한,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을 억제하는 것이 중요한 목표 중 하나이다.

국제 정세 및 여건 변화에 맞춰 우리 사회도 국제적 흐름 변화에 적응하고, 이번 사태에 대해 임기응변 식의 근시안적 해결책이 아닌, 우리 산업의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 단지 삼성전자라는 기업이 어떻게 해줄 것을 바랄 것이 아니라 국가가 나서야 할 때이다. 우리 기업들의 생태계가 보다 강건성을 가지고, 위기에 직면하더라도 크게 타격을 받지 않는 기업 구조와 기능을 유지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

총성 없는 전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전 세계가 코로나로 인해 관심이 쏠려 있는 사이, 중국과 미국 간의 무역경쟁은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4월 현재까지 코스피 지수가 3200선까지 올랐으며, 코스닥은 이미 꿈의 1000선을 넘어섰다. 외국인 투자가들의 순매수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그 수요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반도체, 배터리 등에 집중되어 있다. 이들 역시 미·중 간의 무역전쟁은 매우 불안한 요소이다. 미국의 구상 속에 한국은 핵심 부품 공급을 위한 중요한 동맹국이자 세계 최대 반도체 생산지이다.
지금은 우리 기업들이 시대적 변화 속에서 위기에 직면하더라도 이를 헤쳐 나갈 수 있는 리더십을 보여주어야 할 때이다.
 
*웨이퍼는 실리콘, 갈륨 아세나이드 등을 성장시켜 만든 단결정 기둥을 정당한 두께로 얇게 썬 원판으로 반도체 집적회로의 핵심재료이다.
 

김재영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경영정보학과 ▷고려대 경영학 박사 ▷한국정보시스템학회 이사 ▷4단계 BK21 융합표준전문인력 교육연구단장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