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뷰] 차이나머니, 문화 잠식의 독(毒) 될 수도

기수정 문화팀 팀장입력 : 2021-04-05 00:00

[사진=CJ ENM 제공]

우리나라 편의점에서 중국기업의 인스턴트 훠궈를 먹는가 하면, '한국식 비빔밥'이라고 적힌 중국기업의 제품을 도시락이라며 내놓는다. 편의점 유리창에는 중국 포스터들이 잔뜩 붙었다. 버스 정류장에는 국내에서 서비스되지 않는 중국 쇼핑몰 광고가 크게 걸렸다.

우리나라에서 인기리에 방영됐거나 방영 중인 드라마 2편, tvN '여신강림'과 '빈센조'에서 보여준 장면들이다. 해당 장면이 송출된 직후 드라마 제작사를 비롯해 배우들은 큰 홍역을 치렀다. 

중국기업의 자본이 투입된 데 따른 간접광고(PPL, Product PLacement)일 뿐인데, 무엇이 그토록 시청자들을 뿔나게 한 걸까. 

잠시 2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자. 중국은 동북 3성(헤이룽장성, 지린성, 랴오닝성) 역사·문화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겠다며 2002년부터 5년 동안 막대한 돈과 수많은 학자를 동원해 연구작업을 추진했다. 이것이 바로 '동북공정'이다. 이 과정에서 중국 정부는 고구려를 비롯해 고조선, 발해의 역사를 크게 왜곡했다. 

오래전부터 고구려를 독립된 나라가 아니라 중국의 지배를 받은 지방 정권이라고 주장해 온 중국이 그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벌인 일이다.

중국의 뜻대로 된다면 우리 민족 최초의 나라인 고조선부터 고구려와 백제의 뿌리인 부여, 우리 역사상 가장 강대했던 고구려, 고구려 뒤를 이은 발해 등까지 모두 중국 역사가 되어 버린다. 이것이 우리 국민이 분노하고, 우려한 이유다. 

중국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최근에는 모바일 게임과 드라마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통해 김치, 비빔밥 등 음식부터 한복, 갓, 부채춤에 이르기까지 우수한 우리 전통문화를 중국의 것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문화 동북공정'을 펼치는 것이다. 

급기야 중국은 '차이나 머니'를 들고 드라마와 영화, 예능 프로그램을 넘어 웹툰에 이르기까지, 콘텐츠 속 배경과 명칭, 로고, 물건 등을 이용한 PPL을 통해 국내 문화 콘텐츠 속에 스며들었다.

드라마나 영화를 제작할 때 막대한 제작비 조달이 절실한 콘텐츠 제작사 입장에서는 달콤한 '차이나 머니'를 아무런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고, 그렇게 중국의 문화 동북공정은 국내 대중문화계를 서서히 잠식하려 했다. 

중국의 문화 동북공정에 화가 날 대로 난 국민의 분노를 정점으로 끌어올린 것은 다름 아닌 판타지 사극 '조선구마사'. 

판타지 드라마에 실존 인물인 태종, 충녕대군(훗날 세종)을 그대로 차용한 것까지는 좋았다. 이들을 폄훼한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태종을 폭군으로 묘사하는가 하면, 충녕대군이 서양 신부의 시중을 들게 하고, 목조(이성계의 고조부)를 비하하는 대사까지 넣었다. 시대 배경이 조선임에도 불구하고 중국 소품과 음식이 대거 등장했다.

여론을 외면한 채 방영한 이 드라마는 불 난 집에 기름을 들이붓는 꼴이 됐다. 

방영 중단을 요구하는 국민 청원이 등장했고, 광고사들은 손절했다. 결국 방영 2회 만에 폐지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겪었고, 1000억원이 넘는 제작사 시가 총액은 증발해 버렸다.

엄청난 제작비를 감당해야 하는 콘텐츠 기업과 글로벌 시장을 타깃으로 삼는 연예기획사 등 국내 기업 입장에서 큰손 중국, 그리고 이들의 자본은 무척 달콤했을 것이다. 투자 유치뿐 아니라, 중국 시장을 발판 삼아 해외 진출의 기반을 다질 수 있으니까.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백범 김구 선생이 꿈꾼 문화강국은 이미 실현됐다. 한국 문화 콘텐츠는 K-팝, K-드라마, K-영화 등을 통해 전 세계에 전파되며 그 위상을 확고히 한 지금이다. 

하지만 세계적인 파급력을 가진 한류 콘텐츠를 타깃 삼은 중국의 문화 공정 속내를, 우리는 왜 미처 들여다보지 못했을까.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며 안타까운 마음을 떨칠 길이 없다.

막대한 제작비를 감수하기 위해 중국의 자본력에 기댈 수밖에 없는 드라마 업계의 사정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중국은 민간 회사를 내세워 PPL 등의 재정적 지원을 이유로 중국의 역사·문화 공정에 이용하려 할 수도 있다는 것을 항상 경계할 필요가 있다. '차이나머니'의 달콤함은 우리의 문화를 잠식할 수도 있는 무서운 '독'을 품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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