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 첫 금융위기는 터키?...에르도안 장기 집권에 터져버린 리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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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현 기자
입력 2021-03-22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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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 성장 내세운 장기 집권 야욕에 경제 구조 취약해져

  • 고성장 실패로 인플레이션 발생하자 중앙은행 고금리 탓

터키 리라화 가치가 곤두박질치면서, 터키발 연쇄 외환위기 가능성인 '터키쇼크' 가능성이 또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고(高)성장 정책이 가져온 높은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부작용과 함께 터키중앙은행(TCMB)의 신뢰성이 흔들리면서다. 21일(현지시간) 한때 미국 달러화 대비 터키 리라화의 가격은 달러당 8.4836리라까지 추락했다. 전날 1달러에 7.2리라 수준이었던 리라화는 하루 사이 17%나 급락한 것이다.
 

미국 달러화 대비 터키 리라화 가격 추이.[자료=인베스팅닷컴]

 
시장 불안 잡았던 중앙은행 수장 4개월만에 교체

파이낸셜타임스(FT)와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은 이날 리라화 불안세의 원인으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을 지목했다. 전날인 20일 에르도안 대통령은 나지 아발 터키중앙은행 총재를 4달 만에 전격 경질하고 충성파인 사합 카브치오글루 전 의원을 임명했기 때문이다. 이번 경질을 포함해 지난 2년 동안 3번이나 중앙은행 총재를 교체하면서 외환시장에서 터키 리라화의 변동성은 극대화했다. 

앞서 지난 2018년 8월 당시 리라화 가치는 일시적으로 전일 대비 18%가량 하락하며 신흥국에 연쇄 외환위기 불안세를 불러온 '터키 쇼크'가 발생하기도 했으며, 지난해 11월에는 역대 최저치인 달러당 8.5876리라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번 경질은 현 아발 총재가 시장의 호평을 받아왔던 인물이었기에 시장에 던진 충격이 더 컸다. 지난해 11월 취임한 아발 총재는 지난 4개월 동안 두 차례(2020년 11월, 10.25%→17%·2021년 3월, 17%→19%)에 걸쳐 무려 875bp(8.75%p)의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시장은 지난해부터 이어진 높은 인플레이션 수준을 억제하기 위한 강력한 고금리 통화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아발 총재는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어 더 높은 수준으로 금리 인상을 단행한 것이다.

이같이 과감한 행보로 아발 총재는 단 4개월 간에 지난해 외환위기 직전까지 몰렸던 터키 금융시장을 정상화했으며, 시장의 신뢰를 회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향후 시중 예금 이자율과 인플레이션 수준이 거의 일치하면서 추가 물가 상승을 제어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지난 2월 15.61%까지 치솟은 터키의 인플레이션이 오는 4월까진 이어지겠지만, 터키중앙은행의 고금리 정책으로 올 연말에는 9.4% 수준까지 낮아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었다. 
 

나지 아발 터키중앙은행 총재.[사진=로이터·연합뉴스]

 
고성장 좇는 에르도안, 고금리 정책에 딴지···외환불안 가중  

아발 총재의 고금리 정책은 경제성장 성과를 내세워 장기 집권을 원하는 에르도안 대통령으로서는 못 마땅한 행보였다. 고금리 정책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효과는 있지만, 경제 성장의 발목도 잡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에르도안 대통령 측은 기초 경제 원리에 반하는 주장까지 내세우며 아발 총재를 경질했다. 인플레이션 상황에 시민들이 불만을 표하자 그 원인을 오히려 인플레이션을 안정시키는 중앙은행의 고금리 정책이 문제라는 앞뒤가 안맞는 주장을 편 것이다. 인플레이션은 통상 저금리 정책으로 유발됨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중앙은행에 경제 정책 실패의 책임을 돌린 것이다. 

카브치오글루 신임 총재 역시 임명 전 터키 유력 언론의 칼럼니스트로서 '저금리가 인플레이션을 낮출 것'이라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반(反) 경제학적 주장을 담은 사설을 쓰기도 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사진=AP·연합뉴스]


그러나 현재 터키의 높은 인플레이션 상황의 근본 원인은 일명 '에르도가노믹스'(erdoganomics)라는 고성장 정책의 실착에 있다.

고성장을 목적으로 대폭 통화 가치를 내리고 시중에 돈을 풀었던 각종 경제 성장 정책이 당초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하면서, 실제 경제성장률보다 물가 상승률이 더욱 높아졌기 때문이다.

지난 2018년 '터키쇼크' 상황을 예측한 경제학자인 셀주크 고쿨룩은 지난 5일 블룸버그에서 "연 6~7%였던 경제 성장폭은 연 3~4%로 낮아지고, 호황과 불황의 주기(사이클)는 5년에서 1~2년으로 빈번해지고 있다"면서 에르도가노믹스 실패의 부작용을 지적했다.

그럼에도 에르도안 대통령은 오는 2023년 재선을 앞두고 있기에 올해와 내년에도 에르도가노믹스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코로나19 경기부양책 중 하나로 '무이자 부동산 대출 제도'를 도입했다.

이슬람·민족주의 정치 성향을 강조하기 위해 '무이자 대출'이 원칙인 이슬람 금융 제도를 확대한다는 명목이지만, 터키의 중추 산업으로 꼽히는 건설업과 부동산 경기를 활성화하려는 목적에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무이자 대출이 시중에 돈을 또 풀면서 인플레이션 상황을 더 악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아울러 외국자본을 끌어와 대형 인프라 프로젝트를 발주하는 에르도가노믹스식 부양도 경제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 이같은 방식은 높은 인플레이션과 무역 적자를 일으키며 환율 불안세를 촉발하기 때문이다.

발칸 지역 전문 매체인 발칸인사이트는 지난 1월 사설을 통해 "터키 경제가 서서히(slow-motion) 경제 위기에 빠져들고 있다"면서 "지난 몇 년 동안 터키 정부가 고성장 정책을 위해 통화 정책을 마음대로 조정해오면서 통화-은행-국채의 '3중 위기'를 불러오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과정에서 터키의 외환 보유고가 바닥나고 있다. 터키 정부는 연이은 환율 불안세를 자국의 외환 보유고로 방어해왔는데, 외환 보유고를 소진하면서도 환율 방어에 실패해 리라화를 외부 환율 상황에 더욱 취약하게 만들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지난 2013년 12월 1150억 달러 규모로 최대치를 기록했던 터키의 외환보유고는 2018년 터키쇼크를 지나면서 2020년 3월에는 약 650억 달러 규모로 축소했다. 이후에도 환율 불안세가 이어지자 지난해 11월에는 400억 달러, 올해 3월에는 526억 달러 수준까지 쪼그라들었다.
 

터키의 외환(미국 달러화) 보유고 추이.[자료=트레이딩이코노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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