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은주의 영국은 왜] 총리 관저에 고양이가 사는 이유

문은주 기자입력 : 2021-03-05 10:08
수석수렵보좌관, 英 총리 소속 비공식 보좌관 현직 '래리', 총리 관저 입주한 지 10주년 맞아 총리 관저 기부금 스캔들에는 "부디 후하게"

영국 수석수렵보좌관 래리 [사진=래리 트위터 캡처]


"수석수렵보좌관 래리, 총리 관저 입성 10주년"

지난달 15일(이하 현지시간) 영국 현지 언론은 위와 같은 제목의 기사를 소개했다. 래리는 고양이로, 총리관저 수석수렵보좌관(Chief Mouser)이라는 직책을 갖고 있다. 쥐나 벌레를 잡는 게 핵심 임무다. 2011년 2월 15일 관저 입주 이후 10년이 흘렀다. 보도가 나온 뒤 다양한 SNS에서도 래리의 관저 입성 10주년을 기념하는 게시글이 넘쳐났다. 총리 관저에 고양이가 살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97년 전통의 '비공식' 직책...英 여왕 삶보다 역사 길어

총리 관저에 수석수렵보좌관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1924년부터다. 1926년생인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삶보다 역사가 길다.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건물(총리 관저)은 1682년에 지어졌다. 건물 연식이 길어질수록 쥐 같은 유해 동물의 출몰도 잦아졌다. 300년이 훌쩍 넘는 건물이다 보니 방역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고양이에게 정식으로 직책을 주고 관저에서 돌보게 된 이유다. 

수석수렵보좌관은 공식 직책은 아니지만 영국 총리의 보좌관 직책 중 하나로 꼽는다. 업무 특성상 총리 등 관저에 거주하는 구성원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덕이다. 자격 조건은 따로 두지 않는다. 고양이이기만 하면 된다. 관저에 머무는 총리의 반려동물 선호도에 따라 수석수렵보좌관을 채용하지 않기도 한다. 실제로 1대 수석수렵보좌관인 트레저빌이 은퇴한 뒤 1929년 2대 수석수렵보좌관 피터가 채용되기까지 5년간 이 자리는 공석이었다.

래리는 지난 2011년 당시 총리였던 데이비드 캐머런을 따라 관저에 들어왔다. 캐머런 전 총리 가족이 동물보호소에서 입양한 뒤 같이 이주한 것이다. 보좌관으로 임명된 뒤 쥐사냥에 성공한 모습이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관가 입문 당시 4살이었던 래리는 올해로 14살을 맞았다. 10년간 많은 국가의 리더들과도 정식 만남을 가졌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에게는 금세 친근감을 표시했지만 2019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국빈 방문 당시에는 대통령에게  만나는 대신 차량 아래서 낮잠을 즐기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직책 자체에 정해진 임기는 없지만 국내 정세에 따라 경질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 실제로 2016년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찬반 투표의 영향으로 캐머런 총리가 사임할 때 래리의 거취에 관심이 모아졌으나 결국 유임됐다. 2019년에도 위기가 닥쳤다. 총선거에서 많은 지지를 얻었던 제1야당 노동당의 대표 제레미 코빈이 애묘인으로 알려지면서다. 노동당이 선거에서 승리할 경우 관저를 비워야 하는 현실이었다. 다행히 막판에 보수당이 승리하면서 제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뜻밖의 총리 관저 스캔들, 래리 입장은 

본업인 쥐잡이를 게을리 하는 모습이 공개되면서 래리는 근무 태만으로 한 차례 경질되기도 했으나 전관예우 차원에서 계속 다우닝가 10번지에 머물고 있다. 래리가 총리 관저에 머무는 동안 영국 총리는 3번(데이비드 캐머런·테리사 메이·보리스 존슨) 교체됐다. 앞으로 10년 더 거주하면서 역대 최장 거주 공무원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지금까지는 18년 동안 거주했던 2대 보좌관 피터와 8대 보좌관 윌버포스가 최장 거주자였다. 

최근 인테리어 스캔들로 총리 관저가 언론에 오르내리면서 래리의 거취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가디언 등 영국 현지 언론의 2일 보도에 따르면 존슨 총리는 다우닝가 10번지와 11번지를 대대적으로 수리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비용은 기부금으로 충당한다는 방침이다. 총리 관저의 특수성을 볼 때 문화유산 보호의 명분이 된다는 것이다.

문제가 된 부분은 수리 범위다. 업무 공간뿐만 아니라 약혼녀인 캐리 시먼즈와 함께 거주하는 주거 공간도 수리하면서 기부금을 모은다는 것이다. 시먼즈는 존슨 총리보다 24살 어린 연인으로, 영국에서는 '선출되지 않은' 제3의 권력으로 통한다. 더 타임스 등 현지 언론은 "기부금 모금은 미국 백악관에서 활용하는 방식"이라며 "이렇게 개인적인 지원을 받으면 이해상충 우려가 있다"고 꼬집었다.

논란이 계속되자 래리의 입장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래리는 트위터 계정을 통해 자신만의 관점을 표출하고 있다. 보좌관으로서의 삶을 보여주기도 하고, 고양이 관련 동영상이나 관심 있는 기사를 타래로 엮기도 한다. '팩트체크'를 표방한 '캣 체크(Cat Check)' 콘텐츠도 만든다. 별도의 운영자가 있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트위터 계정의 팔로워도 45만명이 넘는다.
 

[사진=래리 트위터 캡처]


존슨 총리의 총리 관저 스캔들이 나온 날 래리는 관련 기사를 링크하면서 의미심장한 글을 남겼다. "집에서 모금을 시작한다. 그러니까 총리의 집에서 말이다. 부디 후하게..." 래리 팬을 자처하는 현지 네티즌은 관련 동영상에 '래리가 총리 관저에 사는 게 아니라 총리가 래리의 집에 산다고 봐야 한다'(PM is living in the Larry's House, they got it all wrong)는 취지의 댓글을 달았다.
 

컴패션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네티즌 의견 0
0 / 300

실시간 급상승

9.9초 더보기

아주 글로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