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교 칼럼] 선진통상국가로 가는 길 비싼 수업료 줄일 준비됐나

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입력 : 2021-01-24 13:54
 

[서진교 선임연구위원] 



최근 정부가 발표한 2021년 대외경제정책 추진전략에 따르면 올해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을 적극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까지 협상을 통해 새로운 무역환경에 맞는 국제무역규정을 만들고 집행하면서, 회원국 사이의 통상마찰을 해결해 왔던 세계무역기구(WTO)가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현 상황에서 CPTPP와 같은 메가 FTA에 참여하는 것은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특히 향후 국제통상질서가 CPTPP와 같은 ‘비슷한 입장을 가진 국가(like-minded countries)’끼리의 복수국간협정에 의해 상당한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에, 선진통상국가를 지향하는 우리나라로서 CPTPP 가입은 불가피하다.

문제는 CPTPP 가입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우선 가입과정이 기존 회원국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CPTPP는 가입을 원하는 국가가 요청하고 이를 기존 회원국이 승인하는 형식의 가입규정을 두고 있다. 따라서 기존의 FTA 협상과 달리 가입 신청국이 을의 입장에서 가입협상을 하는 구조다. 특히 공식 가입요청에 앞서 기존 회원국과의 비공식 협의를 통해 그들의 요구를 충분히 파악한 다음 가입요청을 하게 되어 있다. 바꿔 말하면, 기존 회원국의 요구를 충분히 들어줄 준비가 된 다음 가입신청을 하라는 말이다. 결국 CPTPP 가입과정에서 가입 신청국인 우리나라는 기존 회원국이 원하는 것을 상당부분 들어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향후 예상되는 기존 회원국과의 양자협상에서 추가적인 시장개방을 최소화하기 위해 철저한 준비와 대책이 필요하다. 특히 상대방이 우리 민감 품목인 쌀을 지렛대로 다른 품목의 추가개방을 요구할 경우에 대비해야 한다. 일본은 자동차 수출확대를 위해 자동차 수입관세 철폐를 요구할 수 있다. 호주나 뉴질랜드는 양자 FTA에서 충분히 얻지 못한 쇠고기와 낙농품의 추가개방을 요구할 수 있다. 베트남도 우리나라와의 무역적자가 큰 상황에서 자국산 쌀의 수출을 위해 추가 쿼터를 요구할 수 있다. 모두가 만만치 않은 기존 회원국의 요구다.

CPTPP 규범 수용문제는 양자협상보다 더 어려울 수 있다. 가입 협상은 기존 회원국이 무리한 요구를 해도 협상인 만큼 어느 정도 융통성을 기대해 볼 수 있다. 그러나 CPTPP 규범은 원칙적으로 협상대상이 아니다. 가입 신청국이 해당 CPTPP 규범을 수용할지 여부의 문제다. 일정한 예외나 유예를 인정받지 않는 이상 CPTPP의 모든 규범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가입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우리나라가 CPTPP 규범을 그대로 수용해도 문제가 없는지 세밀한 사전 검토가 필요하다.

CPTPP 규범 가운데 대표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이 국영기업과 전자상거래, 동식물검역과 수산보조금 등이다. 국영기업의 경우 국내법상의 국영기업뿐만 아니라 다수의 정부유관기업이 CPTPP의 국영기업에 해당될 수 있다. 이 경우 해당 공기업은 상업적 고려에 따라 행동해야 하며, 비차별대우의 의무도 진다. CPTPP 국영기업조항의 근본 목적이 공기업과 사기업의 공정한 경쟁을 위해 정부의 공기업에 대한 비상업적 지원 등 특혜조치를 금지하는 것이기 때문에 공기업의 적자를 세금으로 메워주거나 저금리 융자지원 등 그동안의 관행은 불가능할 수도 있다.

전자상거래와 관련한 국내법의 정비도 요청된다. CPTPP 전자상거래 조항은 데이터의 지역화조치, 국경 간 데이터의 자유로운 이동, 소스코드 공개요구 금지 등이 의무조항이다. 즉, 정당한 공공정책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경우를 제외하고 국경 간 데이터 이전을 제한하거나 컴퓨팅설비의 위치를 제한할 수 없다. 이에 기본적으로 개인의 동의 하에 데이터의 국외이전 등을 허용하고 있는 관련 국내법(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법, 신용정보법 등)의 정비가 급선무다.

수산보조도 해결해야 할 중요 과제다. CPTPP 수산보조 규정에 따르면 과잉어획이나 과잉어획상태에 있는 어족자원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보조금은 모두 금지다. 이에 면세유는 과잉어획을 유인하는 보조로 볼 수 있기 때문에 금지될 가능성이 높다. 면세유는 감면액까지 감안하면 연간 1조3000억원에 달해 금지될 경우 그 파장이 만만치 않다. 다만 CPTPP 가입이 아니라도 유엔 지속가능 개발목표(2020년까지 과잉능력 및 과잉어획에 기여하는 특정 형태의 보조금 지금 금지)에 따라 면세유는 결국 금지될 가능성이 높았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따라서 CPTPP 가입을 계기로 면세유를 포함한 수산보조정책 전반을 정비해 지속가능 수산업으로 거듭나는 기회로 삼을 필요가 있다.

동식물검역(SPS)도 국내제도의 개선이 요구된다. CPTPP의 SPS 조항은 지역화와 동등성 등 핵심 내용이 WTO 규정에 비해 강화되었다. 특히 지역화는 ‘구획(compartmentalization)’의 개념까지 인정하여 같은 국가 안에서도 특정 지역이나 재배(사육)방식별로 다른 위험평가기준이 적용될 수 있다. 병해충이 발생하면 해당 국가 전체를 수입금지지역으로 설정했던 관행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 다만 수산보조와 마찬가지로 WTO에서 지역화 적용을 강조하고 있어 관련 제도를 정비할 필요는 있었다. CPTPP 가입에 앞서 검역 역량의 제고를 위해 전문인력과 최신 장비 등의 획기적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향후 국제통상질서의 흐름을 감안할 때 우리나라의 CPTPP 가입은 국익을 위해 불가피하다. 다만 앞서 지적한 것처럼 가입에 따른 비용이 상당할 수가 있기 때문에 사전에 철저한 준비와 대책마련을 통해 가입비용을 최소화해야 한다. 한편 대외협상도 중요하지만 국내 이해관계자를 대상으로 대내협상도 중요하다. 범부처 차원의 치밀한 준비와 대책을 기대한다.
 
 

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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