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허브에 대한 일본의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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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다니엘 아시아리스크모니터(주) 대표
입력 2020-10-20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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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다니엘]

[노다니엘의 일본 풍경화]  글로벌 금융허브에 대한 일본의 환상

그리스 신화의 시시포스는 죄의 대가로 저승에서 큰 돌을 가파른 언덕 위로 굴려 올린다. 정상에 오르면 돌은 굴러내려가 다시 굴려 올려야 한다. 노력해도 안되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일이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다. 도쿄를 세계 유수의 금융센터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목표 달성의 근처에 간 적도 없는데, 정권이 바뀌면 다시 새로운 계획이 나온다.

새로이 발족한 일본의 스가내각은 지난 10월 12일, “국제금융도시구상”을 발표하였다. 일본을 세계의 금융허브로 만들기 위해 도쿄, 오사카, 후쿠오카의 3대 도시를 경쟁시킨다는 것이 골자이다. 이를 위하여 해외에서 전문지식을 가진 고도의 인재를 초빙하고, 그들의 세금을 낮추며 체류자격에 특례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상에 대하여 일본금융계 사람들의 반응은 냉랭하다.

일본은 금융허브를 가질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2019년의 국내총생산 규모에 있어서 일본은 미국, 중국에 이어 3위이다. 일본은 아시아에서 가장 일찍 근대화한 나라이며, 사회주의국가인 중국을 제외하면 인구도 압도적으로 많다. 그런데 왜 금융허브를 가질 수 없는가? 이에 대한 대답을 모색하려면, 우선 현실을 보는 게 중요하다.

런던에 있는 싱크탱크 Z/Yen Group이 지난 9월에 발표한 가장 최근의 세계금융센터지수 (Global Financial Centres Index)를 보면 종합점수에 있어 도쿄는 세계 4위에 올라 있다.
 

 



이 표를 보면 동경을 세계의 금융허브로 만든다는 구상이 완전히 헛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우선, 과거와 달리, 뉴욕과 런던이라는 압도적인 금융허브를 제외하고는, 아시아권의 도시들이 부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중에서, 홍콩에 대한 중국의 장악이 강화하면서 홍콩의 전문인력이나 투자자의 일부가 동경으로 옮기는 가능성을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위의 종합순위만을 놓고 보면 그릇된 판단을 할 수 있다. 금융거래가 이루어지는 실질적인 기능분야별로 본다면 그림이 많이 달라짐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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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표를 보면 도쿄가 5위 안에 든 것은 사회인프라 즉, 금융을 포함한 전반적인 사회간접자본의 분야이다. 사회질서가 잘 유지되고, 오랜 전통과 문화가 있다는 등의 “정성적” 평가에서 6위에 올랐으나, 순수한 금융환경에 국한해서 보면 동경은 세계에서 10위권 이하에 있다.

일본인들이 꿈꾸는 ‘세계의 금융허브’란 아시아권을 대표하는 세계3위를 말하는 것이다.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근대화를 이루고, 인구가 1억이 넘으며, 얼마전까지만 해도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이었던 일본의 수도가 아시아를 대표하는 금융허브가 되는 것은, 일본인의 마음속에서는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금융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이를 ‘환상’으로 생각한다. 왜 그럴까?

너무나도 일본적인 일본

도쿄를 아시아의 허브로 만들겠다는 일본정부 구상의 핵심은 늘 ‘우수한 외국인 전문가’의 유치다. 결국, 일본인 자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외국에서 활약하는 용병을 데려다가 파워센터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손흥민이 활약하는 토트넘과 같은 이미지다. 위의 표에서 보듯이, 금융분야에서 도쿄의 실력은 일류가 아니지만 생활환경이 일류이니 외국인이 오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외국인 전문가는 왜 동경에 오지 않는가? 크게 보면 두개의 벽이 있다. 하나는 세금이고 다른 하나는 언어다. 이는 스가 총리도 인정한다. 구상을 발표하며 그는 “세제상의 조치와 행정부서의 영어대응, 외국인의 체류자격 등 문제”를 정부가 합심하여 해결하겠다고 하였다.

쟉끄하즈아밧도안도츠으보르즈!

도대체 이게 어느 나라 말인가? 1989년에 동경에 가서 첫 주에 본 어느 TV 광고에서 들은 말이다. 일본에 가기 전에 3년 동안 일본말을 공부했으나 내가 도저히 알 수 없는 말이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Jack has a bat and two balls였다. 모음과 자음의 수가 많고 받침이 있는 한국어로는 “잭 해즈 어 뱃 앤 투 볼즈”라고 읽으면 서양인은 그대로 알아 들을 수 있다. 물론 한국어로 f, v, ph, th 등의 발음이 안되는 한계가 있으나, 일본어보다는 훨씬 기능성이 뛰어나다. 요즈음 서양의 젊은이들이 일본이 아니라 한국을 선호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한류의 역할도 있겠지만, 언어적으로 한글이 일본어보다 기능적으로 뛰어난 것도 한 이유라고 본다.

사소한 말 같지만 금융업으로 생업을 하는 서양인의 입장에서는 사활적인 조건이다. 일본에서 일하는 한 외국인의 경험담은 이를 잘 입증한다. 아부다비나 싱가포르에서 회사를 차린다면, 회사를 관리할 직원, 그리고 외부의 회계사나 변호사 등이 모두 영어로 소통이 되지만, 일본에서는 이 모든 기능분야에 통역을 동원하거나 비싼 비용으로 업무처리를 맡겨야 한다.

게다가 생활도 힘들다. 홍콩이나 싱가포르에서 스카우트되어 도쿄에 온 미국인이나 영국인이 직장에서는 언어가 통하겠지만, 회사를 벗어나면 언어가 안 통하는 상태에서 몇 년을 버티며 살 수 있을 것인가? 사람들이 친절하고, 거리가 깨끗하고, 지하철은 제 시간에 온다는 면에서 도쿄가 뉴욕이나 런던보다 나을지 모르지만, 그 금융인은 인간과 소통을 하며 기본적인 욕망을 충족하며 살아야하는 인간이지 로봇이 아닌 것이다.

습관적 사고와 환상

일본이 세계적인 금융센터를 가지기 힘든 또 다른 이유는 금융산업의 위상에서 찾아진다. 영미권에서는 금융업이 독자적인 위상을 가지지만, 일본에서는 전통적으로 금융은 ‘산업에 혈액을 제공하는’ 수단적인 위치에 있었다. 금융용어로 말한다면, 저금을 거두어 산업으로 패스하는 ‘간접금융’의 역할을 하는 은행중심 체제였지, 개인의 재산권을 확대해주는 것을 최대의 기능으로 삼는 증권회사와 기업의 금융업무를 해주는 투자은행으로 구성되는 ‘직접금융’은 아직도 취약하다.

전쟁 후의 복구과정에서 부족한 산업자본을 동원하기 위하여 정부가 저축을 장려하고, 말 잘듣는 국민이 은행이나 우체국에서 저금을 하여, 그 돈이 산업부흥에 힘쓰는 제조기업에 저리로 융자된 간접금융체제는 전후 일본경제 기적의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세상이 바뀌고 산업구조가 지식사회로 변화하면서, 일본금융의 전가의 보도는 고물이 되었고, 일본시민들은 금융에 관하여 관심이나 지식이 없는 ‘금융리터러시’의 후진성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모인 돈이 버블로 날아가자 일본정부는 각성을 하고 국민들에게 더 이상 저축에 매달리지 말고 증권투자를 하라는 거의 애원에 가까운 정책으로 ‘저축에서 투자로’ (貯蓄から投資へ)라는 표어까지 내걸게 된다. 주식, 채권, 투자신탁을 사라는 것이다. 그러나 거의 본능에 가까운 저축에 대한 믿음이 아직도 바뀌지 않는다. 그 결과, 은행은 대형금융그룹이 되었지만, 일본의 증권회사, 펀드회사, 자산운용사 등은 아직 2류이다. 위에서 제시한 표에서 금융산업 발달정도에서 10위이고, 금융사업 환경에서 동경이 15위권 밖이라는 지표는 이러한 실정을 반영하는 것이다.

리스크를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리스크를 재료로 사업을 하는 서양의 투자은행이나 헤지펀드가 도쿄에 오기 힘들다. 이는 동경의 외국인 인구가 4%에 불과하다는 통계에 잘 보인다. 거칠게 말하면, 동경에는 영어선생 이외에 외국인 전문인력이 올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서구 금융기관의 동경법인에 임명되어 2, 3년 ‘문화를 경험하고’ 돌아가는 외국인들은 있지만, 도쿄를 생업의 기반으로 삼고자 하는 외국인 금융전문가는 기본적으로 없다.

연봉 100만 달러를 받는 전문가가 싱가포르에서 내는 세금이 20% 정도인 데 비하여 동경에서는 약 60%이다. 영어가 잘 안통해서 생활이 단조로운 도쿄에서 버티며 3년 동안 일했는데, 그 소득의 반 이상을 세금으로 내야한다면 누가 도쿄에 오겠는가? 그리고 그 사람이 일본을 떠날 때면 금융자산의 15%를 출국세로 내야 한다. 일본여자를 사랑하게 되어 결혼한다면, 그 일본여자도 가능한 한 남성위주 사회인 일본을 떠나기를 원할 것이다.

도쿄를 아시아 최대 금융허브로 만들겠다는 구상은 스가가 처음으로 낸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용어는 다르지만 같은 내용의 정책이 여러 번 나왔다가 슬그머니 사라졌다. 결국 환상이었다는 것이다. 이 환상이 계속되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동일성에 대한 집착이라고 본다. 일본이 아시아의 최초의 근대산업국가라는 것, 지금도 아시아 제일의 경제대국이란 것, 따라서 그 연장선에서 금융업도 아시아 최고를 추구해야 한다는 암묵적이고 습관적인 사고가 저류에 흐르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비슷한 생각과 행동이 한국에서도 발견된다. 지금 여의도에도 광화문에도 ‘금융센터’가 있다. 이 금융센터를 진정한 ‘금융센터’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한국 밖에는 없을 것이다. 표에서 보듯이, 금융센터의 랭킹에서 도쿄가 4위, 오사카가 39위임에 비하여 서울이 25위, 부산이 40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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