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주의자 트럼프?] ①트럼프식 세계 평화, 뒤바뀌는 중동 판세

최지현 기자입력 : 2020-09-24 06:00
"트럼프, 어쨌든 '역사' 썼다"...이스라엘과의 '실리' 택한 아랍 세계 20년 만에 사라진 '형제' 팔레스타인...'두 국가 해법' 폐기 수순으로 "아프간엔 평화, 이란엔 전쟁?"...숨 가쁜 트럼프, 재선 영향 '글쎄?'
#. "평화를 위한 평화(peace for peace)"

지난달 31일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로 반세기 만에 처음으로 향하는 항공편의 이륙을 지켜보던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남긴 말이다.

이날 아랍어(살람)와 영어(피스), 히브리어(샬롬)로 '평화'라는 단어를 새긴 이스라엘 국적기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를 태우고 역사적인 첫 비행에 성공했다. 하지만, 이날 세계에 울려 퍼진 '평화를 위한 평화'에는 팔레스타인의 존재가 다시 한번 지워졌다.

지난 1993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중동의 평화를 위해 강제 점령한 영토를 되돌려준다며 "평화를 위한 영토(land for peace)"를 외쳤던 이츠하크 라빈 전 이스라엘 총리의 평화선언은 20여년 만에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지난 8월31일(현지시간)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아부다비로의 첫 정식 비행을 앞둔 이스라엘 국적항공사 엘알항공 소속 LY971편 여객기 기체 외부에 '평화'라는 단어가 아랍어(살람)·영어(피스)·히브리어(샬롬)로 새겨져 있다. [사진=AP·연합뉴스]

 
"어쨌든 '역사' 썼다"...'사우디-이스라엘' 중심으로 중동 판세 재정렬

지난 15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에서는 협정의 '증인' 자격으로 나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중재 아래 이스라엘과 UAE, 바레인이 각각 정식 외교 관계를 수립하는 '아브라함 협정'에 서명했다. 1948년 건국 이래 처음으로 이스라엘은 걸프 지역 아랍국가들과 수교를 맺었다. 상호 수교 관계인 이슬람 국가 역시 종전 이집트·요르단을 포함해 4개국으로 늘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수십 년간의 분열과 갈등 끝에 중동의 새로운 여명을 맞고 있다"면서 "오늘의 협정은 과거의 실패한 접근에서 벗어나 새로운 역사의 길로 안내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간 전권을 위임받고 평화협정을 실질적으로 주도했던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보좌관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모든 공을 넘기며 추켜세웠다. 그는 폭스뉴스에서 "누군가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하면 3차 세계대전을 벌일 것이라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3차 대전 대신 26년 만에 처음으로 중동 평화에 돌파구를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협정이 실효성을 얻기 위해선 향후 얼마나 더 많은 아랍국가가 참여하느냐가 관건이다. 이에 관해 트럼프 대통령은 서명식 직후 기자들에게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왕과도 통화했다"면서 "향후 5~6개국이 빠르게 추가 서명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실제 이날 이슬람 수니파 국가인 UAE와 바레인이 '아랍 공동의 적' 이스라엘과 수교할 수 있던 것은 수니파 국가들의 수장인 사우디의 암묵적인 지지가 있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이슬람 종주국의 자리를 두고 시아파 국가의 수장인 이란과 경쟁하고 있는 사우디는 향후 이란을 봉쇄하기 위해 이스라엘과의 교류를 활용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향후 사우디의 협정 참여 시기에 맞춰 다른 수니파 국가들의 '줄줄이 참여'가 예상되는 지점이다.
 

지난 15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에서 이스라엘-UAE·바레인 평화협정 서명식을 마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사진=로이터·연합뉴스]

 
사라진 팔레스타인...'두 국가 해법' 폐기 수순

15일 미국 백악관에서 서명식이 진행되던 당시, 팔레스타인의 한 무장세력은 이스라엘을 향해 로켓을 발사했다. 2발의 로켓은 각각 이스라엘 해안 도시인 아슈켈론과 아슈도드로 향했으며, 한 발은 격추되고 다른 하나는 2명의 부상자를 냈다.

이를 전한 로이터는 팔레스타인 측이 미국의 중재 아래 진행한 이스라엘과 UAE·바레인 사이의 평화합의를 일종의 '배신'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간 팔레스타인은 아랍 국가들에 100여년 전 강제로 땅을 빼앗아간 '아랍 민족의 원수'인 이스라엘로부터 지켜줘야 할 '형제'였기 때문이다.

여타 팔레스타인 정착촌 도시들에서도 이날 협정에 항의하며 '배신자, ,수치스러운 협정' 등의 문구를 들고나온 수백명 인파의 시위가 이어졌다.

이러한 격렬한 반응은 그간 국제 사회의 공식 기조였던 '두 국가 해법'(Two-state Solution)이 폐기 수순을 밟을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지난 1993년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중재로 맺어진 오슬로 평화협정 당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존재를 인정하고 평화를 위한 영토의 분할을 허용하기로 했다. 이후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이를 미국의 공식 정책으로 채택하고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두 국가 해법을 중동 평화의 골간으로 삼아왔다.

이미 2017년 트럼프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하면서 두 국가 해법의 무력화는 예고된 상태였다.

아랍 사회에선 카타르가 팔레스타인의 편을 들고 있다. 이달 초 카타르의 군주(에미르)인 셰이크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는 쿠슈너 보좌관에게 직접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과 두 국가 해법 준수를 촉구하기도 했다.

카타르는 이란과의 친선 행보 때문에 사우디로부터 미움을 산 후 걸프 지역에서 '왕따' 취급을 받고 있다. 지난 6월 사우디는 카타르와의 단교까지 선언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비판을 잠재우기 위해 자신의 정책을 '현실적인 두 국가 해법'(Realistic Two-state Solution)이라고 부르며 이스라엘로부터는 협정 조건의 하나로 팔레스타인 자치구 중 한 곳인 서안 지구 합병 계획의 잠정 중단을 약속받았다. 하지만, 이는 명분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향후 두 국가 해법 기조는 빠르게 무너져갈 것으로 보인다.
 
"아프간엔 평화, 이란엔 전쟁?"...재선 위해 숨 가쁜 트럼프

11월 3일 대선을 한 달여 남겨둔 트럼프 행정부는 이스라엘 평화협정 이후에도 숨 가쁘게 달려가고 있다.

지지율에서 조 바이든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에 뒤처진 상태인 트럼프 대통령은 유세에서 '중동 정세' 정리를 치적으로 내세웠다. 전임인 오바마 행정부의 실패를 강조하기 위한 행보다.

지난 12일부터는 카타르 도하에서 아프가니스탄 정부와 반군인 탈레반의 평화협상이 시작됐다. 트럼프의 외교팀은 빠르게 정전협정을 이끌고 아프간에 주둔 중인 미군 병력을 철수하겠다는 구상이다.

한편, 오바마 전 정권의 가장 큰 치적 중 하나인 이란 핵 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의 폐지를 위해 21일부터는 이란에 대한 독자적인 제재를 복원했다. 특히, 미국은 해당 제재에 동참하지 않는 국가들 역시 제재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앞서 2018년 일방적으로 핵 합의를 탈퇴한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14일 유엔(UN)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서 국제 사회의 이란 제재 복원을 요구했지만, 최우방인 영국·프랑스·독일조차도 반대의 뜻을 내놨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외교 행보에 대해 미국 정치전문매체 더힐은 "트럼프 대통령이 인종차별·군 비하·코로나19 대응 실패·경제 불황 등으로 거센 거부감에 직면한 상태에서 유권자들의 주의를 잠시 국내 문제 밖으로 돌리는 기회를 얻었다"면서도 "외교정책이 유권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되는 경우는 드물기에, 국내 문제 해결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사진·그래픽=아주경제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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