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준의 취준생 P씨](15) 공시생으로 떨어진 자존감, 사기업에서 회복하고 새길 찾아

정석준 기자입력 : 2020-09-03 11:30
3년간 실패 반복해 미련 생기고 우울감 커져 소소한 성공으로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 생겨 취준생 10명 중 9명, 취업 스트레스 받는 중
[편집자주] 올해 7월 기준 국내 취업준비생(취준생)은 약 114만명입니다. 누구나 이 신분을 피하진 못합니다. 준비 기간이 얼마나 길고 짧은지에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취준생이라 해서 다 같은 꿈을 가진 것도 아닙니다. 각자 하고 싶은 일, 잘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기 위해 노력합니다. 다만 합격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것만은 같습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달려가는 취준생들에게 쉼터를 마련해주고 싶었습니다. 매주 취준생들을 만나 마음속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응원을 건네려고 합니다. 인터뷰에 응한 취준생은 합격(pass)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P씨로 칭하겠습니다.


열다섯 번째 P씨(26)는 법원직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취준생이자 중소기업 계약직 직원이다. 법원직 공무원은 사법 행정 업무를 담당하는 사법부 소속 공무원으로 법원 사무직과 등기 사무직 등으로 나뉜다.

P씨가 지금 다니는 회사는 법과 거리가 먼 무역회사다. 공부를 잠시 멈추고 회사에 들어간 이유는 ‘자존감'을 찾기 위해서다. P씨는 “공무원 준비를 했던 3년 동안 무기력했는데 요즘은 소소하게 뿌듯함을 느끼고 힐링 중”이라며 “1년 계약 기간 중 아직 절반도 안 됐지만 벌써 눈이 트이는 기분이다”라고 말했다.
공부할수록 쌓이는 불안함···우울감으로 이어져

[사진=게티이미지뱅크]
 

P씨는 법과대학에 진학해 공무원을 목표로 삼았다. P씨는 “법원직이 워라밸 좋고 오래 근속하면 다른 전문직으로도 이직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과 특성상 대부분 사기업보다 공무원을 준비하고 직렬을 정하면 3학년부터 휴학하고 공부를 시작한다”고 설명했다.

P씨는 2년간 휴학하고 졸업 준비와 시험공부를 병행하며 4학년을 마쳤다. 이렇게 공부시간이 쌓일수록 사기업과는 점점 더 멀어졌다. P씨는 “사기업을 준비하는 사람과 공부한 내용이 다르다 보니 공시생은 스펙이 모자라는 게 사실”이라며 “새롭게 취업 준비를 시작해 스펙을 쌓거나 회사 인턴 활동을 할 자신이 없어서 더 공무원 시험에 매달렸다. 점수도 어느 정도 오르니 미련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3년간 반복되는 실패에 P씨의 자존감은 점점 낮아졌다. 건강에도 문제가 생겼다. 매일 앉아서 공부를 하다 보니 허리 디스크가 온 것이다. P씨는 “매일 노량진 학원에 다녔을 때 허리 디스크가 심해져 입원했었다”며 “퇴원 후에는 집에서 인터넷 강의를 들으면서 공부했다. 공부 효율이 현저히 떨어지고 누워 있는 시간이 많았다”고 회상했다.

체력이 부실해지자 멘탈도 흔들렸다. 공부를 하고 싶어도 병원에 시간을 뺏기고, 앉아 있을 수 있는 시간도 줄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급기야 정신과까지 다니면서 약물을 처방받은 P씨는 “정신과 치료 약을 먹으니 스트레스는 없어졌지만 멍해지고 공부가 더 안 됐다”며 “기억력 감퇴라는 부작용도 있어서 ‘내가 이걸 계속해도 될까’라는 공부에 대한 막연함과 불안감이 더 커졌고 악순환이 반복됐다”고 털어놨다.

이어 “아직 아무것도 아닌 '나'와 취업한 친구들을 비교하게 된다. 인강비, 학원비 등 대부분의 비용을 부모님께 손 벌리면서 내가 무력하다는 느낌이 들었다”라며 “아마 모든 공시생이 제일 힘들어하는 부분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2019년 취준생 134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구직자 10명 중 9명이 취업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는 언제 취업할지 모르는 불안감(38.6%)이 1위를 차지했다. 오랜 시간 취업 준비로 인한 지침(20.5%), 경제적인 어려움(11.7%) 순이었다. 그리고 그 증상들로는 ‘이유 없는 우울감’(37.6%)이 가장 많았다.
 
사기업·공무원 사이 고민이지만...새로운 곳에서 자신감 회복

[사진=게티이미지뱅크]
 

P씨가 22살에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 전 부모님은 25살이 ‘마지막 기회’라고 선을 그었다. 이윽고 25살이 된 P씨는 “부모님께 죄송하고 혼나면서 내몰리니 차라리 1년간 돈을 벌면서 생각할 시간과 재충전할 시간을 갖자고 생각해 외압 반, 자의 반으로 진로를 선회했다”고 밝혔다.

현재 P씨가 다니는 회사는 건설 장비를 무역하는 중소기업이다. P씨는 “처음에는 법을 공부했던 지식을 써먹고 싶어서 변호사 사무실 면접을 봤는데 일반 사무직과 큰 차이가 없었다”며 “현실을 깨닫고 다양한 회사에 지원해 집과 가깝고 연봉 수준을 오픈하는 곳으로 골랐다”고 말했다.

새로운 취업을 준비한 P씨의 서류 합격률은 50% 정도였다. P씨는 “정말 경력의 중요성을 느꼈다”며 “심지어 서류에 경력이 없다고 명시했는데도 경력 관련 질문을 했다. 남들은 인턴이나 프로젝트 등 경험이 있었지만 나는 하나도 없어서 질문에 답하기 어려웠다. 내가 가진 자격증, 스펙보다 경력이 더 중요한 것 같았다”라고 말했다.

우여곡절 끝에 받은 합격 통보는 P씨에게 ‘뭐라도 붙었구나’라는 위안이 됐다. 다시 공시생으로 곧 돌아갈 것이라는 마음은 두세 살 어린 친구들과 일하면서 ‘꼭 공무원이 아니어도 뭔가를 준비해서 일을 할 수 있구나’로 바뀌었다. 자신감이 생긴 것이다. 

다시 공무원으로 돌아갈 생각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3년간 준비해왔으니 마지막으로 제대로 도전해 실패하면 미련을 떨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P씨는 “소소하게 하나씩 성공하는 게 뿌듯했다. 지금도 무역 영어시험과 국제무역사 등 자격증 시험을 접수하고 준비 중이다”며 “요즘 최대 고민이 사기업과 공무원 사이의 갈림길에 있는 것이다”고 말했다.

공시생들에게는 건강 관리를 가장 먼저 조언하고 싶단다. P씨는 “뭐가 됐든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 건강이 없으면 아무것도 안 된다”며 “3년 정도 공부하면 점수는 어느 정도 올라오는데 예상치 못하게 몸이 아프면 1년은 그냥 버린다. 강사들이 '건강 관리를 잘하라'고 하는 게 괜히 하는 말이 아니다"라고 당부했다.

이어 “건강과 더불어 멘탈 관리도 중요하다. 한두 달이 아니라 최소 1, 2년을 타인에게 손을 벌려서 공부 이외 모든 걸 다 의지해야 한다. 혼자 공부를 해나가야 하니 자존감도 낮아지고 우울감과 무력감도 쉽게 와서 버틸 수 있는 멘탈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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