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인문학] 어떻게 헨리 8세의 로맨스가 대영제국을 일구게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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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미 기자
입력 2020-09-02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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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식 숭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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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투자자의 인문학 서재'·'다시 쓰는 주식투자 교과서' 외 다수

백년전쟁(1337~1453)에서 잔다르크의 프랑스에 패배한 이후 30년간의 왕위 쟁탈전인 장미전쟁(1455~1485)이 이어지며 피폐해진 16세기 영국의 국력은 보잘것없었다. 하지만 영국은 장미전쟁이 끝난 후 헨리 8세(1491~1547)와 엘리자베스 1세(1533~1603)를 거치며 국력을 회복해간다. 16세기 말경에는 당시 세계를 제패했던 스페인 무적함대와의 칼레해전(1588)에서 기적 같은 승리를 거두기도 하였다. 역사가들은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영국이 승리한 이유를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강한 리더십으로 보기도, 때마침 불어온 신풍(神風)의 덕분으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경제사관의 입장에서는 전쟁의 승리는 헨리 8세의 종교개혁 이후 영국이 경제력을 급격히 상승시켰기에 가능했다는 견해가 많다. 종교개혁의 명분은 구 교회의 폐습 타파였지만, 표면적인 이유는 널리 알려진 대로 앤 불린과의 로맨스였다. 하지만 그 내막으로는 당시 영국에서 막대한 재산을 보유한 구교회의 재산을 국가경제 부흥에 활용하기 위한 경제적인 이유가 있었다. 몰수한 토지를 매각하여 피폐해진 왕실재정을 보완하고 구교회의 종을 녹여 해군 함선의 대포로 재활용하는 등 군사력을 강화하는 데 상당 부분 기여한 것이다(실제로 철로 만들어진 영국의 대포는 이후 청동 대포를 보유한 스페인 함선을 격파한 일등공신이 되기도 한다).

조금 깊숙이 들여다보면 구교회의 척결은 다른 방향에서 큰 경제적인 의미를 가진다. 오랫동안 유지된 기득권 세력을 약화시킴으로써 당시 태동하고 있던 초기 부르주아 세력인 젠트리(‘젠틀맨’의 어원이다)에게 큰 힘을 보태준 결과가 된 것이다. 헨리 8세로부터 젠트리들에게 값싸게 불하된 토지들은 모직 수공업을 중심으로 한 영국 산업생산 발전의 풍부한 원료가 되어 주었다. 부유해진 젠트리들이 내는 세금으로 왕실 재정은 강화되었고, 이와 함께 확대된 젠트리들의 정치파워는 청교도혁명과 명예혁명을 거치며 영국을 세계 최초의 자본민주주의 국가로 이끌었다. 젠트리들이 설립한 동인도회사 등 수많은 주식회사들은 산업혁명과 교역발전을 이끌며 결국 아무 보잘것없었던 영국이란 작은 섬나라를 수백년간 세계를 지배하는 대영제국이 되게 하였다.

최초의 경제학자들이 영국에서 탄생한 것은 자연스런 일로 보인다. 생산주체들이 값싼 가격으로 토지를 제공받았을 때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국부를 목격한 영국이었기에 애덤 스미스나 리카도와 같은 자유시장주의 경제학의 아버지들은 지주를 기생충에 비유하기도 하고 ‘부동산 이익은 다른 모든 생산주체들의 이익에 반한다’ 등의 얘기를 하며 국부가 부동산으로 흘러가 집중되는 것을 경계하였다. 부동산 가격의 상승은 결국 생산주체들의 비용을 상승시켜 경제활동을 위축시키며 지주로부터 거둬들일 수 있는 세금의 양이 자본가로부터 거둬들일 수 있는 세금보다 현저히 낮은 것이 사실이기에 그들의 주장에 반론을 제기하기는 어렵다.

최근 한국은행이라는 댐에서 쏟아져 나온 거대한 돈줄기를 부동산으로부터 주식시장과 실물경제로 돌리려는 정부의 노력이 눈물겹다. 부동산시장 과열을 막기 위해 많은 고육지책들을 내는 한편 주식시장으로 돈이 흘러갈 수 있도록 주식 양도소득세 부과기준을 원안보다 완화하면서도 주식거래세를 낮추는 그런 노력들이다. 정부와 여당에서 발의한 ‘경제민주화법’인 상법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소액주주들의 장기투자 금액들이 증가하며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상당 부분을 해소시킬 것이다.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대통령을 비롯한 경제부처들이 비로소 방향을 제대로 잡고 실제로 행동을 개시했다는 것이다. 헨리 8세처럼 사유재산을 몰수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헨리 8세처럼 돈의 흐름을 부동산에서 자본시장으로 돌려야 한다는 이야기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많은 오해와 저항들을 적극적으로 극복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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