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뷰] 키루스 실린더 속 제국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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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은숙 국제경제팀 팀장
입력 2020-08-24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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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루스 대제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제국을 건설한 인물이다. 그가 발 밑에 두었던 땅은 광활하다. 페르시아 제국의 영토는 서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 대부분은 물론이고, 인도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수천년 동안 키루스 대제를 영웅으로 칭송받게 했던 것은 제국의 넓은 정복지가 아니다. 바로 길이 23㎝, 지름 10㎝의 원기둥 형태의 토기, 세계 최초의 인권선언문이라고 불리는 '키루스 실린더' 속에 숨겨진 통치 철학이다. 

고대 바빌로니아 유물로 영국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실린더에는 키루스 대제의 공적과 함께 페르시아 제국을 다스리는 원칙이 담겨 있다. 제국의 휘하에 있는 여러 민족에게 종교의 자유를 허하며, 소수민족들의 문화를 존중한다는 내용 등이 골자다. 대제국의 평화와 융화를 위해 종교적 관용 정책과 포용 정책을 표방하겠다는 것이다. 

이렇듯 키루스 대제는 자신이 정복한 민족들 위에 군림하려 하지 않았다. 또 정부 형태와 통치 방식에서도 다른 민족의 것들을 차용하기도 하는 유연성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강력한 물리적 지배력과 유연한 포용을 통해 '자발적인 복종'을 이끌어 냈다는 점에서 이후에도 많은 리더들의 귀감이 됐다. 

페르시아 이후에도 수많은 국가들은 세계의 패권을 꿈꾸며 뜨고 졌다. 2020년에도 전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힘을 지닌 미국과 중국이 치열한 경쟁을 이어가고 있다. 양국 모두 엄청난 저력과 자원을 가진 국가들로, 리더의 자리를 넘보기에는 충분하다. 그러나 최근 미·중의 경쟁은 주변 국가로 하여금 조마조마한 시간을 이어가게 만든다. 미국은 중국을 때리고, 중국은 자신에게 등돌리는 국가들에 보복을 가하는  식이다.  미국은 틱톡을 비롯한 위챗을 금지하고 화웨이에 대한 제재를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중국에 맞서 연대를 이뤄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국은 어떤가? 이른바 '늑대전사' 외교로 수많은 국가들을 윽박지르고 있다. 그러다 보니 국력이 약한 국가들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면서 선택지를 앞두고 괴로워하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전 세계가 초유의 위기 앞에 놓였다. 한편에서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창궐해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 23일 기준으로 전 세계 코로나 확진자는 2300만명을 넘어섰으며, 사망자도 80만명을 넘었다. 확산세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전 세계가 단합해 백신과 치유제 개발·공유에 나서야 위기를 넘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기후변화의 위기는 또 어떤가? 산불과 홍수는 지구 곳곳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560곳에서 산불이 발생했다. 서울 면적의 6배에 달하는 곳이 화마로 인해 초토화됐다. 중국에서도 폭우로 싼샤댐 위기론이 연일 불거지고 있다. 기후변화 역시 한 국가의 노력만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전 세계를 이끌 진정한 리더 국가가 더욱 절실해지는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진정한 패권국가를 꿈꾼다면 눈앞의 이권보다 범지구적 연대와 해결책에 골몰하는 것은 어떨까? "모든 초강대국들에게 관용은 패권을 장악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필수 불가결한 요소였다. 제국의 쇠퇴는 불관용과 외국인 혐오, 그리고 인종적·종교적·민족적 '순수성'에 대한 촉구와 함께 시작되었다." 에이미 추아 예일대 법대 교수가 자신의 저서 <제국의 미래>에서 지적한 제국 흥망성쇠의 공통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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