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망신주기용 오보’가 본질...하지만 딴전 피우는 검찰과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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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진 사회부 부장
입력 2020-08-18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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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엽적 문제로 논점 흐리는 검찰, 모르는 척 맞장구치는 ‘친검 언론’

  • "가장 질 나쁜 오보는 ‘사실과 거짓을 적당히 섞은 것’"

언론들이 말했다.  "조국의 딸 '제1저자 논문' 고대에서 발견··· 제출 안 했다던 조국의 말은 거짓말"이라고....


지난해 9월, 이른바 ‘친검 언론’들에서 일제히 보도한 기사 내용이다.

고려대를 압수수색했더니 ‘제1저자 논문’이 입시자료로 제출된 정황이 나왔다는 보도다. 압수된 입시자료 중에 '제1저자 논문'을 제출했음을 입증하는 '목록'이 입시서류 사이에서 발견됐다는 것이다.

당시 기사들에 따르면 조국 전 장관의 딸은 부당하게 의학논문의 제1저자가 됐을 뿐 아니라 그 논문을 이용해 대학에 입학한 것으로 보였다. 명백한 입시부정의 증거들이 나온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로써 사실상 ‘어학 특기자 전형으로 고려대에 입학했기 때문에 제1저자 논문은 제출할 필요가 없었고 제출하지도 않았다'던 조 전 장관의 해명은 거짓말이 돼버렸다. 실제로 몇몇 언론은 대놓고 ‘조국의 거짓말’이라고 쓰기도 했다. 어떤 법조출입 기자는 “조국은 뻔뻔스럽다”라고 공개비난하는 글을 SNS에 올렸다. 

하지만 이 기사는 오보다. 거의 1년여 만에 확인된 '오보'다. 그 어디(고려대 관계자나 검사, 혹은 기자 자신)에서 출발했는지 몰라도 어쨌든 철저한 거짓말이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특정인을 모욕하기 위해 잘 짜놓은 ‘정치선동’이자 '거짓선전'이었다.

“가장 질이 나쁜 거짓말은 진실과 거짓을 적당히 섞어 놓은 거짓말이다. 가장 속기 쉬울 뿐 아니라 들켰을 때 도망갈 구멍까지 있기 때문이다”

현직 고검장급의 한 검사가 언젠가 사석에서 한 말이다. 이 말에 따르면 ‘제1 저자 논문 고려대 제출 기사’는 가장 질이 나쁜 오보다. 사실과 거짓말을 적당히 섞어 만든 오보로서 얼마든지 진실을 호도해 책임에서 비켜 설 수 있도록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조 전 장관의 딸이 의학논문의 제1저자로 등재됐다는 건 사실이고 그 논문이 고대에 제출됐다는 건 거짓이다. 달리 말해 입시자료로는 전혀 쓰이지 않았다.

제1저자로 등재가 됐든 말든, 그것이 부당한 것이든 말든 대학에 제출이 되지 않았다면 입시의 공정성과는 상관이 없다. 달리 말해 조 전 장관의 딸이 ‘제1저자 논문’으로 고려대에 입학한 것이 아니라는 거다.

조 전 장관 측이 누차 밝힌 것처럼 조국의 딸은 ‘어학특기자’ 전형으로 고려대에 합격했다. 의학논문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하지만 사실과 거짓이 적당히 혼합된 이 기사는 당시 고대생들을 자극하기 충분했고 ‘당장 조국의 딸을 고대에서 내쫓으라’는 시위로 발전했다. 심지어 고대 출신 졸업생들까지 시위에 가담했고 여론도 급격히 악화됐다. ‘조국은 거짓말쟁이’ 정도가 아니라 ‘조국 가족은 모두 거짓말쟁이’가 됐다.

그렇다면 존경받고 명망 있는 진보적 법학자를 졸지에 '가족 사기단'이라는 밑바닥까지 추락시킨 이 거짓기사는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
 

지난 7월 24일 대검찰청에서 열린 수사심의위원회에 출석하는 한동훈 검사장의 모습.

기자가 물었다. “검찰에서 그렇게 진술하셨죠?”


기사의 출처는 ‘고려대 관계자’였다. 그 ‘고려대 관계자’는 검찰의 소환조사를 마친 직후부터 언론사들의 전화를 받았는데, 초반에 전화를 한 몇몇 기자들은 검찰조서 내용을 술술 읊으며 “검찰에서 그렇게 진술하셨죠?”라고 묻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검찰이 알려주지 않았다면 일어나기 어려운 양상. 외견상 ‘고려대 관계자’가 발언의 출처지만 사실은 검사가 취재원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이 같은 사실은 지난주(8월 13일)에 열린 정경심 교수의 제26차 공판에서 공개됐다. 그것도 검찰의 신문과정에서 드러났다.

당시 검찰은 증인으로 출석한 지모 교수에게 ‘정경심 교수의 PC에서 발견된 자료’라며 ‘제출서류 목록’이라는 것을 제시하면서 “고대 수시전형 양식이 맞느냐”고 물었다. 그간 고려대에서 압수수색을 통해 발견된 것으로 알려진, 그래서 조국과 그 가족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었던 바로 그 자료다.

만약, 처음부터 이 자료가 정 교수의 PC에서 발견된 것이었다면 입시부정의 근거로 쓰일 수 없었다. 하지만 검찰은 이 자료를 참고인들에게 보여주며 “조○(조 전 장관의 딸)이 제출한 것으로 보이는” 혹은 “조○이 제출한 서류”라고 말했다(=각인시켰다).

이들은 조사를 마치고 나가자마자 걸려온 기자들의 전화에 “조○이 제출한 서류를 봤다”라고 말하는 것은 당연할 수밖에 없었다.

조국과 그 가족을 거짓말쟁이에 ‘입시조작단’으로 만든 언론의 오보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하지만 검찰은 반성하지 않고 있다. 아니, 전혀 문제가 없다는 태도다. SNS를 통해 조 전 장관이 제기한 문제를 '억지 주장' 정도로 매도하고 있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아니 더 심하다. 문제의 본질은 ‘오보’이며, 어떻게 오보가 나오게 됐느냐인데 검찰조서 중 ‘수기로 수정한 검사의 질문 부분’이 정당한 것(혹은 합법적)인지 아닌지에 기사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본질을 호도한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자신들의 잘못을 숨기기 위해, 그리고 검찰의 음모를 숨겨주기 위해 짐짓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 하는 속셈이다. 괴벨스도 울고 갈 여론조작의 고수들이다.

참고로 덧붙이자면, 입시관련 서류는 보관기간이 5년이다. 2010년에 고려대에 입학한 조씨의 입시서류는 2015년에 이미 폐기됐다. 당연히 지난해 고려대 압수수색에서는 나올 수 없었다. 이것을 모르는 언론은 없었다. 실수가 아니라 고의이거나 적어도 미필적 고의라는 것을 반증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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