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혁명가들] "이 좋은 걸 누가했지?" 색깔유도선 개발자 윤석덕 차장

김재환 기자입력 : 2020-06-26 06:00
9년 전 안성분기점부터 시작된 도로 위 색칠혁명 "길치에게 내린 축복" 고속도로 교차로서 길 안내
<편집자 주>포스트 코로나 시대, 교통·모빌리티, 네트워크, 물류유통 등이 유망 산업군으로 주목받으면서 미래 교통의 개발과 상용화가 주요 과제로 떠올랐다. 본지는 한국 항만, 도로·철도 등 교통산업의 기반을 닦은 사람들, 현재를 살며 미래를 준비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향후 나아가야 할 방안을 모색하는 '교통혁명가들(Transportation-frontier)' 기획을 총 9회에 걸쳐 보도한다. 

"길치에게 내린 축복이다." 고속도로 교차로와 분기점, 나들목, 졸음쉼터 등에 있는 연두색(우회전)과 분홍색(좌회전) '색깔 유도선'을 본 운전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법한 말이다.

9년 전 처음 시작된 도로 위 색칠혁명은 올해 전국 494개소로 번졌다. 뛰어난 교통사고 예방 효과를 인정받아 지사마다 알음알음 적용하다가 2017년 말부터 도로공사에서 본격적으로 확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난 17일 경기도 용인시 안성용인건설사업단에서 만난 윤석덕 차장.[사진 = 김재환 기자]


놀라운 사실은 색깔 유도선은 연구원이나 정부가 주도적으로 개발한 결과물이 아니라 당시 도로공사 군포지사에서 근무하던 윤석덕 안성용인건설사업단 차장(현) 개인의 아이디어였다는 점이다.

"2011년 서해안고속도로 안산분기점에서 차선을 혼동해서 발생한 사망사고가 났어요. 당시 기남석 지사장님으로부터 어떻게든 해결책을 마련하라는 지시가 떨어졌죠. 초등학생도 알아볼 방법이 필요하다면서요."

"안전시설물이나 표지판을 설치하는 전통적인 방식을 고민하다가, 당시 4살된 아들과 8살 딸이 크레파스랑 물감을 가지고 노는 모습을 보고 떠올렸죠. 색칠을 해버리자!"

아이들이 복잡하게 선을 그려놓은 도화지에 색을 칠하고 나니 쉽게 구별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착안한 것이다. 연두색과 분홍색은 각각 아들과 딸이 좋아하던 색이었다.

하지만 도로에 색을 칠하는 일은 의외로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우선, 도로교통법상 도로에 흰색과 노란색, 파란색 외에는 사용해선 안 된다는 조항을 위반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마모에 강하면서 경제적이고, 선명한 도료를 찾아서 사용자에게 이질적이지 않은 차선폭을 적용하는 일도 숙제였다.

윤 차장은 차선도색용 연두색과 분홍색 도료가 없어서 여러 페인트를 실험했고, 하이패스에 적용했던 도색과 폭, 모양을 맞추기로 했다.

 

국도 1호선 전주 용정교차로에 설치된 색깔유도선.[사진 = 도로공사]


"처음 시도하는 일인 만큼 예산 문제 등 리스크가 있었지만, 다행히도 당시 기남석 지사장님이 사고를 줄일 수만 있다면 괜찮다고 힘을 실어준 덕에 시작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관할 인천 11지구대 임용훈 경사님도 숨은 공신입니다. 법 위반이라서 안 된다는 게 아니라 '정말 좋은 아이디어'라면서 도로를 차단하고 도색하도록 흔쾌히 협조해 주셨거든요."

훈훈한 합심의 덕을 보았는지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2011년만 해도 한 해에 25건 발생했던 안산분기점 사고가 이듬해 3건까지 대폭 감소한 것이다.

이 소식은 관할 구역이 겹쳤던 바로 옆 지사인 수원지사에 전해졌고, 2012년 2호 색깔 유도선이 판교분기점 사고를 해결하기 위한 묘수로 채택되기에 이른다.

각 지사에서는 먼저 너나 할 것 없이 도로 위 색칠을 시작했다. 2014년에는 본사에서도 그 효과를 알아보고 별도의 지침을 내렸고, 2017년 말부터 본격적인 확대 보급에 나섰다.

급기야 국토교통부는 2016년 12월부터 1년간 실증 연구를 진행한 후 '노면 색깔 유도선 설치 및 관리 매뉴얼'을 만들었다. 드디어 색깔 유도선을 보급하기 위한 체계가 마련된 셈이다.

효과를 보면, 2017년 서울시가 도시고속도로 20곳에서 실험한 결과 차로변경 건수와 사고위험도가 각각 50%, 45%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고를 줄이는 데 효과가 있다는 점은 너무 기뻤지만, 아무래도 법 위반이니까 경찰이 잡아가지나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했다니까요(하하)."

"정부포상 시효가 지나서 포상도 못 받았고 돈을 번 것도 아니지만, 이용자들이 너무 좋은 아이디어라고 칭찬해주실 때 얻는 만족감으로 충분해요. 세상에 좋은 일을 해서 그런지 일도 계속 잘 풀리더라고요."

아쉬운 점도 있었다. 색깔 유도선이 체계적으로 보급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역마다 규격이 다르거나 국도나 일반도로에 적용되지 않은 점 등이다.

"간혹 본인이 색깔유도선 최초 개발자라거나, 일본에서 베낀 것 아니냐는 의혹 등이 있기도 해요(하하). 그렇지 않습니다. 일본에 가본 적도 없을 뿐더러 정말 공들여서 제가 개발했으니까요."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하잖아요. 앞으로도 다소 엉뚱한 생각이더라도 도로에서 개선할 점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나서볼 생각입니다. 터널사고가 많이 난다고 하기에 방법을 고민하고 있어요."

 

윤석덕 차장(왼쪽 첫번째)과 색깔 유도선 아이디어 모티브를 제공한 자제들 모습.[사진 = 윤석덕 차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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