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 반발에 기부금 투명성 강화 법안 2년째 표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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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훈 기자
입력 2020-06-10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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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년 첫 개정안 후 정의연 사태 와중에 또 국무회의 문턱 못 넘어

  • 전문가들 "시민단체 눈치 보기 급급…투명하게 공개 못 하면 폐쇄"

[사진=행정안전부]


정의기억연대의 후원금 부실 회계 논란이 사그라지지 않으면서 기부금이나 후원금의 모금과 사용명세를 정확히 밝혀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관련 법 개정을 2년째 미루는 등 지지부진하다. 정부의 시민단체 ‘눈치 보기’가 원인으로 꼽히는 가운데, 앞으로도 이 문제가 법 개정과 개선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시민단체 눈치 보는 정부··· 투명한 기부금 사용 취지 퇴색

지난 9일 행정안전부는 애초 예정했던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 시행령(기부금품법)’ 개정안을 국무회의에 상정하기로 했다가 갑작스레 연기했다. 행안부 관계자는 “조문을 수정할 필요가 생겨 안건에서 제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당 법률안은 기부자가 원하면 금품을 받은 단체가 이른 시간에 기부금 또는 후원금 사용명세를 공개해야 하는 것이 핵심이다.

해당 개정안은 2018년 처음 등장했지만 2년째 표류하고 있다. 이른바 ‘어금니 아빠’ 이영학의 후원금 유용과 엉터리 시민단체 ‘새희망씨앗’ 사건 등을 계기로 기부 투명성과 기부자의 알 권리를 강화하고자 법안이 발의됐다.

2018년 12월 처음 입법예고를 했지만, 시민단체 등의 강한 저항에 밀려 국무회의 통과조차 쉽지 않았다. 국무회의 문턱도 넘지 못한 것이 처음도 아니다. 행안부는 지난해 6월에도 기부금품법 시행령 개정안을 국무회의 안건으로 올리기로 하고 보도자료까지 배포했다가 갑자기 안건에서 제외했었다. 시민사회단체 등 기부금 모집 단체 측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가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시민단체들이 반발한 규정은 기부금품 모집자가 홈페이지에 공개한 내용만으로 구체적인 사용명세를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 기부자가 모집자에게 기부금품 출납부나 모집 비용 지출 명세서 등 장부를 공개하도록 요구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것이 문제가 됐다. 기부자가 추가 정보공개를 요청하면, 모집자는 7일 안에 해당 내용을 공개하도록 의무 규정도 만들었다.

시민단체들의 논리는 현실성이 없고 처벌이 지나치다는 것이다. 영세한 시민단체들이 많아 관련 정보를 7일 이내에 조사 및 정리해 공개하기가 어렵고, 위반 시 받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형’도 과하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정부는 7일 이내 규정을 14일까지 두 배 늘려 잡았다. 이 수정안은 지난해 입법 절차에 들어갔다.

그러나 시민단체는 이 수정안도 지나치다고 반발했다. 결국, 행안부는 ‘기부자 요청 시 정보 의무공개’ 부분을 삭제했다. 공개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상황이 됐다. ‘기부자는 모집자에게 기부금품 모집·사용 관련 장부 등의 공개를 요청할 수 있다’고 언급하는 수준에 그쳤다. 정부 관계자는 “기부금 사용을 투명하게 하지는 취지였는데 결국 개정 취지가 무색해졌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시민단체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조세 전문가 “투명하게 공개 못 하는 단체 폐쇄해야”

투명한 공개를 할 수 없는 단체를 정확히 가려내는 일을 통해 건전한 기부문화를 뿌리내리게 하는 게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투명한 정보공개가 되지 않기에 기부에 신뢰가 떨어지고 결국 기부 문화가 자리 잡지 못하는 원인이라는 논리다.

통계청의 지난해 사회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 1년간 기부한 경험이 있거나 앞으로 기부할 의향이 있는 국민의 비중은 25.6%에 불과했다. 이는 2017년 대비 1.1% 포인트 감소한 것이다. 2016년보다는 무려 10.8% 포인트나 낮아졌다. '기부단체를 신뢰할 수 없어서 기부하지 않는다'는 응답도 14.9%나 됐다. 2017년 대비 6.0% 포인트 늘어났다. 기부에 관한 국민의 시각이 긍정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현재 국내 기부금 단체 중 공시의무가 있는 단체는 4000개가 넘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기부금 횡령이나 불법 유용이 없어도 기부금이 원래의 목적대로 쓰이는 비율이 현저히 낮을 것으로 추정한다. 상당 부분이 직원 인건비, 시설비 등 사업관리비로 지출되고 있어 투명성 강화가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정부가 기부 문화를 확대하기 위해 세액공제를 통해 올해 기준 1조9000억원의 조세지원을 하는 점을 고려하면, 기부금 사용명세에 관해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은 필수라고 설명한다.

한 세무 전문가는 “국내의 많은 기부금 단체들이 기부금 사용 명세를 공개하지 않고 있고, 공개하더라도 자의적인 회계처리를 한 경우가 많다”며 “원래 목적대로 기부금을 사용하지 않는 단체는 폐쇄하거나 조세 지원을 중단하는 것이 맞는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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