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엿보기] 日 변호사들 “강제 동원, 보편적 인권의 문제”

전성민 기자입력 : 2020-06-02 08:00
‘완전하지도, 끝나지도 않았다’ | 메디치미디어

‘완전하지도, 끝나지도 않았다’ 표지 [사진=메디치미디어 제공]


구 일본제철은 1943년 평양에서 오사카 제철소 공원(工員) 모집 신문광고를 냈다. 광고에는 오사카 제철소에서 2년간 훈련 받으면 기술을 습득할 수 있고, 한반도의 제철소에 기술자로 취직할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현실은 달랐다. 화로에 석탄을 넣고 부숴 섞거나 직경 150㎝, 길이 100m의 철관에 들어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열기와 분진을 참아가며 석탄 찌꺼기를 제거하는 등 기술 습득과는 무관한 중노동을 해야 했다. 감전되거나 화상을 입은 적도 있었다. 임금은 전혀 지급받지 못했다.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 기업이 조선인을 강제 동원해 가혹한 노동을 시킨 이른바 ‘징용공’ 사건의 사례 중 하나다.

대중을 대상으로 징용공 재판 관련 이슈를 알기 쉽게 풀어낸 신간 ‘완전하지도, 끝나지도 않았다’(메디치미디어)는 강제 동원 문제는 국가 간의 정치적 이슈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보편적 인권의 문제라고 강조한다.

저자는 가와카미 시로, 김창호, 아오키 유카, 야마모토 세이타, 은용기, 장계만씨 등 일본인과 재일교포 변호사들이다.

6명의 저자들은 징용공 재판과 한·일 청구권협정 관련 17개 이슈를 중심으로, 일본 정부의 주장이 왜 잘못됐는지를 증명하면서도 이 문제는 국가 간의 정치적 이슈가 아니라고 말한다. 강제 징용 문제는 보편적 인권의 문제이며, 한·일 양국이 이러한 인식을 공유할 때 비로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한국 대법원은 2018년 10월 30일 강제동원한 일본제철에 1인당 1억원씩 손해배상금을 지불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어 대법원은 2018년 11월 29일 미쓰비시 히로시마 징용공, 미쓰비시 나고야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사건 피해자들의 배상받을 권리를 인정했다.

일본 정부는 이 문제는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됐고, 이는 “국제법에 비춰 있을 수 없는 판결”이라고 비난했다.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피해자 개인의 청구권이 소멸했으므로 일본 정부와 기업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됐는데, 한국 정부와 대법원이 일방적으로 약속을 어기고 이미 끝난 일을 다시 끄집어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일본 정부는 한국을 ‘화이트 리스트’에서 배제하는 등의 수출 제재 조치를 실행했다.

저자들은 책을 통해 이 주장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법리적으로 한국이 일본에게 책임을 물을 권리가 소멸했다고 해석하더라도 이는 국가가 자국민을 대신해 상대국에 손해배상을 요구할 수 있는 ‘외교보호권’이 소멸됐다는 사실을 의미할 뿐, 개인의 배상청구권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을 한·일 양국의 법원 판결문과 협정문 등의 객관적 자료를 통해 밝힌다.

방대한 자료가 눈에 띈다. 2018년 한국 대법원 판결문을 비롯해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협정’, 즉 한·일 청구권협정문과 한국 민관공동위원회의 의견, 청구권 존재 여부의 근거가 되는 카이로선언·포츠담선언·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발췌문 등을 수록했다. 단순히 논쟁의 핵심 내용만 정리해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관련 자료를 총망라해 독자들이 정보를 파악할 수 있는 객관적 근거를 제공한다는 점이 의미있다. 

또한 저자들은 한·일 양국 정부의 책임 소재를 넘어 강제 동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질적인 해결 방안도 모색한다. 나치 독일의 만행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독일 정부와 기업이 인도적 목적으로 자금을 모아 보상한 ‘기억·책임·미래’ 기금의 사례, 일본에서 니시마쓰건설이 기금을 창설해 중국인 강제 연행 문제를 해결한 사례 등을 제시한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는 추천사를 통해 “이런 책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징용공 문제를 이렇게 알기 쉽게 설명한 책은 처음이다”라고 전했다.

이어 호사카 교수는 “우리는 진실을 알아야 한다. 강제 동원 문제는 정치적 영역이 아닌 인권의 문제다”라며 “부디 이 책을 통해 한·일 양국이 피해자들의 인권을 회복하는 방안을 찾고, 두 나라 국민의 인식 또한 한층 진일보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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