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 오디세이(21)] ‘아테네의 하얀 장미’ 나나 무스쿠리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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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숭호 논설고문
입력 2020-05-08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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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숭호의 '북클럽 지중해 오디세이'(21)] 에게 해처럼 잔잔한 목소리에 매료된 지구인들

[지중해 오디세이 21] ‘아테네의 하얀 장미’ 나나 무스쿠리
②에게 해처럼 잔잔한 목소리에 매료된 지구인들
 

 



나나의 노래 유전자는 어머니 쪽에서 온 듯합니다. 어머니는 그리스 서쪽 이오니아 해의 큰 섬인 코르푸(Corfu) 출신입니다. 코르푸도 풍광과 기후가 좋아 남쪽 에게 해의 섬 못지않게 찾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와 가까워 한때 지중해를 지배했던 베네치아 귀족과 부호들이 저택과 별장을 뒀습니다. 베네치아 사람들은 코르푸에 오페라를 비롯 이탈리아 음악을 들여왔습니다. 나중에는 영국도 이 섬에 진출해 음악적 영향을 끼쳤습니다. 전문 공연장이 생겨났고 그리스 최초의 음악학교도 세워졌습니다. 가난한 집 출신인 나나의 어머니는 음악교육은 받지 않았으나 목소리가 곱고 노래를 매우 잘 해 알아주는 사람이 꽤 있었다고 합니다. 일자리를 찾아 아테네로 올라온 어머니는 극장 청소부로 일하다가 남편을 만났고 자기의 노래솜씨를 이어받은 나나를 낳았습니다. 4년 맏이인 첫째 딸 유제니아도 노래를 잘 했습니다.

‘아테네의 하얀 장미’는 유독 프랑스에서만 ‘코르푸의 하얀 장미’로 제목이 바뀌어 불립니다. 프랑스 말로 ‘아테네의 하얀 장미’는 리듬이 맞지 않아 바꾸었다는 설명이 있지만 나나가 어머니와 어머니의 고향에 대한 감사를 보낸 거라고 생각해도 되지 싶습니다.

나나의 부모는 나나가 열두 살 때 무대에 서려는 열망을 보이자 나나를 데리고 아테네 음악원을 찾아갑니다. 소질은 확인됐지만 학비가 비싸서 입학을 포기하려는데, 한 선생이 나나에게 반해 학비를 주선해주고 음악공부를 시키게 됩니다. 하지만 이 선생님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나나는 다른 선생님에게서 계속 교육을 받습니다. 나나는 음악수업이 끝나면 집에서 라디오를 켜놓고 미국 재즈와 팝음악을 따라 부르며 시간을 보냈는데, 용돈 벌 생각에 한 방송사 오디션에 나가서 혼자 배운 미국 노래를 부르고, 실력을 인정받아 라디오에서는 물론 아테네 시내 클럽 밤무대에게 서게 됩니다. 이 사실을 안 음악원 선생님은 클래식과 대중음악 사이에서 택일을 요구했고 나나는 후자를 택했습니다.

1957년 여름, 나나가 노래를 부르고 있던 클럽에 최고의 소프라노로 이름을 떨치던 마리아 칼라스(1923~1977)가 애인 오나시스와 함께 찾아왔습니다. 칼라스와 나나는 닮은 것이 많습니다. 둘 다 가난한 집에 태어났지만 천부적인 노래솜씨를 인정받아 아테네 음악학원을 장학생으로 다녔다는 점, 직업가수가 됐어도 근시 때문에 검정 뿔테 안경을 껴야 했다는 점, 체구가 컸으며 자신을 못 생겼다고 생각했다는 점 등입니다. 실물 코끼리가 등장하는 오페라 ‘아이다’에 출연하면 “코끼리보다 더 코끼리 같다”는 야유도 들었던 칼라스는 1953년 날씬한 미녀 오드리 헵번을 본 이후 피눈물 나는 다이어트로 오드리 못지않은 몸매를 자랑하는 미녀로 변신했습니다. 나나는 스스로 못 생겼고 뚱뚱하다고 생각했지만 어느 날 한 맹인이 자기 노래를 듣고 열광하자 청중을 감동시키는 것은 목소리이지 외모가 아니라는 자신감을 얻게 됩니다. 물론 나중에는 다이어트를 한 듯 몸매가 우아해진 건 사실입니다. 나나도 오드리에게 영향을 받은 게 있습니다. 나나는 1993년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임명돼 보스니아 내전 때 어린이들을 안전지대로 옮기는데 앞장섰습니다. 전임자였던 오드리가 추천한 것인데, 나나는 이미 오래전에 오드리에게 “나도 당신처럼 살고 싶다”며 어린이를 위한 오드리의 활동에서 받은 감명을 전한 적이 있습니다. (‘③칼라스의 격려를 받다’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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