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열사들이 묻힌 모란공원묘지

황호택 논설고문입력 : 2020-04-28 15:44
 

 <35>민주화 역사 기행 모란공원묘지 · 황호택(서울시립대) 이광표(서원대) 교수 공동집필


박정희 대통령의 개발독재 시대에 서울 중구 을지로 6가 평화시장 앞길에서 청계천 봉제공장의 재단사 전태일(1948~1970)이 온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몸에 불을 붙였다. 동시에 소리 높여 외쳤다.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전태일은 국립의료원을 거쳐 성모병원으로 옮겼으나 그날 밤 숨을 거두고 말았다.  1970년 11월 13일이었다. 끔찍하고 처절한 죽음이었지만 노동 운동의 본격적인 신호탄이었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전태일의 묘소를 서울 도심에서 벗어난 외곽에 조성하도록 했다. 혹시, 도심 가까운 곳에 묘가 조성될 경우 시위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노동운동을 하다 22살의 나이에 몸을 불사른 전태일 상[사진=전태일 재단]


스물둘의 전태일은 남양주 화도읍 모란공원에 묻혔다. 모란공원은 그때부터 사람들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1986년 4월, 신흥정밀 금속노동자 박영진(1959~1986)은 폭력적 부당 노동행위에 저항하기 위해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 16년 전 전태일과 마찬가지였다. “근로기준법을 지켜라”고 외쳤다. 박영진은 끝내 숨을 거두었고 모란공원으로 장지를 정했다.

 평화시장서 온몸 불사른 전태일·태극기 만든 박영효까지

그런데 당시 전두환 정권은 민주화 운동가들의 묘소가 한곳에 밀집되지 않도록 박영진의 모란공원 안장을 막았다. 노동계는 한달 넘게 싸움을 벌였고 끝내 모란공원을 그의 장지로 쟁취했다. 이듬해 1월엔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물고문으로 숨진 서울대생 박종철도 이곳에 묻혔다.
 

   박종철 묘에 씌어있는 추모비 글 '우리는 결코 너를 빼앗길 수 없다'. 화장한 유골가루를 임진강에 뿌려 시신 대신 유품을 묻은 묘다. 글씨는 신영복의 작품이다.  [사진=이광표]


한해 한해 지나면서 모란공원의 상징성은 더욱 커졌다. 민주화 운동, 노동 운동, 학생 운동에 몸 바친 사람들, 산업재해에 희생된 이들이 이곳으로 모였고, 모란공원은 자연스레 민주 열사의 묘역이 되었다.
모란공원은 1966년 조성된 우리나라 최초의 사설 공원묘지다. 모란공원에 가면 초입 한쪽으로 모란미술관 입구가 나오고 그 옆으로 좀더 들어가면 먼저 ‘민족민주 열사·희생자 묘역’이 나온다. 묘역에는 추모비가 있고 거기 이렇게 새겨져 있다.
‘만인을 위한 꿈을 하늘 아닌 땅에서 이루고자 한 청춘들 누웠나니/ 스스로 몸을 바쳐 더욱 푸르고 이슬처럼 살리라던 맹세는 더욱 가슴 저미누나/ 의로운 것이야말로 진실임을 싸우는 것이야말로 양심임을/ 이 비 앞에 서면 새삼 알리라/어두운 세상 밝히고자 제 자신 바쳐 해방의 등불 되었으니/꽃 넋들은 늘 산 자의 벗이오 볕뉘라/지나는 이 있어 스스로 빛을 발한 이 불멸의 영혼들에게서 불씨를 구할지어니’
 
대한민국 역사 새로 쓴 노동운동가 · 애국지사 150여명 안장

청년 노동자 전태일이 모란공원에 묻힌 이래 지금까지 150여명의 민주 열사와 희생자들이 이곳에서 영면을 취하고 있다. 서울대 법대 교수였던 최종길(1931~1973), YH 여성 노동자 김경숙(1958~1979), 금속노동자 박영진, 서울대생 박종철(1965~1987), 인권 변호사 조영래(1947~1990), 통일운동가 문익환(1918~1994), 반독재 민주화 투쟁에 헌신한 계훈제(1921~1999)와 김근태(1947~2011), 노회찬(1956~2018) 전 국회의원…. 노동자, 농민, 학생, 빈민, 사회민주인사들은 목숨을 내놓고 자발적으로 모란공원을 찾아왔다.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노회찬 의원의 무덤. [사진=이광표]


민주열사 묘역 한가운데 2018년 여름 세상을 떠난 노회찬 전 의원의 묘가 있다. 반듯한 그의 무덤 바로 옆에는 노회찬 재단이 마련한 관련 자료들이 투명 박스에 담겨 있다. 바람이 불면 묘소 앞에 놓여있는 국화의 꽃잎이 흩날린다. 묘비 문구는 담담하다. ‘죽음도 슬픔도 아무것도 어쩌지 못하리니/보라 이루었노라/그 늠름하게 아름다운 세상/굳세고 미덥고 다정했던 그대 약속/꺼지지 않는 젊은 별빛으로 보시오.’ 노 의원 무덤 바로 뒤쪽엔 나무 벤치가 있다. 거기 앉아 노 의원 무덤을 바라본다. 2018년 영결식에서 당시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한 말이 떠오른다. “꼭 필요한 사람. 노회찬을 이보다 더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말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 그런데 그가 이곳 모란공원에 묻혀 있다.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시신 대신 유품이 묻힌 박종철 묘. 담담한 시 새겨진 노회찬 묘비

민주열사 묘역의 깊고 높은 곳에 박종철의 무덤이 있다. 박종철 묘비엔 뒷면 가득 서울대 언어학과 동기생들의 추모사가 기록되어 있다. ‘우리는 결코 너를 빼앗길 수 없다’라는 제목에, ‘오늘 우리는 뜨거운 눈물을 삼키며 솟아오르는 분노의 주먹을 쥔다’라는 문구로 시작된다. 삶은 때로 분노여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일깨워 준다. 박종철 무덤에서는 민주열사 묘역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2017년 12월말 개봉한 영화 ‘1987’이 떠오르기도 한다.
더 알려진 민주 열사도 있고 덜 알려진 민주 열사도 있다. 묘역을 거닐며 묘비명 문구를 읽어보는 일도 흥미롭고 감동적이다. 문익환 목사의 묘비엔 ‘통일의 선구자 겨레의 벗’이라 씌어 있다. ‘자유와 평등의 이름으로’ ‘그늘진 곳에서 피어난 봄꽃’ ‘나는 정직과 진실이 이르는 길을 국민과 함께 가고 싶다’ ….
 

갑신정변의 주역이었던 개화파 박영효의 무덤. 1882년 처음 태극기를 만든 인물이다. . [사진=이광표]


모란공원에는 민주열사 묘역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민주열사 묘역 바로 옆에는 19세기말 개화파로 갑신정변의 주역이던 박영효(1861~1939)의 무덤이 있다. 박영효의 묘소로 오르는 길목에는 태극기가 새겨진 안내 표석이 서있다. 박영효가 우리나라 최초로 태극기를 제작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좁은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박영효의 무덤이 나온다. 묘비 앞면엔 태극기가 새겨져 있다. 1882년 10월 박영효는 수신사 일행으로 일본으로 건너가던 도중 배 안에서 태극기를 만들었다. 그 태극기는 1883년 3월 조선의 국기로 공식 제정됐다. 그의 정치적 행적에 대한 평가를 떠나, 역사는 그를 태극기 제작자로 기억한다. 격동의 시대, 우리 태극기의 탄생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모란공원에서 만나는 색다른 경험이 아닐 수 없다.
민주열사 묘역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애국지사 김봉일(1905~1983)이 묻혀있다. 일반인 묘역 한가운데쯤 작곡가 박춘석(1931~2010)의 무덤도 눈에 들어온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대중음악 작곡가 박춘석의 묘비 앞에 서면 ‘비 내리는 호남선’ ‘황혼의 엘레지’ ‘초우’ ‘못잊어’ ‘마포 종점’ 등 수많은 히트곡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의 비문을 읽어본다. ‘사랑과 인생, 눈물과 기쁨의 노래를 남기고 한 자락 바람 되어 여기 잠들다.’ 특히 ‘한 자락 바람’이라는 문구가 머리에 오래도록 남는다.
묘역 중간중간 이색 안내문이 붙어 있다. 관리비 미납 안내와 함께 납부를 촉구하는 ‘묘지관리 점검표’다. 민주열사 묘비에도, 일반인 묘비에도 이것이 붙어 있다. 이 점검표가 보는 이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어느 가족의 묘역엔 후손 영세불망비(後孫 永世不忘碑)가 큼지막하게 서있다. ‘불망(不忘).’ 우리는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싶고 누군가를 기억하고자 한다. 묘소는 그 상징적인 공간이다.

더 나은 사회 꿈꾼 그들을 생각한다

모란공원 바로 옆에는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조각 전문 모란미술관이 있다. 모란미술관 카페는 모란공원 둘러 보고 찾아가기에 제격이다. 민주열사 묘역 입구 맞은편, 카페로 이어지는 쪽문을 들어서다보면 매력적인 석조 조각품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조각가 전국광(1946~1990)의 작품 ‘적(積)-만남의 장’이다. 전국광은 민주열사 묘역 맨 위쪽 한쪽에 조용히 묻혀 있다. 모란미술관에 있는 조각작품과 모란공원 묘 옆에 세워놓은 묘석의 모양이 비슷하다. 묘한 인연이라는 생각이 든다. 죽어서도 모란공원 높은 곳에 올라 저 멀리 자신의 작품을 내려다보고 있다니.
  
  

   한국 대중음악의 대표 작곡가 박춘석의 무덤 [사진=이광표]


서울 중랑구에는 망우묘지공원이 있다. 이곳엔 지석영, 한용운, 오세창, 문일평, 조봉암, 이중섭, 이인성, 박인환 등 주로 일제강점기부터 근대기까지의 독립운동가, 역사문화계 인물들이 많이 묻혀 있다. 망우묘지공원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모란공원은 민주화 운동과 노동 운동에 헌신한 인물들의 묘가 두드러진다. 20세기 후반, 우리의 지난한 화두는 민주화였다. 그 여정에서 뜨겁게 살았던 사람들을 모란공원에서 만나게 된다.
모란공원은 민주화 운동의 상징 공간이 되었다. 이는 우리 현대사의 중요한 흔적이 아닐 수 없다. 노동자 시인 조영관(1957~2007)의 묘비에 시가 새겨져 있다. 그가 쓴 시 ‘세상 속으로 가다’의 일부다. ‘그래서 길을 떠난다/낯선 곳 서걱거리는 갈대바람 속에는/새로운 노래가 살리라/슬프지만은 않은 과거는/사랑은 그리고 혁명은 물속에/깊이/잠겨두었다가/그래서 다시 세상 속으로/길을 떠난다 길을’
모란공원은 이승을 떠난 자들의 자리이다. 고단하게 살다 간 사람들. 하지만 그들은 고단함을 털어내고 다시 먼 길을 떠날 것이다. 더 나은 세상을 향해서 말이다.<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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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지원-남양주시(시장 조광한)
협찬-MDM 그룹(회장 문주현)
도움말-남양주시립박물관 김형섭 학예사


<참고문헌>
아름다운 삶 우리들 숨결에 살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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