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사태가 일깨워준 장수의 조건: 위기 회피와 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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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철 전남대학교 연구석좌교수
입력 2020-04-22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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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상철의 100투더퓨처 (25)

[박상철 교수]



<100 to the future> 필자 박상철 교수 =이제 120세 시대로 나아가는 지금. 노화(老化) 연구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박상철 교수의 ‘100 to the future(백, 투더 퓨처)’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박 교수는 서울대 의과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받은 뒤 30년간 서울대 의대 생화학과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노화세포사멸연구센터와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장을 역임했고, 현재 전남대 연구석좌교수로 활동 중입니다. 노화 분야 국제학술지 ‘노화의 원리’에서 동양인 최초 편집인을 지냈고 국제 백세인연구단 의장, 국제노화학회 회장을 역임했습니다. 노화 연구 공로로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노화이론을 세운 그의 논문은 과학저널 ‘네이처’지에 소개됐습니다.

<100 to the future>는 100세까지 보편적으로 사는 미래에 대비하자는 의미로, 영화 '백 투더 퓨처'의 미래 귀환 뉘앙스를 차용한 시리즈 제목입니다. 이제 우리는 100세 시대를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앞당겨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필자는 그 길어진 삶의 의미와 가치, 그리고 건강하고 풍요로운 내일에 대해 실감나게 짚어나갈 계획입니다. <편집자주>



COVID-19로 불리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세계를 강타하면서 확진 환자와 사망자의 숫자가 매일 발표될 때마다 사람들은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조이고 있다. 코로나사태는 국가와 문화에 따라 사람들의 사는 모습이 얼마나 차이가 있는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선진국이라고 했던 나라들마저 환자들을 수용할 시설이 없어 방치하고, 걷잡을 수 없이 밀려드는 시신을 집단 매장해야 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인간 삶의 허무와 비극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위기 상황을 반면교사 삼아 진정한 장수사회를 구축하는 데 개인의 노력에 덧붙여 지역사회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 새겨보게 된다.

위기를 극복하고 생존을 지키는 것은 장수의 절대 조건이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회피하거나 돌파하는 방안이 있다. 위기를 회피하기 위해서는 차단을 통한 격리가 우선이다. 알려진 바와 같이 전통적 장수지역은 외부와의 소통이 어려운 깊은 산속 오지의 고립된 곳들이다. 이런 지역적 특성은 외부의 침입이나 전염병의 이환을 방지하는 데 최적의 조건일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청정하고 안전한 환경은 장수지역의 충분조건이다. 원인을 모르거나 예방과 치료의 수단이 없는 전염병이 창궐할 때는 최우선적으로 격리를 통한 위기회피방안을 시행하여야 한다. 지역 봉쇄, 가정 격리, 사회적 거리 두기 등으로 철저한 격리를 실행하고 있다. 그러나 고립되면 인간은 심각한 고독으로 우울증과 불안감을 가지게 된다. 고립되어 혼자 살아가야만 하는 삶은 아무리 환경이 좋고 안전이 보장된다고 한들 행복해질 수가 없다. 아무리 안전한 먹을것과 마실 물이 제공되고 위험한 천적도 없고 기후가 적합한 곳에서 자신을 지키고 살아가는 자강자립(自强自立)의 삶이더라도 인간은 절해고도에 갇혀 홀로 살기를 결코 바라지 않는다. 특정 공간에 구속되어 산다는 것은 인간의 욕망에서 벗어나는 일이기에 참고 견디기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가장 심한 형벌은 독방에 가두는 일이다. 혹자는 깊은 산속에서 홀로 수양하고 있는 도인들이나 스님들에 대해서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전혀 다르다. 왜나면 강제적 격리와 자발적인 고립의 차이는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자신의 의지로 스스로 고립을 택하여 무념무상의 상태로 사는 삶은 강제로 격리된 일반인의 삶과 비교할 수가 없다.

인간은 수렵시대를 거치면서 좁은 공간을 벗어나 보다 넓은 세상을 찾아 나가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그런 욕망을 달성하기 위해 항상 무리를 지어 함께 다녔던 기억이 유전자에 새겨져 있다. 신화시대는 가상의 존재로 하늘과 땅과 바다를 대신 누비는 꿈을 꾸었지만, 이제는 스스로 개발한 도구를 활용하여 인간이 직접 하늘, 땅, 바다를 제패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홀로 살 수 없는 인간이기에 격리되어 함께 살아야만 한다면 사람들은 행복해질 수 있는가? 고립되어 있더라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이웃이 있으면 가능하다는 것이 정답이다. 장수지역은 일상의 삶에서 주민들 간에 돈독한 관계를 형성하여 상호부조하고 협력하는 시스템이 보장되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우리 전통사회의 두레정신이다. 함께 일하고 음식을 나누어 먹고 즐기며 어려움을 헤쳐가며 사는 동고동락의 삶이 바로 장수지역의 모습이다. 비록 외부와는 단절되더라도 내부 구성원 간에 단합하여 질서를 지키고 서로 배려하면 어떠한 위기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사회 구성원들이 함께 노력하여 위기를 돌파하는 것이 바로 장수사회의 필요조건이다. 특수한 질병으로 격리되어 살아야 하는 사례로 나병환자의 요양시설이 있다. 외모에 심한 변형을 초래하는 질병의 속성상 자의반 타의반 격리되어왔던 질환이었다. 우리나라 백세인 조사과정 중에 우연히 들른 소록도에서 한센인의 평균수명이 일반인보다 삼사년 더 높은 것을 발견하였다. 원인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한센인의 신앙 강도가 높고, 동료환우들과의 상호관계가 돈독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신앙에 의존하여 현세의 어려움을 잊고, 우정을 통하여 세상의 편견을 극복해낸 한센인들은 국내뿐 아니라 국외의 환우들과도 긴밀한 유대를 맺고 있었다. 사회적으로 강제 고립된 지역봉쇄의 대표적 사례로는 5·18혁명 당시의 광주가 있다. 열흘 이상 완전 봉쇄된 백만이 넘는 대도시에서 절도, 강도, 공공기물 파괴나 사재기가 없었다는 것은 모든 시민들이 똘똘 뭉쳐 위기를 극복한 것이다. 또한 코로나사태로 고생하는 대구지역에 수천명의 국내의료진이 자원봉사로 찾아간 일은 세계적인 미담이 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IMF 경제위기에서의 금모으기 운동, 태안반도 석유누출파동 때 수십만명의 자원봉사 활동은 우리 국민의 위기를 돌파하는 강한 시민정신을 표상하고 있다. 아무리 험한 세상이더라도 믿고 의지할 이웃이 있으면 위기를 극복하고 생존할 수 있다. 그래서 이번 코로나 사태를 맞았어도 우리나라는 의료진뿐 아니라 시민들이 일치단결하여 일사불란하게 위기를 슬기롭게 겪어내어 전세계에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당국이 주도치밀하게 과학적인 방역시책을 펼쳐준 것도 국내외의 신뢰를 받게 하였다. 바로 이와 같은 함께 더불어 사는 공생공락(共生共樂)의 정신이 위기돌파 능력의 근원적 동력이며 장수사회로 나아가는 첩경이다. 이러한 우리 사회의 강한 내재적 흐름은 우리나라가 전세계 최고의 장수국가로 나아갈 수 있음을 분명하게 밝혀주고 있다.

이번 코로나사태를 보면서 선진국이라는 국가들에서 벌어진 사재기로 인한 쇼핑센터 고갈, 강도 난입을 대비한 총기매입, 국수적 인종차별, 노인들의 치솟은 치사율과 치료포기 등의 사례를 보면서 우리 국민들의 시민 정신에 자부심을 느끼게 한다. 물론 절박한 상황에서도 이탈리아에서 가수가 아파트 베란다에서 노래로, 브라질에서는 소방관이 고가 사다리차에 올라 나팔을 불어 고층아파트에 고립된 주민들을 위로하는 장면들을 보면서 이들 사회에서도 이웃과 함께 고난을 극복하려는 절실한 노력을 하고 있음을 보면서 조금은 위안을 삼는다. 코로나사태가 일깨워준 중요한 장수사회의 조건이 위기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 단순한 회피만이 아닌 함께 돌파하는 노력이 소중함을 새삼 되새기면서 우리나라가 더욱 좋은 나라로 발전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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