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나의 성자 다석 류영모(38)] 하루 한끼 먹고 40년, 91세까지 살다

이상국 논설실장입력 : 2020-04-20 10:40
시체를 뭘 그리 열심히 먹는단 말이오, 음식물은 동식물 죽인 것

[다석 류영모]


"식색(食色)을 금욕하겠다" 51세의 선언

말하기는 쉽다. 그러나 그 말에 담긴 것을 실천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류영모는 몸나가 죽어야 얼나가 산다고 말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육신을 죽여야 성령이 산다는 말이? 그는 이렇게 말했다. "석가의 말이나 예수의 말은 내 마음을 죽이는 것입니다. 내가 한 번 죽어야 마음이 텅 빕니다. 한 번 죽은 마음이라야 빈탕(허공, 우주)의 마음입니다. 빈 마음에 하느님 나라와 니르바나 나라를 채우면 부족함이 없습니다."

1941년 2월 17일. 51세의 류영모는 지어놓은 아침밥을 먹지 않고 저녁밥만 먹기로 했다. 하루에 한 끼씩만 먹기로 한 것이다. 이튿날인 2월 18일 아침 그는 온가족을 모아놓고 놀라운 선언을 했다.

"시작을 하였으면 마침이 있어야 합니다. 남녀가 혼인을 맺었으면 혼인을 풀어야 합니다. 부부가 혼인생활은 하되 성생활은 끊어야 합니다. 오늘이 나의 해혼일(解婚日)입니다. 해혼은 물론 혼인생활조차 끝내는 이혼과는 다릅니다."

일일일식(一日一食)을 시작하면서, 그와 동시에 해혼을 선언한 까닭은 무엇일까. 끼니를 파격적으로 줄이는 일이 단순한 식생활의 변경이 아니라, 몸나를 움직이는 두 개의 축인 식색(食色)을 동시에 죽이는 비장한 수행의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먹는 욕망을 채우는 일과 성적 욕망을 채우는 일이 육신에 복무(服務)하는 인간의 '짐승행위'의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마음의 불을 끄면 몸의 불이 자연히 꺼진다. 일일일식은 단수(斷水)의 시작이었고, 해혼은 단전(斷電)의 시작이었다. 류영모가 말한 '몸나가 죽어야 얼나가 산다'는 것은 이 실천의 궁행(窮行)이었다.

류영모는 말했다. "식사(食事)는 장사(葬事)다." 뭔가를 먹는 일은 뭔가를 초상 치르는 일이란 얘기다. 무엇인가를 집어넣는 우리의 입은 식물과 동물의 시체가 들어가는 문이다. 죽인 것들을 먹으며 우리는 산다고 한다. 물론 아예 먹지 않으면 사람이 죽으며 안 먹고는 못 사니 먹는다는 말도 맞는다. 하지만 너무 많이 먹는다.

"우리의 몸뚱이는 더러움을 타지 않는다고 할지 모르나 이 몸이 온통 더러움입니다. 위(胃)는 우리의 밥그릇으로 세상에 나올 때 가지고 온 도시락인데, 마구 채워 못 쓰게 해서는 안 됩니다. 하루에 한 끼씩 먹어 보니 몸 성한 비결은 점심(點心)에 있습니다. 욕심을 줄여서 한 점을 만드는 것이 점심입니다. 마음에 점을 찍듯 먹는 듯 마는 듯 먹는 것입니다. 그것은 석가가 오랫동안 실현한 건강법입니다.하루에 한 끼만 먹으면 온갖 병이 없어집니다. 모든 병은 입으로 들어가는 데서 생깁니다. 감당 못할 음식을 너무 집어넣기 때문에 병에 걸립니다. 안 먹으면 병이 없습니다. 이 육신은 물질이라 멸망하지만 건강하여 영원한 생명(얼나)을 받들면 꽤 부지해 갑니다."

일일일식 한 달 뒤, 몸이 가벼워졌다

류영모는 1941년 2월 17일부터 하루에 저녁 한 끼씩만 먹었는데 며칠이 지나자 얼굴이 수척해지고 얼굴색이 누렇게 변하였다. 아는 사람을 만나면 인사말이 어디 아프냐고 물었다. 하루 한 끼씩 먹은 후 석 달이 지나자 여느 때의 안색(顔色)으로 돌아왔다. 석 달 동안이 고비였다. 그 뒤로는 하루에 한 끼씩 먹고도 활동에 아무런 지장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몸이 더 가벼웠다.

류영모는 일일일식에 자신이 섰다. 그리하여 벽제 됫박고개 너머 고양과 의정부 경계에 있는 조부 산소까지 다녀오기로 하였다. 왕복 40㎞가 되는 백리 길이다. 그때가 5월이라 해는 짧지 않아 당일로 거뜬히 다녀왔다. 아침이 밝자마자 집을 나서서 밝았을 때 집으로 돌아왔다. 구기리 입구에 세검정 냇물이 흐르고 있어 손발을 씻었는데 물밑이 환히 들여다보였다.

류영모는 하루에 한 끼씩 먹기 전 얼마 동안 날콩을 물에 불려서 수시로 먹는 생식을 한 일이 있다. 그 전에 이미 하루에 두 끼씩만 먹은 적이 있다. 경신학교에 다닐 때 점심 도시락을 가지고 다니기가 싫어서 하루에 두 끼씩 먹었다. 하루에 한 끼씩 먹는다고 특별히 많이 먹지는 않았다. 그리고 소화되는 데 시간이 걸리는 찰떡과 찰밥, 고구마 같은 먹거리를 좋아하였다.

류영모는 말하기를 "채식주의자들이 '짐승인들 살고자 하는 것을 어떻게 먹으랴'고 하는 생각은 참 좋은 생각이다"라고 하였다. 톨스토이와 간디가 주장한 '채식주의 정신'을 지지하는 말이다. 류영모는 육식을 좋아하지는 않았으나 금기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최원극(崔元克)이 자신이 즐겨 먹는 개고기를 대접하려고 하자 사양하였다.

맛으로 사는 이는 짐승이다 

류영모는 말하였다. "모든 잘못은 인생을 맛으로 살려는 때문이라고 끊어 말할 수 있습니다. 맛으로 사는 이는 식사(食事)나 방사(房事)를 호기욕(好奇欲)의 대상으로만 여겨서 육체적 본능의 욕구를 만족하고 향락하는 기회로만 여깁니다. 그리하여 그 틈을 타고 싶고, 꾀를 부려 얻고자 미칩니다. 맛으로 살려는 이는 짐승이 되어 꿈틀거리는 꼴을 그려 보고 미칩니다. 어떤 이는 류영모가 하루 한 끼만 먹는다니 아마 입맛이 없어 그런 게지 할는지 몰라도, 입맛이 없어지면 죽어야지 입맛도 없는 사람이 살기는 무슨 염치로 삽니까? 어떤 이는 대접으로 술을 하라고 하고, 술을 못 한다면 맥주로 하라고 하고, 맥주도 싫다면 사이다를 마시라고 합니다. 사이다 생각도 없다면 차를 마시라 하고 차도 안 한다면 냉수라도 마시라고 합니다. 그러나 냉수도 안 마셔야 합니다. 목이 자주 마른 이는 목마른 것부터 고쳐야 합니다."

류영모는 일일일식을 1941년 2월 17일부터 시작하여 1981년 2월 3일 세상을 떠날 때까지 40년 동안 지켰다. 1950년에 광주에 있는 동광원에 머무를 때 일이다. 소망실이라는 결핵요양원이 있었다. 그곳을 심방하였을 때 환자가 감을 한 개 내놓자 받아 먹었다. 먹고 싶어 먹은 게 아니라, 건네는 마음에 대접을 한 것이다. 아주 특별한 경우였다.

"사람이 밥 먹고 잠자는 것을 바로 알기란 어렵습니다. 더욱이 바로 하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밥을 먹는 데는 마디(節)가 있어야 합니다. 끼니란 끊이란 뜻으로 끊었다 잇는다는 뜻입니다. 줄곧 먹어서는 안 됩니다. 끊었다가 먹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가 정한 것도 몇 날이 못 가서 그대로 못 하고 맙니다."

끼니는 '끊이'에서 나온 말이다

짐승을 길들이는 데는 적당하게 굶기고 먹여야 한다. 우리의 몸도 짐승이다. 몸이 제멋대로 설치지 않게 하려면 몸을 알맞게 절제를 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류영모는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초상집에 갈 때는 금식을 하고 갑니다. 돌아간 분을 추도하기 위하여 금식을 합니다. 음식을 대접하고 대접받는 것이 추도가 아닙니다. 나는 아버지,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은 금식을 하고 제사는 안 지냅니다. 제사에 쓸 돈을 이웃에 어려운 이를 돕습니다. "

류영모는 그 밖에 신앙적인 이유로 5일, 7일, 11일 동안 여러 차례 단식을 하였다. 그 가운데 11일 동안 단식한 것이 가장 긴 단식이었다. 마하트마 간디는 단식을 영국과 겨루고 민중을 깨우치는 방편으로 썼다. 마하트마 간디는 74살 때 21일 동안 결사단식을 한 것이 가장 오랜 단식이었다. 그리고는 주로 5일씩 단식을 하였다.

1957년 2월 1일 류영모는 서울YMCA회관에서 마하트마 간디 기념 강연회에 5일 동안 단식을 하고도 어느 강사보다도 힘있고 감동적인 강연을 하였다.

"우리가 본연의 나인 참나(眞我)를 모르고서 어떻게 하느님을 알 수 있겠습니까? 참나를 모르고서 어떻게 이 사회에 사랑이 깃들 수 있겠습니까? 사랑이 있어야 이 사회는 유기체(有機體)로 돌아갈 수 있는데 참나를 모르고 있는 사회가 유기체가 될 수 없습니다. 어디가 아픈 곳인지, 어디가 쓰린 곳인지, 어디가 가려운 곳인지, 어디가 한스러운 곳인지 전혀 모르면서 어떻게 사회가 유기체로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 나의 진면목을 더듬어 보았습니다. 지난 1월 27일(1957년)에 특별한 감상을 얻었습니다. 이 감상을 계속해서 생각해야겠다고 해서 그날 밤을 지새우며 생각한 끝에 단식을 결심했습니다. 오늘까지 만 닷새가 되는데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앵두를 보기만 해도 먹은 느낌

류영모는 이날의 일을 일기에 적었다. "120시간 숨만 쉬고 몇 시간 설교하니 입술이 마른다. 물을 먹고 자고 일어난 오늘은 퍽 피곤이 풀린다. 바람이 양식이요, 물이 양식인 것을 깨닫는다. 낟알이 양식이거니 고기, 야채를 생각하는 것은 숨결과 물이 밑바탕 됨을 잊어버린 것이다."(1957. 2. 2. 다석일지)

김흥호(金興浩)는 류영모의 단식하는 모습을 이렇게 그렸다. "선생님이 두 주가 되도록 물 한 방울 잡숫지 않고 금식하면서 YMCA에 나오신 일이 있다. 선생님의 눈시울이 우묵 들어가고 안색이 아주 좋지 않았다. 그럴 때는 사모님이 언제나 뒤따랐다. 선생님은 칠판에 '단식하는 사람 앞에서는 생심(生心)한 것이 사라진다(斷食人前生心消, 바가바드기타)'라는 긴 시를 걸어 놓고 단식 동안의 체험을 자세하게 말씀해 주었다. 그때 앵두가 한창인데 앵두를 먹지 않고 보기만 해도 그대로 먹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말하였다."(김흥호, '다석 류영모' 중에서)

다석전기 집필 = 다석사상연구회 회장 박영호
증보집필 및 편집​ = 이상국 논설실장
@아주경제 '정신가치' 시리즈 편집팀


 

[다석 류영모]

다석어록 = 아기를 위해 앓을 수 없는 어머니처럼, 신을 위해 앓을 수 없는 몸을!

인생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몸을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한다. 내 몸을 그저 건강하게 하자는 것이 아니라 할 일이 있으니까 건강하게 가지라는 것이다. 마치 천리길을 가려고 하는 사람이 자동차를 닦고 정비를 하듯이 온 인류를 구해야 할 책임이 있으니 우리의 몸을 잘 정비하고 닦아야 하는 것이다. 건강은 책임의식에서 나온 것이다. 아기를 위해서 앓을 수 없는 어머니처럼 인류 구원을 위해 앓을 수 없는 몸을 가지자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건강한 육체는 건강한 정신에서 나오는 것이다. 몸은 부모로부터 받았으면 다치지 말고 가야 할 것이다. 몸은 무엇인가 하면 자기 얼을 담는 그릇이다. 그릇도 성하고 담은 것도 성해야 그 정신행위가 올바르게 된다. 성하게 성(誠)의 길을 가야 한다. 적극적으로 성해야 한다. 몸 성히 가는 것이 그리스도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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