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 칼럼-지금·여기·당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한다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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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 논설위원
입력 2020-04-03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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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도와 서울대…예배와 코로나19

 

공부를 곧잘 했던 한 고3생은 오로지 서울대‘만’을 목표로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실력이, 성적이 못 미쳤다. 기도하느라.

독실한 개신교 신자인 그는 교회를 열심히 다녔다. ‘하나님이 저를 서울대 보내주실 걸 믿고 또 믿습니다’라고 몇 시간씩 기도를 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하나님 손 잡고 서울대 들어갈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는 재수를 선택했다. 교회 가서 기도 드리는 일상을 다시 되풀이했다. 또 실패…3수 끝에 그의 서울대 ‘무모한 도전’은 끝났다.

코로나19 비상 시국에 굳이 교회에서 직접 예배를 봐야겠다는 상당수 개신교 신자들을 보면서 이 고3 신자를 떠올렸다.

충남 부여군 규암성결교회는 지난 3월 22일 일요일 19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현장 예배를 진행했다. 정부와 온 국민이 사회적(물리적) 거리두기를 하자고 발벗고 나선 때였다. 그러나 예배 이틀 뒤 예배 참석자 가운데 첫 확진자가 발생했고, 이후 교인 7명의 감염 사실이 확인됐다.

더욱 걱정스러운 점은 확진 판정을 받는 교인이 계속 늘고 있는 거다. 이 교회는 교인과 그 가족, 이웃에서도 언제든 추가 확진자가 나올 수 있는 ‘집단 감염’의 온상이 됐다.

서울시 코로나19 정례 브리핑에 따르면 3월 22일 현장 예배를 한 교회는 강남구의 광림교회, 성북구 사랑제일교회, 구로구 연세중앙교회 등 무려 2천209곳이었다. 29일에도 1천817곳이나 됐다.
 

[3월 29일 서울 광림교회 현장 예배 모습. 사진=연합뉴스]

경기도의 경우 3월 29일 도내 1만655개 교회를 전수 조사했는데, 38.7%인 4천122곳이 현장 집회 예배를 진행하고 이 중 일부 교회는 예방수칙을 준수하지 않았다고 한다.

서울과 경기도가 강력한 행정 조치를 취했음에도 이 지경이라면, 전수 조사나 현장 확인 통계를 내지 못한 다른 지역은 더 말할 것도 없이 많을 터.  코로나19 사태 와중, 매주 일요일 전국적으로 적어도 수십만 명이 집단 예배에 참석했을 거다.

앞으로 ‘교회 발(發)’ 코로나19 확산이 예측불가 상황이다. 언제 어디서 집단 감염의 온상, 교회가 나올지 모른다.

우리나라 기독교는 크게 개신교와 천주교(가톨릭)로 나뉘는데, 위 현장 예배 강행은 모두 개신교다. 교황-추기경-주교-신부, 단선체계인 천주교는 이미 2월 말 전면적으로 미사를 중단했다.

규암성결교회에서 확진자가 대거 발생한 2일 천주교 최대 교구인 서울대교구는 미사를 무기한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다른 교구들도 따를 가능성이 매우 높다. 30일 부처님오신날 행사를 이미 한 달 미룬 대한불교조계종도 법회 중단을 19일까지로 연장했다.

4월 12일은 부활절이다. 이날 서울 명동성당에서 염수정 추기경이 혼자 대축일 미사를 집전하고 가톨릭평화방송이 생중계한다.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 일부 개신교회는 부활절 연합예배를 온라인 중계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여전히 초대형교회를 포함한 수많은 교회들이 현장 예배를 고집할 것으로 보인다. 막무가내, 교회를 찾은 이들은 하나님에게 무슨 기도를 할까. '오 주여, 코로나19라는 마귀를 하루빨리 물리쳐 주소서'라는 기도는 틀림없이 포함될 거다.

코로나19를 물리치기 위해서 '물론' 기도의 힘이 필요하지만 방역의 기본을 지켜야 한다. 철저한 거리두기, 다중시설 이용 및 집회·모임 강력 자제 등. 서울대에 들어가기 위해선 기도도 해야 하지만 공부를 열심히, 잘 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이야말로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마태복음 22장 39절, 마르코복음12장 31절)는 예수님 말씀을 실천해야 할 때다. 그래야 나도, 이웃도 코로나19에 걸리지 않는다. 오는 5일부터는 매 주일, 모든 교회 신자들이 내 몸처럼 우리 이웃을 아끼고 보살피고 사랑하길 기도한다.

P.S.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기도에도 서울대 못 간 그 고3생, 다른 대학 들어간 이후 그를 교회에서 봤다는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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