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블라인드] 코로나대출 밀물에 기업은행 영업점 불만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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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웅 기자
입력 2020-04-0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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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상공인 몰려들어 평소보다 업무 급증

  • 직원들, 개인실적 목표도 채워야 '딜레마'

  • 은행 안팎 "수익보다 위기극복 집중해야"

코로나19 소상공인 대출(코로나대출) 시행 이튿날인 2일 오전 9시. 서울 동대문구 IBK기업은행 A지점의 기업대출 창구에는 코로나대출을 받으려는 소상공인 10명이 줄을 서 기다리고 있었다. 시중은행의 코로나대출 창구가 한산한 것과 달리 기업은행은 포화 상태다. 4~6등급의 중신용 소상공인은 시중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A지점은 1일 하루에만 코로나대출 27건이 접수됐다. A지점장은 "코로나 사태 전 소상공인 대출은 하루 1건이 나갔다. 코로나대출이 '홀짝제'로 운영되니 어제는 사실상 54건이 처리된 셈"이라며 "평소보다 업무가 54배 늘어난 것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렇듯 기업은행이 코로나대출 '밀물'을 맞고 있지만, 일선 영업직원들은 '딜레마'에 빠졌다. 기존 영업 실적목표를 채워야 하지만, 코로나 피해 소상공인 대상 대출업무도 병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코로나대출 지원에 매진하려면 실적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다.

앞서 기업은행은 코로나19 사태가 커지자 오는 6월 말까지 직원 성과를 평가하는 기준인 핵심평가지표(KPI) 35개 항목 가운데 대면 영업 항목인 13개 지표에 대한 실적 목표치를 15% 줄이기로 했다. 코로나대출 상담은 급증한 반면, 일반 업무를 위해 내방하는 고객이 급감해 세운 조치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탁상공론' 정책이라는 불만이 커지고 있다. 하향 조정된 지표 대부분이 사실상 개인고객 부문인 탓에 코로나대출 지원에 집중할 수 없기 때문이다. 13개 지표 중 기업고객 항목은 기업교차 판매, 기업신규고객수, 제안영업 등 3개에 불과하다. 개인고객 부문(핵심고객수·개인교차판매·자산관리고객수)도 3개로 같지만, 주택도시기금상품·핵심예금·적립식예금·외국환 등 나머지 지표들은 개인고객 영업에서 채우는 경우가 많다.

기업은행의 한 직원은 "코로나대출을 받으려는 소상공인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KPI 실적을 채우기 위해선 이들을 상대로 다른 금융상품도 끼워 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실제로 코로나 피해 상인에게 교차판매 등 영업하는 직원은 많지 않을 것"이라며 "그러나 코로나대출 지원을 열심히 했다고 KPI를 잘 받을지는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코로나대출 취급 증가로 득이 되는 항목이 없는 것은 아니다. 기업은행은 혁신금융 부문 중 '소상공인 지원' 지표를 운용하고 있다. 그러나 KPI 총 배점(1000점) 가운데 소상공인 지원 점수는 5점에 불과하다.

본점 직원들의 고민도 커지는 분위기다. 지점의 상반기 실적 목표는 일부 줄였으나, 은행 전체의 영업 목표는 유지하고 있어서다. 지점에서 줄어든 영업 목표치는 결국 본점이 채워야 한다. 하지만 시중은행 성격이 강한 기업은행의 경우 영업수익 대부분이 지점에서 발생하는 데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경기 악화로 본점이 직접 돈을 벌기가 쉽지 않다.

상황이 이렇자, 기업은행 안팎에서는 국책은행인 만큼 실적을 일부 포기하더라도 코로나대출 지원에 보다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책금융기관노동조합협의회는 1일 성명서를 통해 "위기극복에 집중하고자 한다면 기존 방식의 경영평가를 중단하거나 코로나19 대응 사업으로 지표를 변경해야 한다"며 "그러지 않으면 영업 현장은 기존 업무와 긴급 대출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게 된다"고 밝혔다. 현재 시행 중인 KPI를 "족쇄"라고도 했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경영평가를 중단하는 것은 여러 문제가 있어 쉽지 않다"며 "상당 부분 보완의 필요성이 있으며, 지역적인 편차와 영업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보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기업은행 노사 갈등은 다시 커지고 있다. 기업은행 노동조합은 지난달 18일 근로기준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윤종원 행장을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고발했다. 노조는 직원들이 코로나19 지원 업무와 일반 업무를 병행해야 하는 탓에 주52시간 근로제를 지키기 어려운 환경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IBK기업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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