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종 칼럼] 코로나 바이러스로 분열되는 지구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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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종 숙명여대 국제관계대학원 교수
입력 2020-03-0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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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종 숙명여대 국제관계대학원 교수 ]



전 세계로 급격히 확산되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는 지구촌에 엄청난 충격과 피해를 주고 있다. 국제 금융시장은 거의 공황 상태에 놓여, 미국 주식 시장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대 낙폭을 보이고 있다. 많은 공장이 가동을 중단했고, 소비는 꽁꽁 얼어 붙었으며, 사람들은 이동을 자제하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우려되는 것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지구촌을 점차 분열과 갈등으로 몰고 가고 있는 점이다. 국가 간에 반목과 대립이 생기고 국가 내에서도 서로를 의심하고 공격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 바이러스가 언젠가는 기세가 꺾이고 사라지겠지만, 이러한 갈등과 분열의 모습은 지구촌의 영원한 상처로 남을 가능성이 있다.

먼저 국가 간 갈등을 보자. 처음 바이러스가 중국의 우한에서 시작되어 주변으로 급속히 확산하자 여기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중국 정부에 대한 각국의 비난이 이어졌다. 정보를 차단하고 비밀 유지에 급급해서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서방의 공격이 계속되었다. 일부 미국의 정치 지도자들은 이것이 중국 체제의 결함에 기인한다고 단언하며 트럼프 행정부가 밀어붙이는 대 중국 견제에 힘을 실어주었다. '우한 폐렴'이라는 최초의 명칭도 중국을 비난하는 의도를 반영했다. 이웃인 한국에서마저도 중국인들의 미개한 식습관이 문제의 발단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그 이후 이 바이러스가 일본과 한국으로 퍼지자, 이번에는 서방에서 동양인 전체에 대해 혐오하고 비하하는 분위기가 확산되었다. 마켓이나 공공장소에서 동양인과의 접촉을 피하고 회피하는 사례가 발생했다. 이와 아울러 아시아 내 발병국가 간에도 갈등과 반목이 표출되었다. 먼저 한국에서는 중국인을 회피하며 중국인의 입국을 금지하자는 여론이 팽배해졌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의 고통이 한국의 고통"이라며 중국을 두둔하자 불만은 더욱 고조되었다. 아직까지도 야권과 많은 시민들은 이를 주장하고 있고, 정부에서는 실효성 없는 때늦은 조치라고 반대하고 있다.

이제 중국 내 상황이 약간의 진정세를 보이고 대신 한국 내 발병이 급증하자, 이번에는 중국 내에서 한국을 견제하고 한국인의 입국을 제한하는 사태가 늘고 있다. 아직 중국 정부의 공식적 입장은 아니지만 여러 성이나 도시에서 자체적으로 한국인 격리를 시행하고 있고, 일부 중국인들은 자신들 거주지 한국인을 단속하는 실정이다. 이 현상은 중국에 국한되지 않는다. 한국인에 대한 입국 금지나 제한은 현재 지구촌 70여개 국가에서 행해지고 있고 이는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유럽이나 바이러스가 확산되는 기타 지역에서도 이러한 외국인 입국 금지나 제한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이다. 최근 발병이 늘고 있는 이란, 이탈리아 등 국가에 대한 경우가 특히 그러하다. 이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자면 이는 불가피한 조치이다. 그러나 이것이 방역을 위한 단순한 물리적인 차단으로 끝나지 않고 국가 간, 국민 간 심리적·정서적 갈등 및 반목으로 이어지는 것이 문제다. 특히 국내 정치 문제와 맞물려 이러한 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선거를 앞둔 미국, 한국 등에서 정치인들이 이 사태를 계기로 외국인 혐오를 조장하는 민족주의를 내세우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

미국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사태가 자신의 재선에 영향을 줄까봐 노심초사하고 있다. 미국 내 상황은 안정적이라고 강변하면서 문제를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와 야권의 정치적 비난에 돌리고 있다. 중국보다 훨씬 우월한 제도를 자랑하는 미국은 충분히 이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반면 최악을 면했다고 느끼는 중국은 벌써 자신들의 일사불란한 관리와 통제가 사태 악화를 막았다고 자화자찬하고 있다. 관영 매체들은 미국과 한국 같은 무질서한 개방사회에서는 불가능할 것이라는 진단까지 내놓고 있다. 환구시보는 벌써 시진핑 주석의 놀라운 지도력을 칭송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 정치 상황과 맞물려 악화되는 이와 같은 국가 간 반목과 갈등은 최근 불고 있는 민족주의와 반지구화의 정서와 맞물려 더욱 증폭될 수 있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와 영국의 브렉시트가 이런 분위기의 물꼬를 텄다면, 이번 바이러스는 이를 거대한 물줄기로 바꿔버릴 잠재력이 있다. 각국에서 외국인에 대한 혐오감이 늘어나고 타국에 대한 물리적·정서적 벽을 높게 쌓아 올린다면, 벌써 심화되고 있는 무역 보호주의와 더불어 지구촌은 더욱 분열된 모습을 보이게 될 것이다.

1980년대 이후 세계는 엄청난 속도로 세계화·개방화를 겪어 왔다. 국가 간 경계가 무너지고 사람과 물자·자본의 이동이 급격히 증가, 언론학자 마셜 맥루한이 예언하던 지구촌 시대가 마침내 도래했다. 그 결과, 인류는 많은 문명과 기술의 혜택을 누리며 전례 없는 번영을 구가했다. 그러나 최근의 분위기는 여기에 대한 거부감의 확산이다. 이 세계화 과정에서 소외된 계층 및 국가가 이런 분위기에 앞장서 왔다. 안타깝게 이번 바이러스 사태를 통해 이 분위기가 더욱 넓은 계층과 더욱 많은 국가에 퍼지고 있다.

이럴수록 세계화에 따른 부작용 확산을 막는 장치와 기구가 절실하게 요구된다. 바이러스와 같은 건강 문제의 경우 세계보건기구(WHO)가 그러한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1948년 유엔 기구로 출범한 WHO는 과거 한국의 이종욱 박사가 사무총장직을 수행했고 최근에는 홍콩의 마거릿 챈이 이 조직을 이끌었다. 현재는 에티오피아 국적의 데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가 사무총장직을 맡고 있다. 현 총장이 중국의 지지를 얻어 수장에 올랐기 때문에 중국에 대해 관대했고 이 때문에 바이러스 초기에 위기 상황 선포를 주저했다는 비난이 벌써 나돌고 있다. 이것이 사실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이러한 비난 배경에도 국가 간 반목과 갈등이 존재하는 것 같아서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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