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시대 '리원량 黨 영웅 만들기'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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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준 아주경제 논설고문. 전 조선일보 베이징.홍콩 특파원
입력 2020-02-13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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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준 논설고문 [남궁진웅 기자, timeid@ajunews.com]
 

[박승준의 지피지기(知彼知己)] 

우리에게 카톡(카카오톡)이 있다면, 중국인들에게는 웨이신(微信ㆍ영어명 WeChat)이 있다. 카톡은 2010년 3월 18일 안드로이드 서비스를 시작했고, 중국 최대의 검색엔진 바이두(百度)에 따르면, ‘중국인들의 생활방식’이라고 인정받는 웨이신은 2011년 1월 21일 서비스를 시작했다. 웨이신의 가입자 숫자는 2016년 6월말 현재 8억600만명으로 집계됐으니, 4년이 지난 지금은 10억을 넘고도 남을 것이다. 중국인들이 갖고 있는 스마트폰의 94%에 웨이신 앱이 깔려있다. 중국사람들은 웨이신으로 뉴스 검색도 하고, QR마크 결제도 하며 살아간다.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한 고급기자는 벌써 몇년 전에 “중국공산당도 웨이신은 못 당한다”고 했다. 중국 외교부 신문국의 관리들도 “중국정부가 대외정책을 결정할 때 웨이신에 뜨는 여론에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지난 2월 1일 웨이신에 이런 뉴스가 떴다. 2012년 11월 시진핑(習近平)이 중국공산당 총서기로 선출된 직후에 만들어진 온라인 신문 펑파이(澎湃)의 보도를 인용한 뉴스였다.

“지난 1월 1일 우한(武漢) 경찰당국은 8명의 위법자들을 소환해서 의법처리를 진행 중이다. 이 가운데 한 명인 리원량(李文亮)에 따르면 2019년 12월 30일 자신이 진찰한 7 명의 환자가 SARS(Severe Acute Reptospira Syndromㆍ급성 호흡기 증후군) 코로나 바이러스 검사에서 양성반응을 보였으며, 의사 친구 8명과 함께 만든 웨이신 방에 ‘7건의 SARS 확진’이라고 띄워 같은 웨이신 방 친구들에게 환자 진단할 때 주의하라고 일러주었다. 우한 경찰당국은 이들 의사가 확인되지도 않은 내용을 웨이신에 띄워 사회에 불량한 영향을 주었다고 판단, 8명에 대한 위법행위 조사를 진행중이다. 그런데 우한 경찰의 조사를 받은 의사 리원량이 2월 1일 웨이신에 ‘오늘 핵산(核酸) 검측 결과가 양성으로 나왔다’는 메시지를 올렸다.”

2월 7일 웨이신에는 다시 이런 뉴스가 떴다. “오늘 새벽 2시 58분 우한 중심병원 안과의사 리원량이 신형관상병독(冠狀病毒ㆍ코로나 바이러스)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우한 각계 인사들이 병원으로 달려와 전염병 마귀와 싸우다 숨진 의사에게 헌화하고 슬픔을 표했다.”

2월 8일 웨이신은 리원량의 아내 푸쉬에지에(付雪潔)가 띄운 남편의 죽음에 관한 성명을 올려 놓았다는 뉴스를 띄웠다. “본인은 어떤 도움 요청도 올린 일이 없으며, 어떤 의연금도 받지 않을 것임을 밝혀둔다. 나의 남편에 관한 소식을 전파하지 말기를 바란다. 가족들의 뜻은 불필요한 일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2월 9일 한국의 SNS 카톡과 페이스북에도 리원량의 소식이 가짜뉴스를 통해 알려지기 시작했다. 가짜뉴스는 “휘슬 블로어 리원량 우한 중앙병원 안과의사가 숨졌습니다, 아내 푸쉬에지에가 정리한 남편의 마지막 메시지가 중국 SNS를 적시고 있습니다”면서 리원량이 남겼다는 메시지가 소개됐다. ‘나는 갑니다. 훈계서 한 장 가지고...동이 트지 않았지만 나는 갑니다....어둡고 배웅하는 이 없이 눈가에는 눈송이만 떨어집니다....아이와 함께 우한 동호(東湖)로 봄나들이를 갈 수 없게 됐습니다...’

그러나 중국인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고, 눈물로 얼굴을 적시게 하던 이 메시지는 리원량이 남긴 것이 아니라 광둥성 선전(深圳)의 한 어문학원 강사가 써서 올린 가짜뉴스인 것으로 밝혀졌다는 소식이 우리 SNS에 올라왔다.

그러나 리원량이 사망한 지 5시간 만인 7일 오전 8시50분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발행하는 환구시보(環球時報) 온라인판에 “리원량 의사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제목의 사설이 올라왔다. “그가 꽃다운 나이로 신형 코로나 폐렴에 목숨을 잃은 데 대해 우리는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難過). 불과 34세의 리원량 의사가 세상을 떠나간 것은 사람들을 탄식하게 만들고 비통하게 만든다...되돌아 보면 그가 투철한 전문가 정신으로 발한 경고는 즉각 중시받지 못했고, 도리어 경찰의 훈계를 받았다. 이에 대해 우리 사회는 다시 생각해보는 반사(反思)를 전개해야 할 것이다.…”

당 기관지가 발행하는 국제문제 전문지가 리원량의 죽음에 대해 중국 사회가 반성해야 한다는 사설을 올리자 중국 내 각종 온오프라인 미디어들은 속보를 잇달아 띄우기 시작했다. “리원량 의사가 소속했던 우한시 중심병원은 ‘공상(公傷)보험 조례’와 ‘국무원 인력자원사회보장부, 재정부, 위생건강위원회 보상규정’에 따라 공상보조금을 신청했다.” “리원량 유족이 받게될 보험금은 78만5020위안(약 1억3200만원), 장례보조금은 3만6834위안(약 623만원)이 된다고 한다.”

후베이성 위생건강위원회는 공식 웹페이지에 “리원량 의사와 그 가족들에게 깊은 애도를 표한다”는 성명을 발표했고, 우한시 인민정부도 애도 성명을 발표했다. 마침내 2월 8일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당중앙 기율검사위원회와 국가감찰위원회는 우한시로 조사단을 파견해서 리원량 의사 관련 문제에 대해 군중들이 표시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전면조사에 착수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인민일보는 논평을 통해서는 “의사 리원량은 전염병과의 투쟁과정에서 자신도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돼 불행히도 세상을 떠나게 됐으면서도 ‘병이 나으면 전염병과의 전쟁 일선으로 다시 가겠다’고 밝혔다”고 전하면서 “조사단은 사실의 진상을 밝혀 인심을 안정시키고, 정의를 옹호함으로써 법치의 존엄을 지켜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중국 정부가 운영하는 검색엔진 바이두는 리원량의 프로필란도 만들었다. “리원량, 1985~2020.2.7. 본적 랴오닝(遼寧)성 진저우(錦州)시, 우한대학 임상의학과 7년제 졸업, 중국공산당원, 전 우한시 중심의원 안과의사. 2004년 대입 자격고사 통과, 우한대학 임상의학과 졸업 후 샤먼(廈門)에서 3년 근무 후 우한으로 돌아와 우한 중심의원에서 사망당시까지 근무. 2019년 12월 30일 전염병 예방 경보를 발해서 ‘췌이사오런(吹哨人ㆍ휘슬 블로우어)’로 호칭되다....”

시진핑(習近平)이 이끄는 중국공산당 리더들은 리윈량의 죽음을 전해듣고 1960년대에 마오쩌둥(毛澤東)이 만들어낸 레이펑(雷鋒)이라는 인민영웅을 떠올린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바깥에서는 다소 생소한 레이펑은 1940년 12월 18일 생으로 1960년 20세에 인민해방군 육군에 입대해서 운전병으로 근무하다가 1962년 8월 15일 랴오닝성 선양(瀋陽)군구에서 근무하던 중 사고로 사망했다. 사고는 함께 트럭을 몰던 동료와 함께 세차를 하기 위해 트럭을 후진시키는 신호를 하던 중 운전을 한 동료가 모는 트럭이 후진하면서 전신주를 들이받고, 그 전신주가 레이펑의 머리를 쳐 4시간 만에 사망한 단순한 사고였다. 그러나 레이펑은 마오쩌둥과 같은 후난(湖南)성 창사(長沙) 출신인 데다가 평소 동료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고 근면한 것으로 소문나 몇몇 관영매체들이 레이펑에 관한 기사를 실었다. 그러자 마오쩌둥이 1963년 2월 국무원 부총리 겸 인민해방군 총참모장 루어루이칭(羅瑞卿)을 불러 “레이펑은 학습할 가치가 있는 인물이다, 전군이 레이펑 정신을 학습하도록 하자, 나부터 학습을 시작하겠다”고 말한 이후 기회 있을 때마다 레이펑 학습을 강조했고, 결과는 전군뿐만 아니라 중국공산당원들과 인민들 전부가 ‘레이펑정신을 학습하는 바람이 불었다. 레이펑은 영화로, 연극으로, 뮤지컬로 만들어져 지금까지 40년 넘게 무대에 오르고 있고, 전국 곳곳 인민들이 많이 모이는 공원이나 관광지마다 레이펑의 동상과 기념관이 섰다. 1976년 마오가 종합 성인병으로 사망하고,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시대가 시작된 뒤 전국의 공공기관과 대학 등 중심 건물 앞에 수도 없이 세워져있던 마오쩌둥의 거대한 동상과 대리석상들은 슬그머니 사라져 지금은 찾아보기가 쉽지 않은 정도가 됐다.

현 중국공산당 최고 실력자 시진핑은 1953년생으로 레이펑이 사고로 죽을 당시 9세였다. 시진핑은 성장과정에서 끊임없이 ‘레이펑 정신’ 교육을 받았으며, 그 영향인 듯 2018년 9월 ‘레이펑 정신의 발상지’로 간주되는 푸순(撫順)시 레이펑 기념관을 방문해서 “레이펑은 한 시대의 모범이며,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 과정에서도 영웅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숭고한 도덕으로 일상의 업무에 임한 레이펑은 영원히 녹슬지 않는 하나의 나사못”이라고 레이펑 정신을 계속해서 승계할 것을 촉구했다. 그런 시진핑의 말에 비춰보면 우한의 코비드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팬데믹(pandemic) 사태를 ‘리원량 영웅 만들기’와 ‘리원량 정신 학습’ 열풍을 일으켜 중국 라오바이싱(老百姓)들의 민심 안정을 추구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 과정에서 리원량을 경찰로 소환해서 반성문을 쓰게한 경찰당국과 현지 당 관계자들을 처벌하고, 코비드19 사태에서 우한에 많은 확진자와 사망자가 나는 사태의 책임을 베이징 당 지휘부의 특정 책임자를 처벌함으로써 막아보려 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레이펑과 리원량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레이펑 당시는 중국사회가 정보가 제대로 소통되지 않는 닫힌 사회였다면, 이번 리원량 영웅 만들기는 그 과정을 웨이신을 통해 대부분의 중국인들이 지켜보고있다는 점이다. 과연 시진핑의 뜻대로 중국공산당 지도부가 상처를 입지않고 리원량 영웅 만들기에 성공할까.

 

의사 리원량 사망 애도하는 홍콩 시민들 (홍콩 로이터=연합뉴스)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19의 확산을 처음으로 경고했던 의사 리원량의 임시 추모소가 홍콩에 마련된 가운데 7일 마스크를 쓴 홍콩 시민들이 이곳을 찾아 애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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