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 오디세이] ⑦ ‘멜랑콜리’에 젖으려면 튀니지로 가라

정숭호 논설고문입력 : 2020-01-09 18:45
북클럽 '지중해 오디세이' 7

[튀니지의 관광명소 '시디 부 사드 해변' 전경 

 
좋은 여행기의 글 한 줄이 북아프리카 튀니지로 겨울여행을 떠나보라고 부추깁니다.

“수사 남쪽 48㎞ 엘젬이라는 마을에는 여전히 괜찮은 호텔이 없었다. 앙드레 지드의 ‘배덕자’의 주인공도 더러운 방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바람이 휘몰아치는 거리를 따라 나는 약 1800년 전에 지은 이글거리는 주랑을 향해 걸어갔다. 갈색 카프탄으로 몸을 숨긴 사람이 외로이 녹슨 자전거를 타고 휙 지나갔다. 또 한 사내는 철망 우리에 갇힌 토끼를 팔고 있었다. 거리에는 그 두 사람만 보였다.”

영향력 있는 미국 저널리스트이자 여행 작가인 로버트 카플란의 <지중해 오디세이>(이상욱 역, 민음사)에 나오는 지중해의 겨울 모습입니다. 이 책의 원제를 살려 <겨울 지중해>쯤으로 제목을 달았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겨울 지중해, 성수기가 지나 관광객을 볼 수 없는 아프리카 쪽 지중해 여기저기로 독자들을 끌고 다닙니다. 겨울비가 내리는 장면도 많습니다. 황량함과 스산함 속에서 고독이 묻어납니다. 여행에서 그런 기분을 맛보려는 사람들이라면 이 여행기를 좋아하지 싶습니다.

위 인용문에도 그런 느낌이 물씬하지요. 수사(Sousse)는 북아프리카 튀니지 제 3의 도시입니다. 엘젬(El Djem)은 기원전 2세기부터 800년 이상 이 지역을 지배했던 로마의 흔적이 많은 곳인데, 로마 때 지은 엘젬 원형경기장은 상태가 좋아 영화 <글라디에이터>를 여기서 찍기도 했습니다. 엘젬에서 조금 더 내려가면 광막한 사하라 사막. 앙드레 지드는 노벨상을 받은 프랑스의 유명 작가이고요, ‘배덕자(背德者)’는 주인공의 도덕관이 변하는 것이 주제인 지드의 소설 제목, 카프탄은 소매가 길고 앞자락을 여민 후 허리를 띠로 묶는 남자 윗도리입니다. 겨울인데 로마 때 지은 주랑(柱廊)이 이글거린다고 한 이유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주랑의 색깔이 붉어서 그런가 싶습니다. 튀니지 남쪽, 광대한 사하라 사막에서 불어오는 붉은 먼지바람은 거센데, 녹슨 자전거를 탄 사나이, 손님은커녕 행인 하나 없는 곳에서 토끼를 팔려는 상인, 이를 지켜보는 외로운 이방인 여행객 … .

카플란은 좋은 대학을 나오지 못했습니다. 원하는 직장을 얻지 못한 그는 겨울에 지중해 여행을 떠납니다. 1970년대 초반이지요. 돈 없는 청년이었으니 겨울여행을 택한 것 같습니다. 저널리스트로 성공한 후에는 지중해 지역을 다시 가본 것을 비롯 세계 여러 곳을 ‘제대로’ 여행했습니다. 그가 젊었을 때의 지중해 여행 기억을 나이 들어 다시 가본 지중해 여행 경험에 묶어서 쓴 여행기입니다. 글 흐름이 좀 독특한 건 이 때문일 겁니다. ‘멜랑콜리(Melancholy-우울, 애수, 비애)’는 요즘 잘 안 쓰이는 단어이지만 이 책에서는 이 단어로만 표현될 분위기가 살짝살짝 배어납니다.

내가 남쪽 지중해, 검은 지중해를 가게 된다면 튀니지 바로 옆 알제리부터 가야 한다는 게 원래 생각이었습니다. 알제리에서 태어난 프랑스 소설가 카뮈의 여러 작품에 실려 있는 알제리의 풍경이 오래전부터 마음에 새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카플란의 책에서 튀니지의 전설과 역사와 문화가 훨씬 오래되고 풍성하다는 걸 알고 순서를 바꾸기로 했습니다. 알제리를 가게 되면 물론 그 옆 나라 모로코도 가야겠지만요.
튀니지는 이탈리아의 시칠리아와 거의 붙어있습니다. 튀니지 수도 튀니스에서 시칠리아 서남단 항구 마르살라까지는 서울서 대구까지 거리쯤인 228㎞입니다. 유럽과 아프리카를 갈라놓는 지중해가 여기보다 좁은 곳은 폭이 불과 14㎞인 지중해 입구뿐입니다. 지브롤터와 모로코 북단까지의 거리지요.

가까우면 더 원수처럼 되는 건 어디나 마찬가지인 모양입니다. 튀니지의 초기 역사를 잠깐 돌아보지요. 북아프리카 원주민은 베르베르라는 유목인들이었습니다. 끝없이 떠돌아다녀야 하는 유목이 생업이니 국가가 없었지요. 국가가 생긴 것은 동쪽 지중해, 지금의 레바논 쪽에 살았으며 항해술이 뛰어났던 페니키아 사람들이 기원전 9세기 무렵 이쪽으로 건너와 카르타고라는 이름의 나라를 세우게 됩니다.

카르타고와 이탈리아 반도를 지배하게 된 로마 사이에는 기원전부터 시칠리아의 농작물과 지중해의 무역로를 차지하려는 크고 작은 전쟁이 그치지 않았으며, 결국에는 기원전 146년 로마가 이겨 800년 이상 이 지역을 점령했습니다. 로마가 멸망한 후에도 튀니지는 스페인 쪽에서 건너온 반달족, 이집트를 거쳐 온 아랍족 등 여러 차례 지배자가 바뀌어 인종과 문화와 종교도 다양해지고 융합되었다고 합니다. 근세에는 프랑스의 지배를 받다가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독립, 지금의 튀니지가 되었습니다.

전설에는 카르타고를 처음 다스린 왕은 디도였다고 합니다. 레바논 바로 앞 섬나라인 키프로스의 공주였던 디도는 남편을 죽인 오빠를 피해 이곳으로 와서 베르베르 사람들에게 “황소가죽 한 장만큼의 땅을 달라. 우리는 거기서 살겠다”고 해 허락을 받았는데, 잘 늘어나는 황소가죽을 길게 잘라 그 끈으로 둘러쌀 수 있는 땅에 카르타고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디도는 지중해의 거센 바람에 표류하다가 카르타고에 도착한 아이네이스라는 용사에게 반합니다. 아이네이스는 레바논 북쪽인 오늘날 터키의 아나톨리아 지역 히사를리크 부근에 있던 고대국가 트로이의 용사로, 트로이가 그리스에 의해 멸망하자 추종자들을 이끌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기 위해 이탈리아로 향하던 중이었습니다.

디도는 온 정성을 다해 아이네이스를 받들었으나 아이네이스는 이탈리아로 가야만 하는 게 자기 운명인 걸 깨닫고 디도를 버리고 다시 지중해 바다 위로 떠납니다. 슬픔에서 못 빠져나온 디도는 아이네이스와의 추억이 담긴 물건을 쌓아놓고 그 위에 앉아 불을 질러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아이네이스는 이탈리아로 가서 나라를 세웠으며 그 후손 중에서 로마를 제국으로 만든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 황제(옥타비아누스)가 나타났다는 겁니다.

디도와 아이네이스 이야기는 로마 최고의 서사 시인으로 꼽히는 베르길리우스(BC 70~BC 19)의 <아이네이스>에 담겨 있습니다. 베르길리우스는 로마를 제국으로 만드는 데 성공한 아우구스투스의 부탁-로마의 ‘용비어천가’를 써달라는 부탁을 받고 오랜 시간 연구 끝에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와 <일리아스>의 줄거리 일부를 차용해 <아이네이스>를 쓴 겁니다. <오디세이아>의 주인공 오디세우스도 트로이를 파멸시킨 후 고국으로 돌아오다가 여신 칼립소의 유혹에 빠져 칼립소의 섬에 머물다가 고국에서 아내와 아들이 기다린다는 걸 깨닫고 신들의 도움을 받아 다시 지중해로 떠나지 않습니까.

디도가 아이네이스를 구조한 덕에 건설된 로마의 후손들이 디도가 건설한 카르타고를 멸망시키고 그의 후손들을 800년 이상이나 노예처럼 부렸다는 이 아이러니! 묘한 전율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립니다. 이 아이러니는 튀니지의 수도 튀니스에 있는 ‘바르도박물관’ 최고의 보물이라는 ‘베르길리우스 모자이크’를 보면 더 짜릿하게 느껴질 것 같습니다. 가로 세로 1.2m 정도인 이 모자이크는 카르타고를 점령했던 로마 귀족의 저택 폐허에서 발굴된 것으로, 베르길리우스가 <아이네이스>를 쓰기 전에 로마신화에 등장하는 시의 여신인 무사(Musa)들에게서 영감을 얻는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이 모자이크로 장식된 대 저택에서 카르타고 노예들의 시중을 받으며 디도를 저버린 아이네이스의 전설을 읽는 로마 귀족의 모습. 승자는 화려하고 패자는 비참한 게 인간사라지만 좀 ‘거시기’합니다. 바르도 박물관은 아프리카에서는 이집트 카이로 박물관 다음으로 수장품이 많으며, 특히 모자이크만 모아 놓은 전시실은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고 합니다.

카르타고는 기원전 3세기부터 벌어진 세 차례의 전쟁(포에니 전쟁이라고 합니다)에서 로마에 패배, 나라가 사라졌습니다. 한니발이라는 카르타고 장군이 험준한 알프스를 넘어 로마군의 뒤를 치는 기습공격으로 승리를 거듭하며 로마 부근까지 진출했으나 로마는 한니발이 없는 틈을 노려 바다 건너 카르타고 본토를 공략, 최후의 승리를 차지한 거지요. 로마는 그때부터 카르타고 땅을 ‘아프리카’라고 불렀는데, 베르베르 사람들이 이곳을 이프리카(Ifrica)라고 불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카르타고가 로마에 얼마나 부담이 되었던지 스키피오라는 로마 정치가는 무슨 연설이든 마지막에는 “카르타고에 멸망을!”이라며 마무리했고, 카토라는 원로원 의원은 “카르타고 땅에 소금을 뿌려 영원히 아무것도 자라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답니다.

로마가 카르타고를 영원히 소멸시키려 한 것은 카르타고 사람들의 호화사치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지요. 당시 로마는 근검절약으로 부국강병을 꾀하고 있었는데, 카르타고는 호화사치와 음란한 풍습으로 이름 높았습니다. 지중해를 통한 무역으로 쌓은 부가 그 호화사치와 음풍을 누리는 바탕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나라는 나쁜 본보기가 될 뿐이니 지구에서 사라지게 해야 한다는 게 로마 원로원 의원들의 생각이었던 거지요. 그러나 카르타고를 멸망시키고 지중해의 패권을 잡은 로마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한창 때의 카르타고 못지않은 호화사치와 음풍에 빠졌으니 이 또한 거시기합니다.

카르타고 사람들은 바알(Baal)이라는 신을 믿었습니다. 원래 풍요와 다산을 관장하는 남자 신인데, 성경에는 음행을 조장하는 신으로도 나오지요. 튀니지에는 카르타고 때부터 내려오는 ‘어린이 묘지’가 있습니다. 누구든 첫 아이를 낳으면 신전에서 죽여 바알 신에게 바쳤고 그렇게 희생된 아이들의 유해를 매장한 곳이라고 합니다. 축구장보다 큰 이 묘지가 아이들 유해로 빼곡하게 차면 흙을 덮고 매장하고 또 덮고 매장했는데 발굴해보니 9층이나 되더랍니다. 이렇게 끔찍한 신을 카르타고 사람들은 우러러보기에 끝이 없어 남자들의 이름에는 한니발처럼 발(바알)이 들어가야만 했다고 합니다. 알프스를 넘은 한니발이 로마를 멸망시키고 카르타고가 지중해를 통일했더라면 기독교가 지금처럼 세계 종교가 될 수 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로마가 망한 후 카르타고 땅은 유럽의 야만족인 반달족에게 지배당하다가 아랍의 이슬람 세력에 넘어가 이슬람의 유럽 침투 기지가 되고, 그 이슬람도 유럽에서 쫓겨나는 역사의 되풀이. 카플란은 오늘날 유럽을 향한 북아프리카 난민들의 목숨을 건 지중해 건너기는 유럽을 한때 호령했던 이슬람 세력의 오래된 향수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글로 튀니지 여행기를 마무리했습니다.

인터넷으로 튀니지를 검색하니까 ‘론리플래닛’이라는 여행 정보 업체가 올린 글이 먼저 뜹니다. “튀니지 여행은 지금이 최적”이라는데, 정세 불안으로 관광객이 줄어서 가격대비 효율이 뛰어나다는군요. 보시는 사진도 거기서 따왔습니다.

 

[베르길리우스 모자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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