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단의 눈물②] “공단에서 투기하는 나라 한국밖에 없습니다”

신보훈 기자입력 : 2019-11-22 03:01
공장 운영 안 하고 매매 후 임대…저리대출로 80~90% 충당 “임대료만 30억 냈다”…가동률 떨어져도 월세 그대로

산업단지공단 내 공장이 수익형 부동산으로 거래되고 있었다. 중개업자들은 "임대보다 대출을 통한 매매가 저렴하다"며 거래를 유도하기고 했다. [연합뉴스]


“가동률이 떨어지면 임대료도 낮아져야 맞는 거 아닙니까. 아파트로 투기하면 여기저기에서 말이 많지만, 공장은 아무 관심이 없으니 국내 최대 중소기업 집적지인 반월‧시화공단이 부동산 투기장으로 전락했습니다. 공단에 투기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 한국밖에 없을 겁니다.”

정부가 산업단지공단 정상화를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냉랭했다. 기업의 생산 활동 지원이라는 공익적 목적으로 조성된 공간에 부동산 투기 자금이 몰려 낮은 공장 가동률에도 임대료가 낮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21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반월‧시화공단 내 임대료는 3.3m²(평)당 2만원에서 2만5000원 선에 거래되고 있다. 부지 면적과 위치 등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1000평을 임대하면 월 2000만~2500만원의 고정비용이 들어가는 셈이다. 여기에 보증금 약 2억원은 별도다.

주목할 부분은 임대료다. 한국산업단지공단이 집계한 공장 가동률은 지난 9월 기준 반월공단이 70.7%, 시화공단이 66.5%에 불과하다. 30% 넘는 공장이 가동되지 않고 있는데도 임대료는 제자리였다.

산단에 입주한 기업 대표들은 “부동산 업자들이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공장 운영을 안 하면 부지를 팔고 떠나면서 가동률과 함께 임대료가 낮아져야 하는데, 투기 자금이 들어와 부지를 인수하고 임대사업을 하기 때문에 가격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화공단에서 공장을 운영 중인 한 중소기업 대표는 “현장에서 공장 10곳 중 4곳은 가동을 안 하고 있는데, 임대료는 떨어지질 않는다. 지난 10년간 임대료로 낸 돈만 30억원이 넘는다”며 “공장의 ‘공’자도 모르는 강남 부자들이 공장을 사서 등록하고, 하루 만에 임대업으로 바꿔 수익을 낸다. 평당 15만~20만원에 분양한 부지가 지금은 600만원씩 한다. 아파트 투기로 돈을 버나 공장에서 임대료로 수익을 내나 그들 입장에서는 똑같으니 투기 목적으로 사서 임대를 돌리는 거다. 공단이 투기장으로 바뀌니 임대료가 떨어질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더 큰 문제는 산업단지 내 공장 부지가 부동산에서 수익형 매물로 활발히 거래되고 있다는 점이다. 현지 공인중개사를 통해 1000평 규모의 공장 부지를 문의하자 "60억원에 거래돼 왔지만, 급매로 55억원에 나온 물건이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매매금액은 정책자금을 활용해 90%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고, 임대료를 내는 것보다 이자가 저렴하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부동산 투자자 입장에서 제값을 받고 공장을 매매하기 위해서는 임대료가 높은 상태로 유지돼야 한다. 공실이어도 임대료를 낮출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시흥시에 위치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원래는 평당 600만원인데, 업체 사정이 생겨서 550만원까지 가능하다. 현재 공장을 운영하지 않고, 공실이어서 빨리 팔기를 원한다. 자금만 준비되면 연내에도 입주할 수 있다"며 "대출은 매매가의 80~90%까지 생각하면 되고, 정책자금을 활용하면 2% 후반대 이율이 가능하다. 임대로 사용하면 보증금 2억원에 월 임대료 2000만원이 나간다. 매매하면 이자가 1500만원 정도니 매매가 유리하다”고 말했다.

정부에서는 산업단지 내 임대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한다.

산업단지공단 관계자는 “반월·시화 등 수도권 지역 산단은 인기가 높은 지역이고, 경기상황 등에 따라 달라지는 가동률만으로 임대료를 올리거나 내리는 판단을 하긴 어렵다”며 “공단에 입주하는 기업이 영세 중소기업이 많기 때문에 부지를 모두 매매할 수는 없고, 임대가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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