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칼럼] 해양예술 역시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최지현 기자입력 : 2019-11-18 06:05
주강현 국립해양박물관장
바다 그림을 절묘하게 그렸던 ‘윌리엄 터너’의 예술세계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해양제국 영국을 뒷받침했던 해양력에는 비단 항만, 조선 등 하드파워뿐 아니라 해양예술이라는 소프트파워도 매개됐을 것이다. 네덜란드, 프랑스, 러시아, 에스파냐, 독일 등 세계의 해양강국은 해양예술 역시 깊은 저력을 보여준다. 가령, 그림을 사주고 지원해준 상인들이 없었다면 렘브란트 같은 거장의 탄생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은 전혀 사정이 다르다. 진경산수 등을 통해 바다를 그린 선인들이 없던 것은 아니나 본격적 의미에서의 해양미술은 요원했다. 강가에 유유자적 떠 있는 낚싯배를 그린 그림은 있어도 어민들의 생활상을 본격적으로 그린 그림은 거의 없다. '자산어보' 같은 물고기 책 자체가 드문 현실인 데다가 자산어보마저 그림은 하나도 없다. 국립해양박물관에서 해마다 공개구매를 진행하고 있지만, 바다 그림은 거의 신청 자체가 들어오지 않는다.

바다를 소외시키는 우리 예술의 편향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변화가 없다. ‘바다예술’은 없는 상황에서 ‘바닷가 해변 예술제’만 번성하는 기이한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국립해양박물관은 기꺼이 이 왜곡된 현실을 타파하는 일을 떠맡고 나섰다. 작은 예산이지만 해양미술품을 구입하는 초유의 일을 시작하는 중이다. 아직 회화류에 국한했지만, 차츰 수집 영역을 넓혀 척박한 한국 해양예술의 여건에서 수평선을 확대해 나가는 노둣돌을 놓고자 한다.

환경에 관해 증폭되는 관심으로 말미암아 공공미술, 환경미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플라스틱을 주제로 한 예술적 표현, 고래 등 바다 포유동물의 멸종을 다룬 예술 행위 등이 자주 이뤄지고 있다. 국립해양박물관 오는 12월에 오픈하는 등대의 예술화 작업, 그리고 독도강치 멸종을 기리는 강치 전시 등도 바다 예술화 작업의 일환이다. 어린이들에게 인기를 끄는 바다그림 그리기 대회 역시 어릴 적부터 해양친수 감정을 배양시켜 해양 의식을 제고하는 좋은 통로로 인정된다.

국립해양박물관은 바다예술화 작업에 본격적으로 나서는 중이다. 2020년 대대적인 박물관 리노베이션을 통해 오션아트 갤러리를 확보할 계획이며, 컬렉션이 축적되면 본격적인 미술전시도 구상 중이다. 국립해양박물관이 현대아트를 포용할 충분한 명분이 있으며, 바다에 관심을 기울이는 예술가의 창작을 촉진하는 데 작은 촉발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 기존의 여러 옥션이나 화랑 시스템과 전혀 다른, 국립 공공기관에서 처음 시작하는 바다 미술품 수집의 기회가 널리 알려져서 많은 예술가들이 관심을 두게 되길 희망한다.

크루즈, 요트에 관한 사회적 요구가 증대되는 중이다. 그런데 크루즈, 요트 같은 고부가가치 선박은 일반 화물선과 달리 세련된 디자인이 생명이다. 선박의 외형뿐 아니라 내장, 즉 객실과 식당 등 실내의 세련된 의장이 담보되지 않으면 크루즈, 요트의 고급화는 쉽지 않다. 그런데 세련된 디자인은 예술적 심미안 없이는 불가능하다. 예술의 일상적 성취, 즉 해양예술의 성취도 없이 고급스러운 선박 디자인이 나오기는 쉽지 않다. 이러한 산업 기술적 측면에서도 해양예술은 국가 해양력 강화에 절대적이다. 한국사회의 해양예술에 관한 생각의 변화를 촉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올해에 처리되지 못한 법안이 하나 있다. 해양재단이 발의한 가칭 '해양교육문화법인'이 그것이다. 해양교육문화를 진흥시켜 해양의식을 제고하고, 제고된 해양 의식으로 범국민적인 해양문화 활성화로 방향을 잡아나가는 목적을 지닌 법안이다. 국회가 원활하지 못한 현실에서 연내 법안 통과는 어렵게 됐다. 내년에라도 해양교육문화법이 제정되어 해양교육문화를 진흥시키는 일보를 내딛게 되길 희망한다. 해양교육문화 진흥 내에는 해양예술에 관한 진흥책도 담겨 있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주강현 국립해양박물관장.[사진=국립해양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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