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넘치는데… 돈이 안돈다

안선영 기자입력 : 2019-11-14 05:00
'돈맥경화' 걸린 대한민국… 은행에만 돈 쌓여 9월 시중통화량 7.6% 늘어 2852兆… 3년 반만에 최대 투자ㆍ소비심리 꽁꽁… 금리 내려도 예ㆍ적금 되레 급증

시중통화량 증가율이 3년6개월 만에 가장 크게 늘었다. 장기화된 저금리로 시장에 돈에 넘쳐나고 있지만,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자금이 입출금 상품으로 쏠린 탓이다.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고 투자심리가 계속 얼어붙으면 이 같은 '돈맥경화' 현상은 점차 심해질 전망이다.

한국은행이 13일 발표한 '2019년 9월 중 통화 및 유동성 동향'에 따르면 9월 시중통화량(M2·광의통화)은 2852조원(평잔)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6% 늘었다. 이는 2016년 3월(7.8%) 이후 가장 높은 증가율이다.

M2는 언제든 현금화가 가능한 자금으로, 현금통화를 비롯해 요구불예금, 수시입출식 저축성 예금 등 협의통화(M1)에 머니마켓펀드(MMF), 2년 미만 정기 예·적금, 수익증권 등 금융 상품이 포함되는 넓은 의미의 통화 지표다. M2가 높다는 것은 단기 자금화가 가능한 돈이 시중에 그만큼 많이 풀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2010~2014년 평균 5.9%였던 M2 증가율은 거듭된 금리인하 영향으로 2015년 4월 이후 8~9%대로 뛰었다. 그러다 2016년 3월부터 6~7%대로 하락했고, 월별 특징에 따라 5%대로 레벨을 낮추기도 했다. 지난해 6월부터는 6%대의 증가율을 지속했다.

9월 들어 시중통화량 증가폭이 커진 데는 수시입출식 저축성예금을 중심으로 2년 미만 정기예적금(+9조8000억원), 수익증권(+4조6000억원) 등이 크게 늘어난 영향이다. 1년 만기 정기예금의 경우 2%대 상품은 사실상 시장에서 사라졌지만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자금이 여전히 은행의 정기예금과 적금으로 몰렸다.

경제성장률뿐 아니라 기업 이익 추정치가 추가 하향조정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투자 심리는 갈수록 얼어붙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자금 순환도를 보여주는 통화승수(한은이 공급한 돈이 경제현장을 돌면서 창출하는 통화량의 배수)는 상반기 15.7을 기록하며 역대 최저치를 나타냈다. 그만큼 시중에 자금은 충분히 풀려 있지만 실제 소비나 투자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5만원권 미환수액도 100조원을 넘어섰다. 9월 말 5만권원 발행잔액(미환수액)은 102조5811억원으로 전월 대비 2조3505억원 증가했다. 발행잔액은 한은이 발행한 화폐 중 한은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고 시중에 남아 있는 돈의 양을 가리킨다.

명목 국내총생산(GDP)을 시중통화량(M2)으로 나눈 화폐유통속도는 올 1분기 0.68로 역대 최저를 기록한 데 이어 2분기에도 0.69로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화폐유통속도는 통화 1단위가 상품·서비스를 생산하는 데 몇 번이나 쓰였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화폐유통속도가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은 그만큼 경제활력이 떨어졌다고 볼 수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글로벌 경기둔화 우려와 대외적 불확실성이 지속되면서 금리가 낮아도 돈을 안전한 곳에 넣어두고 상황을 관망하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며 "통화가 시장에서 유통되지 않고 은행에 머물면 국내 경기 침체가 지금보다 더 빠르게 심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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