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다보니 '실감100% 중국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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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숭호 논설고문
입력 2019-10-30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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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책으로 23, 김필년 『대륙을 꿈꾸는 자, 한시를 읽어라』>
작은 돛배로 ‘장강(長江)’을 내달리고파
가을 여행을 부추기는 중국의 옛 시인들

 

[이백]

 

 


멋들어진 몇 수 한시(漢詩)를 읽다가 중국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솟구쳤다.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의 ‘아미산월가峨眉山月歌(아미산에 뜬 달)’는 그중 한 수다.

峨眉山月半輪秋 아미산월반륜추/影入平羌江水流 영입평강강수류/夜發淸溪向三峽 야발청계향삼협/思君不見下渝州 사군불견하유주 (아미산의 가을 하늘 반달이 떠있는데/달그림자 안고서 평강강을 흐르누나./청계를 밤에 떠나 삼협으로 향하는 몸/안보이네 못 잊을 그대 유주까지 내려오니)

아미산은 중원에서 서남쪽으로 멀리 떨어진 촉(蜀) 지방에 있는 명산이다. 이백의 고향과 가깝다.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웅지를 품고 고향을 떠나 중원을 향하던 젊은 이백은 이 시를 읊지 않고는 못 배겼나보다. 4행 28자 짧은 시 속에 아미산 평강 청계 삼협 유주(오늘날의 충칭), 높고 길고 험하며 거칠고 넓은 지역 다섯 곳이 다 담겼다. 가보지 않은 곳이지만 마음의 눈으로 살펴볼 수 있다. 가을 하늘 높이 뜬 달이 구석구석을 비춰준다. 산은 웅장하고 강은 유장하다. 돛배를 타고 밤의 강을 내려가는 청춘 이백의 마음이 헤아려진다. 비장해진다.

역시 이백의 ‘조발백제성早發白帝城(아침에 백제성을 떠나다)’도 중국으로 떠나고 싶은 마음을 갖게 하는 시다.

朝辭白帝彩雲間 조사백제채운간/千里江陵一日還 천리강릉일일환/兩岸猿聲啼不住 양안원성제부주/輕舟已過萬重山 경주이과만중산(꽃구름 속 백제성을 아침 일찍 뒤로하고/천리 먼 길 강릉성에 하루 만에 돌아왔네./양쪽 언덕 납의 소리 울어울어 안 궂는데/가벼운 배 어느덧 천 겹 만 겹 산 지났네.)

출세를 위해 고향을 떠났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 채 나이가 든 이백은 반역세력으로 몰려 유배를 가게 된다. 배를 타고 장강(양자강)을 거슬러 고향 부근 백제성에 이르렀을 때 사면 소식을 듣는다. (백제성은 삼협과 유주의 중간에 있다.) 1200리 떨어진 강릉으로 다시 내려가면서 이 시를 쓸 때 그의 심경은 복잡다단했을 것이다. 하루밤새 죽었다가(유배) 살아난(사면) 사람이니까.

이백의 심경과는 상관없이 작은 배에 올라앉아 빠른 물살을 타고 1200리 뱃길을 따라 내려가 보고 싶다. 아침햇살 속에서 붉게 빛나는 백제성을 뒤로 하고, 멀리 가까이 천 겹 만 겹 산세를 구경하는 건 장부로서 한번은 해볼 일이다. 양쪽 언덕에서 원숭이(납) 울음소리 그치지 않는 뱃길. 바람을 맞으며 쾌속으로 내려가는 마음에는 호쾌함이 가득할 것이다.

不知香積寺 부지향적사/數里入雲峯 수리입운봉/古木無人徑 고목무인경/深山何處鍾 심산하처종/泉聲咽危石 천성열위석 /日色冷靑松 일색냉청송/薄暮空潭曲 박모공담곡/安禪制毒龍 안선제독룡 (향적사가 어디인지 알지도 못한 채로/구름 덮인 산 속으로 걸어걸어 들어오다./고목은 우거져 오솔길도 아예 없고/깊은 산 어디선가 종소리만 들려온다./가파른 바위는 샘 소리에 흐느끼고/푸르른 소나무는 햇빛을 차게 하네./해질 녘 물 없는 못 구비에 앉아서/선정禪定 속에 깊이 들어 못된 용龍을 다스린다.)
 

[왕유]




이 시는 이백과 같은 시대(당나라 때) 사람인 왕유(王維)의 ‘과향적사過香積寺(향적사를 찾아가다)’이다. 산속 향적사를 찾아 나섰다가 길을 잃은 시인이 사위(四圍)의 침묵 속에서 들려오는 종소리와 샘물 소리에 의지해 절을 찾게 되고 거기서 선을 하고 있는 모습을 담은 것이라고 한다. 나는 이 시의 분위기가 청록파 시인 박두진의 ‘도봉’과 같은 느낌이어서 좋다. “산새도 날아와 우짖지 않고/구름도 떠가곤 오지 않는다/인적 끊인 듯 홀로 앉은 가을 산의 어스름/호오이 호오이 소리 높여/나는 누구도 없이 불러 보나/울림은 헛되이 빈 골 골을 돌아올 뿐” 산울림으로 되돌아오는 목소리는 고독과 자연의 침묵을 강조할 뿐이다. 향적사를 찾아 나선 왕유 역시 산속에서 비슷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나는 위에서 소개한 이백과 왕유의 시 원문과 번역, 그리고 일부 해설을 김필년(67) 박사가 2018년에 낸 <대륙을 꿈꾸는 자, 한시를 읽어라>에서 옮겨왔다. 이 책에는 도연명(陶淵明), 두보(杜甫), 이백, 왕유 등 중국 시인 4명의 시 100여 수와 해설이 들어있다. 저자는 도연명의 시로는 도가사상을, 두보의 시로는 유가사상을, 이백의 시로는 도가와 유가사상을, 왕유의 시로는 불교사상을 더듬어 보고 있다.
 

[두보]




저자는 지난 40여 년 동안 동·서문명의 상이한 발전에 대한 비교 연구라는 주제로 중국과 서구의 경제, 자연과학, 사상, 제도 등을 탐구해온 역사학자다. 그 결과물로 <동·서문명과 자연과학>(1992), <자본주의는 왜 서양문명에서 발전했는가>(1993), <시련과 적응, 보편사적 시각에서 이해한 중국문명>(2001), <권력적 사회와 반권력적 혁명들>(2010), <공자의 그물>(2017) 등 다섯 권의 역작을 냈다.

여섯 번째 책인 <한시를 읽어라> 역시 동·서문명의 차이가 문학에서는 어떻게 드러나는가를 알아보려는 시도에서 시작됐다. “자본주의, 종교, 자연과학을 대상으로 양 문명의 차이를 비교, 분석했던 그동안의 탐구와는 별도로 중국과 서구의 정신세계가 구현되어 있는 문학을 비교하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 책은 그 첫걸음”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한시를 읽어라>에는 로버트 브라우닝, 알프레드 테니슨,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로버트 프로스트 등 영미 시인들의 작품이 도연명, 두보, 이백, 왕유의 시와 비교 분석되고 있으며, 맹호연(孟浩然), 백낙천(白樂天), 유종원(柳宗元) 등 여타 중국 대시인들의 작품도 일부 소개된다.

나는 이런 것들과는 상관없이, 이백과 왕유의 시가 아름다워 그들 시의 모든 배경을 찾아 떠나고 싶다. 이 글에서 언급하지 못한 도연명과 두보의 시편으로도 후회하지 않을 중국여행 일정을 짤 수 있을 것 같다. ‘여행기’만이 좋은 여행지를 안내해주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


 

[도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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