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균 칼럼] '소부장' 협력, 독일로 눈 돌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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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균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입력 2019-10-2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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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균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




“분쟁이 발생하면 미국은 조문 해석을 통한 법적 해결을 도모하는 데 비해 유럽은 협상을 통한 정치적 해결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서울에서 미국산 소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시위가 한창이던 2011년 겨울 베를린 자유대학 한국학과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한국인의 반대는 극심한 데 반해 EU와의 협정에는 반대여론이 없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한·EU 협상의 EU 측 실무책임자의 답변이었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은 미국이나 일본과는 다른 원칙을 가지고 국제경제관계를 조율하고 있다.

일본과의 경제전쟁에서 한국이 민간 차원에서 독일과의 협력을 대응조치로서 본격화하고 나섰다. 지난 8일 서울 코엑스에서는 한국무역협회와 한·독 상공회의소가 함께 ‘한·독 소재·부품·장비 기술협력 세미나’를 열었다. 이미 2014년부터 추진되고 있는 한·독 중소기업 간 공동 연구개발에서는 규모를 확대하면서 소재·부품·장비 분야 과제의 비중을 50% 이상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앞서 지난 9월 개최된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정부는 첨단 소재·부품·장비 기업들을 상대로 투자유치활동을 벌여 다수의 기업으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얻기도 했다. 기술제휴를 위해서 한국 기업과 독일 기업·연구소 간의 기술협력, 인수·합병 발굴, 대체 수입국 물색 등을 지원하는 ‘한·독 기술협력 지원센터’를 내년에 독일에 설치할 계획이다.

독일은 소재·부품·장비 산업에서 일본을 능가하는 경쟁력을 보유한 세계적인 소재·부품 강국이다. 2017년 기준 소재·부품 세계시장 점유율을 보면 독일 9.3%, 일본 5.8%였다. 독일 정부가 최근 중국 기업에 의한 ‘히든 챔피언’ 중소기업 인수·합병을 규제하기 시작한 것도 한국에는 기회가 될 수 있다. 후계자를 찾지 못해 위기에 처한 일부 중소기업이 자금력을 앞세운 중국기업에 인수되면서 심각한 기술 유출이 발생하는 것으로 판단한 독일정부의 긴급처방이다.

한국과 독일은 상대에 대한 인식에서도 협력관계를 돈독히 하는 데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산업화에 시동을 걸던 1960년대 한국인들은 2차 대전 후 독일인들이 “3명이 모여야 성냥불을 붙여 담배를 피웠다”는 ‘가짜뉴스’(?)까지 들으면서 독일인의 근검절약에 대해 배웠다. 또한 독일의 끊임없는 과거사 반성은 식민지 시대를 경험한 한국에 특히 강한 감동을 주고 있다. 쇠락한 동독경제를 떠안으면서 ‘연대’의 정신으로 통일독일의 사회통합을 달성해 가는 저력은 마지막 분단국에 소중한 귀감이 되고 있다. 독일 사회에서는 1960~70년대 한국 광부와 간호사를 기억하는 이들이 한국인의 성실함을 칭찬한다. 독일 사회에 정착한 한국인들이 보여주는 교육열과 가족사랑은 다소 느슨해진 독일인들을 일깨우기도 한다. 2016년의 평화적인 ‘촛불혁명’은 독일인에게 한국인의 민주(화) 역량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었다. 6·25전쟁을 겪은 분단국이 이제 IT 강국의 이미지도 전파하고 있다.

‘한·독 기술협력 세미나’ 축사에서 성윤모 장관은 소재·부품 산업협력을 4차 산업혁명과 연결하면서 “한국과 독일은 세계시장을 선도할 최적의 파트너”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독일과 협력관계를 확대하는 것은 기술과 제품에서 일본을 대체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 한국경제를 한 세기 넘게 일본경제에 예속시켜온 일본정부의 전략에 맞추어져 있던 일본 기업의 전략에서 벗어나 새로운 파트너의 기업문화와 새롭게 조화를 이룰 필요가 있다. 독일의 혁신은 협력적 노사관계의 토대 위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 간과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대외적으로 본다면, 1997년 외환위기 국면에서 미국과 일본의 자본들이 서둘러 한국시장을 떠날 때 독일은행들은 상환기간 연장 등 ‘장기적인’ 지원 대책을 독자적으로 마련한 바 있다. 적어도 ‘비올 때 우산을 거두지는 않는다’. 독일 4차 산업혁명의 목표는 세계시장에서 ‘메이드 인 저머니’의 위상을 더욱 강화하는 데 있다. ‘메이드 인 코리아’의 명성을 ‘메이드 인 재팬’을 넘어 ‘메이드 인 저머니’에 접근시키는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 일본과의 지리적 인접성은 일본 정부와 기업의 ‘무례한 열등감’으로 인해 무색해지고 있는 반면, 독일과의 지리적 거리는 장기적 ‘상생’을 지향하는 ‘인내’로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을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이는 해외여행처럼 경제협력도 준비한 만큼 결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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