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소설 왕국 '스웨덴의 비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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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숭호 논설고문
입력 2019-09-2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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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책으로 18. 스티그 라르손, 『밀레니엄』>
행복한 나라 스웨덴에서 나온 끔찍한 범죄소설


 

[밀레니엄 영화 포스터]


2005년 출간된 이후 전 세계에서 9000만권 이상 팔린 스티그 라르손(1954~2004)의 범죄소설 <밀레니엄>에는 비인간적, 반문명적, 비지성적, 반윤리적, 악마적 장면이 넘친다. 재미로 사람을 죽여 토막을 내 집 지하실 냉장고에 보관했다가 슬쩍 쓸쩍 바다에 내다버리는 사이코패스(아버지와 함께 여동생을 겁탈한 변태이기도 하다)와 악덕 기업인, 악덕 법률가, 마약밀매업자, 인신매매업자, 구소련에서 활동했던 악랄한 간첩, 나치스 잔당과 파시스트들이 수많은 악행으로 소시민의 삶을 파괴한다.

스웨덴이 어떤 나라인가? 국민 행복지수와 평화지수가 세계 최상위급인 나라로, 우리 젊은이들이 추구하는 ‘소확행(小確幸·소소하지만 작은 행복)’이 넘치고, 소박하고 균형 잡힌 생활과 공동체와의 조화를 중시하는 나라 아닌가? 또 노벨상을 만든 나라, 볼보자동차와 이케아가구로 세계를 평정하고, 하염없이 슬프고 아름다운 ‘솔베이지의 노래’가 작곡된 나라, 매혹적인 금발 미녀 배우 잉그리드 버그먼과 가수 앤 마거릿을 길러냈으며, 노래 잘 부르는 혼성 그룹 아바를 탄생시켰고, 골프 여제 안니카 소렌스탐을 배출한 나라 아닌가? (프리섹스와 포르노도 스웨덴에 뿌리를 뒀거나, 관련 깊은 어휘들이지만 여기서는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런 나라에서 끔찍한 살인과 무자비한 고문과 폭력이 넘치는 <밀레니엄> 같은 소설이 나온 이유가 궁금했다. 행복이 넘치면 사람들은 그 반대의 것에 관심을 갖게 되는가? 아니면 우리는 이 나라의 어두운 곳은 전혀 알지 못한 채 그저 그들의 겉모습만 부러워하고 있는가?

<밀레니엄> 때문만이 아니다. 나의 궁금증은 라르손의 <밀레니엄> 성공 후 우리나라 서점 서가에 언제나 자리를 크게 차지하고 있는 스웨덴 범죄소설 때문에 더 커졌다. 페르 발뢰와 마이 셰발, 헨닝 망켈, 호칸 네세르, 크리스티나 올손(‘스웨덴 범죄소설의 여왕’이라는 별칭이 붙어 있다) 등 이 나라 출신 밀리언셀러 작가들의 다양한 범죄소설이 대형 서점 서가에서 내려올 줄 모른 채 꽂혀 있다. 스탈린과 김일성·김정일까지 등장해 독자들을 웃기는 요나스 요나손의 코믹소설 <창문 밖을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도 추리소설적 요소가 강한 작품이다. 이런 작품까지 포함시키면 스웨덴 범죄소설 작가들이 우리나라에서 벌어간 돈은 엄청 크게 늘어날 것이다.

<밀레니엄> 속의 살인자, 변태성욕자, 마약밀매상과 인신매매상, 악랄한 간첩들과 악덕 기업인, 악덕 변호사 무리는, 컴퓨터 해킹 전문가로 눈앞에서 벌어지는 악행만은 참고 넘어가지 못하는 여주인공 ‘리스베트 살란데’와 잡지 편집장으로 사회적 거악 취재 경험이 풍부한 ‘미카엘 블룸키스트’에 의해 하나하나 비참하게 격멸된다. 그 과정은 짜릿하고 결론은 통쾌하다.

라르손은 <밀레니엄>을 10부 시리즈로 계획했으나 3부까지만 완성하고 심장마비로 숨졌다. 책은 그가 숨진 지 여섯 달 뒤에 나왔다. 세상을 떠난 후 그의 노트북에서 제4부의 초고가 발견돼 역시 뛰어난 작가인 다른 스웨덴 작가가 완성해 2018년에 출간됐다. 하지만 라르손의 글맛은 못 살렸다. 그렇게 많이 팔린 것 같지도 않다.

1983년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라르손은 1995년에는 <엑스포>라는 시사잡지를 창간했다. 기자로 일선에서 취재할 때나 잡지 발행인이 된 후에나 그의 주 취재 대상은 스웨덴의 극우세력, 즉 네오나치주의자들과 파시스트들, 인종차별주의자들이었다. 그는 이들을 극도로 싫어했고 잡지에서 가차없이 비판했다. 이 때문에 언제나 살해 위협에 시달렸다. 길에서는 수시로 뒤를 돌아봤으며, 집을 나설 때는 다니던 길만 다니지 않았다. 집에 문패를 달지 않았고, 이런 스트레스로 입에서 담배를 떼지 못했다. 이런 것들이 그에게 닥친 심장마비의 원인일 것이라고 짐작한다. 이런 것들이 <밀레니엄> 집필 동기였을지도 모른다고 짐작해본다.
<밀레니엄> 시리즈의 남자주인공 미카엘 블룸키스트는 작가 자신이 모델이다. 그렇다면 여주인공 리스베트 살란데는? 스웨덴 동화작가 아스트리트 린드그렌의 동화 <삐삐롱스타킹>의 열세 살짜리 주인공 말괄량이 삐삐가 모델이다. <삐삐롱스타킹>을 읽은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은 삐삐에게 열광하는데, 삐삐는 두 팔로 말을 번쩍 들어 올릴 정도로 힘이 세며, 혼자 살지만 외로워하지 않고, 친구들을 괴롭히는 나쁜 어른들을 혼내줄 수도 있다. 삐삐를 스물다섯 살 리스베트 살란데로 환생시킨 라르손은 그녀를 반항아로 설정하고, 말을 들어 올리는 괴력 대신 해킹 실력과 날카로운 추리력, 그리고 담대함으로 거악을 물리치도록 했다.

살았을 때 평안함을 누리지 못한 라르손은 죽어서도 불행했다. <밀레니엄>의 막대한 저작권 수입은 그의 아내이자 평생 동지였던 에바 가브리엘손의 차지가 되어야 마땅했으나, 그렇게 되지 않았다. 라르손의 아버지와 동생이 저작권을 포함한 모든 유산 상속 자격을 주장하면서 시작된 법률 다툼에서 그녀가 이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32년간 라르손과 사실혼 관계였던 그녀를, 스웨덴의 법률은 그의 법적 부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편들어주지 않았다. 죽기 직전까지 적대세력으로부터 살해위협을 받았던 라르손은 자신 못지않게 치열한 사회운동가였던 가브리엘손을 보호하기 위해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

‘행복한 나라’ 스웨덴에서 왜 추리소설이 성행하는가를 알고 싶지만 아직도 만족할 만한 답을 못 찾았다. “사람들이 행복에 겨워서 그런가 보다”라고 결론짓는 게 마음 편하다. 가장 그럴 듯하다. “행복하자. 우리도 재미난 추리소설로 넘치는 시간을 달랠 때가 오기를 기다려보자”는 말로 이 글을 맺어야겠다.

(스웨덴에 대해 빼놓은 게 하나 있다.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라는 거다. 너무나 모범적인 복지국가라서 우리나라 정치인 여러 명이 스웨덴의 복지정책을 따라가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들이 이런 말을 들었는지 모르겠다. 지난 세기의 위대한 경제학자로 1974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F. A. 하이에크는 시장경제질서를 해치고 부패한 정치인들이 농간을 부릴 여지가 높다는 이유로 평생 복지정책을 반대했는데 스웨덴에 대해서는 복지정책을 허용할 만하다면서, 그 이유로 “정치인들이 정직하고 돈을 밝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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