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논리는 정신적 근친결혼, 기형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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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숭호 논설고문
입력 2019-09-18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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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지털 혁명가에 '혼족'은 없다

 
 




<책에서 책으로 17. 월터 아이작슨 『이노베이터』>
개혁과 발전은 개방과 협업에서 시작 된다
진영논리는 정신적 근친결혼, 기형을 낳는다

 

[애플사옥]

[월터 아이작슨]


“기계가 여성 기계의 다리를 만지는 장면을 보기 전까지는 기계가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겠다.” 컴퓨터의 출현에 지대한 공헌을 했기에 그를 ‘컴퓨터 발명자’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 영국 수학자 알란 튜링(1912~1954)이 “기계는 절대 사람을 대신할 수 없다”며 한 말이다. 튜링이 말한 ‘기계’는 컴퓨터가 발전한 ‘AI(인공지능)’일 것이다. 그는 “기계는 쑥스러워도 얼굴을 붉힐 줄 모른다”고도 했는데, 둘을 종합하면 “AI가 여성의 다리를 보고 사람이 얼굴 붉히듯 붉어지면 사람을 대신할 수 있다는 걸 믿겠다. 하지만 그런 때는 절대 오지 않을 거다”라는 뜻일 거다.

미국의 전기 작가 월터 아이작슨(1952~ )의 일곱 번째 책 <이노베이터>(정영목·신지영 역, 오픈하우스)에는 컴퓨터가 가져온 디지털 혁명에 기여한 혁신가들의 일화가 가득하다. 최초의 컴퓨터 연산가는 영국 낭만파 시인 바이런의 딸로 1815년에 태어나 1852년에 세상을 떠난 에이다 러브레이스라는 사실, 바이런이 딸을 보면서 “하느님이 이 아이를 시적인 인간으로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집안에 그런 바보는 나 하나면 족하니까”라고 했다는 따위다.

머리가 너무 좋아 ‘악마의 두뇌’로 불렸으며, 컴퓨터 중앙처리장치(CPU)의 내장형 프로그램을 처음 만들어낸 폰 노이만(1908~1957)의 천재성도 소개된다. “그는 여섯 살 때는 아버지와 고전 그리스어로 농담을 나누고 암산으로 여덟 자릿수를 여덟 자릿수로 나눌 수 있었다고 한다. 파티에서는 전화번호부 한 페이지를 몽땅 외워서 이름과 전화번호를 줄줄 읊어 사람들을 놀라게 했고, 5개 국어로 소설이나 기사를 읽은 다음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외울 수 있었다.”

어릴 때부터 반항적-혁신가의 한 모습이다-이었던 튜링에 대해서는 “진취성과 불복종을 구분하는 그 불분명한 선을 익히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는 평가와 함께 “그 아이는 정상적이지 않다는 걸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것 때문에 더 나빠지지는 않겠지만, 아마 더 불행해지기는 할 겁니다”라는 기숙학교 사감의 예언이 실렸다. 실제로, 동성애자였던 튜링은 동성애를 범죄로 간주했던 당시 법에 따라 체포돼 복역한 후 스스로 목숨을 끊은 불행한 천재였다.

컴퓨터를 공부하러 온 학생들에게 수학보다는 명료한 글쓰기의 중요성을 강조한 수학자 이야기도 나온다. ‘컴퓨터 버그’라는 말을 처음 쓴 그레이스 호퍼(1906~1992)는 미 해군 최초의 여성 제독으로도 유명한데, “학생들을 가르칠 때 숙제를 빽빽이 첨삭해서 돌려주면 영어가 아니라 수학을 배우러왔다며 항의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그러면 나는 수학을 알아봤자 설명하는 법을 모르면 소용없다고 답했다”고 한다. 설명할 수 없는 지식은 죽은 지식이며, 자신의 지식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명료하게 말하고 쓸 줄 알아야 한다고 한 것이다.

아이작슨이 <이노베이터>에서 이런 천재와 반항적인 사람들의 재미나고 독특한 일화만 알려주고 말았다면 이 책의 가치는 그리 높진 않았을 것이다. 아이작슨은 이들의 교류와 협업, 열린 마음이 ‘디지털 혁명’을 가능하게 했다며 그 사례들을 제시하고 있다.

“폰 노이만이 위대한 건 자신의 천재성에만 의존하지 않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바로바로 질문을 던지고 경청하고 부드럽게 대안을 제시하고 의견을 수집하면서 창의적인 협업 과정의 감독 역할을 수행할 줄 아는 재능이었다”는 것 같은 거다. 아이작슨은 또 “새로운 아이디어는 갑자기, 어떻게 보면 직관적인 방식으로 찾아온다. 하지만 직관은 이전의 지적 경험의 결과물에 불과하다”는 아인슈타인의 말을 전하면서 타인의 지식,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처럼 <이노베이터>는 “여러 사람 여러 조직이 열린 마음으로 협력한 곳에서 개혁과 발전이 더 쉬웠고,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도 혼자 움켜쥐고 있던 사람, 그 이득을 혼자 챙기려던 사람은 절대 성공에 이르지 못했다”는 널리 알려진 주장이 틀리지 않음을 확인해주고 있다. 이와 함께 “본인이 원했건 원하지 않았건 외딴 곳에서 협조자도 경쟁 상대도 없이 홀로 연구하고 천착해야 했던 사람도 실패자의 반열에 올랐다”는 사례도 제시된다.

협업이 발전에 더 도움이 된다는 걸 아는 조직은 조직원들이 더 쉽게 협업할 수 있도록 궁리를 하기도 하는데, 아이작슨은 전자공학과 컴퓨터 분야의 세계적 연구소인 미국의 벨연구소(Bell laboratories)를 예로 든다. “1930년대에 접어들어 벨연구소는 공간이 부족해지자 신사옥을 짓기로 했다. 운영진은 신사옥을 연구 분야에 따른 개별 건물로 구분하지 않고 대학 캠퍼스 분위기가 나게 지으려고 했다. 우연한 만남을 통해 연구자들의 창의성이 배가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아이작슨에 따르면 스티브 잡스는 70년 후 애플의 새 본사를 설계할 때 벨연구소의 전략을 따랐다. 그 자신이 천재일 잡스도 개방적 분위기가 만들어내는 ‘우연한 만남’의 생산성에 크게 주목했다는 것이다.

<이노베이터>를 읽으면서 ‘합스부르크 기형’이 떠올랐다. 1273년부터 1918년 1차 대전의 결과로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제국이 해체될 때까지 750년 가까이 영국과 프랑스를 제외한 거의 모든 유럽 국가를 통치했던 합스부르크 왕가는 정치 안정, 왕권 세습, 세력 증강, 혈통 유지를 위해 근친결혼으로 얼기설기 얽혔다. 그 결과 후대로 내려오면서 기형으로 태어난 왕자와 공주들이 많다. 턱이 길고 뾰족하며 아래 입술은 비정상적으로 두껍다. 정신과 신체 발육도 늦어 스페인의 마지막 합스부르크 왕인 카를 2세는 네 살에 말을, 여덟 살에 걸음을 시작했다.

지금 한국을 지배하고 있는 진영논리는 정신적 근친결혼의 다른 말일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 논리에 빠지면 자기들끼리만 교류하고 생각한다. 합스부르크의 왕자나 공주들처럼 기형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기형을 지나 괴물이 튀어나올 단계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바로 옆에 한국적 진영논리가 탄생시킨 괴물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아이작슨은 2014년 <이노베이터>를 쓰기 3년 전에는 스티브 잡스의 전기를, 그 전에는 아인슈타인과 벤자민 프랭클린, 헨리 키신저 전기를 썼으며 <이노베이터>를 낸 3년 뒤인 2017년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전기를 냈다. 대부분 베스트셀러가 됐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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