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 나아갈 길 안내하는 이정표"...박정희 작가, '1세대 여성운동가' 이이효재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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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은 기자
입력 2019-09-2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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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술가 박정희, 9일 선생의 80년 여성운동사 기록한 '이이효재' 출간

  • "이이효재에게 빚지지 않은 여성 없다"...근대 한국 여성사 그 자체

  • '부모 성 함께쓰기 운동' 통해 호주제 폐지·남아선호사상 타파 기여


"오늘을 살아가는 여성 가운데 단 한 명도 이이효재에게 빚지지 않은 사람이 없다."

여성주의 작가로 잘 알려진 박정희씨는 지난 9일 펴낸 책 '이이효재' 서문에 이같이 적었다.

책의 부제는 '대한민국 여성운동의 살아있는 역사'다. 표지에는 여성주의 미술 1세대인 화가 윤석남의 '우리는 모계가족' 그림이 실렸다.

박씨는 이 책을 통해 남아선호사상에 빠진 조선에 딸로 태어나 남녀가 평등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평생을 바친 1세대 여성운동가 이이효재 선생의 삶을 재조명했다.

대학 시절 이른바 '씨씨(CC·캠퍼스커플)'이었던 김한정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결혼해 2녀 1남을 얻은 필자는 두 딸의 엄마로서 딸들이 본보기로 삼을 만한 여성들을 탐구하고 알리는 데 주력하던 가운데 한국 여성사의 선구자인 이 선생을 구술인터뷰해 이번에 책으로 펴내게 됐다.
 

작가 박정희 신간 '이이효재'. [사진=네이버 도서]



이 선생은 이에 감사를 표하며 자신을 돌봐주는 병원 의료진과 지인들에게 이 책에 직접 서명을 해 선물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는 2003년 진해의 작은 도서관에서 봉사 활동을 하던 이 선생과 처음 대면했다. 당시 이 선생은 저자에게 근대 한국 여성사를 들려줬다.

이후 16년의 세월이 흘러 박씨는 집필을 끝냈다. 집필 중 담당 편집자가 바뀌고 박씨 역시 미국 유학을 떠나게 되면서 책 출간이 미뤄졌다.

저술가 박씨는 책에서 "'한 송이 꽃이 피어날 때 모든 곳에 봄이 온다'는 어느 영성가의 말처럼 이이효재 선생님은 이 땅의 여성들이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만큼 찬 바람이 쌩쌩 불던 동토에서 태어나 가장 먼저 꽃을 피우고 봄의 소식을 알린 분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여성 운동의 이론가이자 실천가로 평생을 살아온 선생님의 삶은 우리나라 여성들이 나아가야 할 길을 안내하는 이정표라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박씨의 말처럼 1924년생 가부장제가 만연했던 식민지 조선에서 태어나 올해로 96세를 맞은 고령의 이 선생에게 남녀평등은 평생의 숙원사업과도 같은 것이었다.

1924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나 이 선생은 본 여성들은 빚 대신 소실로 팔려가는 여성들을 목격했다. 또 남편의 외도로 집에서 쫓겨나거나 시댁의 학대를 견디지 못해 도망치는 여성들을 봤다.

 

이이효재 선생이 1992년 '아시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 평양 토론회에 참석해 북한의 생존 위안부들을 격려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러면서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하고 안사람으로서 남편과 아들 뒷바라지에 평생의 꿈과 희망을 바치는 여성들을 보며 언젠가 자신이 직접 세상을 바꾸리라 다짐했다.

그는 이처럼 가부장제에 희생당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보며 여성 교육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깨우쳤다. ​이후 대학에서 사회학 공부를 할 때도 어떻게 하면 지금 배우는 이 학문을 우리 여성들을 깨우치고 남성 중심 사회의 인식을 바꾸는 데 활용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이 선생은 6·25전쟁이 끝난 뒤 선생은 이화여대에서 연구를 진행하며 우리나라 여성들의 낮은 인권 수준에 참담함을 더욱 뼈저리게 느꼈다.

1958년만 해도 서울의 기혼 여성 10명 중 4명이 아들을 낳지 못할 경우 남편에게 첩이라도 얻어줘 아들을 낳겠다고 답할 정도였던 것이다. 가부장제가 더욱 공고한 농촌 지역은 그 비율이 훨씬 높았다.

심지어는 교육 수준이 비교적 높은 이화대학 학생들조차 더 좋은 조건의 결혼 생활을 위해 대학에 진학했다고 답한 경우가 있었다.

당시에도 선구적이었던 이 선생은 "독립해서 혼자 살 자신이 있는 여자가 진정 평등한 혼인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여성의 경제적·심리적인 독립을 강조했다. 이화여대에 최초의 여성학과가 설립된 것도 이 같은 노력의 결실이었다.

 

2005년, 호주제 폐지가 확정된 뒤 국회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여성 운동가들. [사진=연합뉴스]


더불어 한국여성민우회 창립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결성 등으로 이어졌다. 이 선생은 정대협 결성을 통해 일제강점기 일본군의 성 착취 문제를 전 세계에 알렸다. 아울러 부모 성 함께 쓰기 운동을 진행해 호주제 폐지에도 적극 기여했다.

박씨는 이처럼 80여 년간의 세월 간 여성학자로서 또 여성운동가로서 살아온 이 선생의 삶을 총망라했다.

1963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난 필자는 지난 1986년 서울대 소비자아동학과를 졸업하고 뉴욕주립대 코틀랜드 대학원에서 역사학 석사 학위를 얻었다.

그는 대학에 다니던 시절 이 선생의 책을 읽고 감명을 받아 여성주의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 또한 어린 시절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서당 훈장의 딸이었음에도 배움의 기회를 박탈당한 자신의 외할머니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여성주의 의식을 길렀다.

초등학교 시절 외할머니에게 한글을 직접 알려 드리고 이후 환갑이 지난 외할머니가 문맹에서 벗어나 스스로 성경을 읽으며 기뻐하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특히 그는 두 자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때부터 여성으로서의 삶과 현실에 대해 숙고하기 시작했다.

 

귀향해 진해 기적의도서관에서 어린이들에게 소개할 책을 살펴보는 이이효재 선생(2008년). [사진=연합뉴스]


고민 끝에 그는 2001~02년 어린이용 '여성 인물 이야기' 시리즈 5권을 펴내면서 국내 인물로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변호사인 이태영씨와 최초의 여성 기자 최은희 씨를 소개했다.

저자가 여성주의 작가 타이틀을 얻은 계기는 지난 2006년 여성차별 사례 5가지를 엮은 자전적 성장 동화 '외할매만세'를 펴내면서다.

박씨는 '이이효재'를 펴내며 이 선생이 우리나라 여성 인권사에 미친 영향이 어마어마하지만, 그럼에도 아직 대한민국에는 여성에 대한 차별과 가부장적 사고방식이 편재한다고 짚었다. 성 역할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 역시 마찬가지라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여성이 권리를 인정받고 남성과 동등한 기회를 보장받는 세상을 구현하는 데에 이 책이 하나의 지침서가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아울러 현재 이화여대 학생들과 여성학계에서 함께 준비하고 있는 '이이효재 평전'(가제)의 효시가 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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