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시장 르포] 추석 대목?…"10점 만점에 2점도 안 돼"

장용진·홍승완·정석준·조아라·전환욱·류선우 기자입력 : 2019-09-08 15:50
추석 일주일 앞둔 5~6일 전통시장 가보니 '손님은 1/3 줄고, 매출은 반토막'... 대형마트도 올해는 불경기

[그래픽=김철민 기자]

“추석이 맞나 싶어. 대목에 밥 굶게 생겼지. 옛날엔 지나가다 누가 때려도 모를 정도로 사람이 많았는데, 지금은 하나도 없어.”

추석을 앞둔 마지막 주말인 지난 6일. 서울시내 전통시장에서 만난 상인들은 걱정이 태산이었다. 대목을 앞두고 미리 준비를 해뒀지만 예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매상이 줄었기 때문이다.

바글거리는 사람과 흥정하는 소리로 시끌벅적해야 할 시장은 어딜 가나 한산했다. 그나마 있는 손님들도 시큰둥한 표정으로 바라보기만 할 뿐 막상 물건에 손이 가지 않는 모습이었다.

인터넷 쇼핑과 대형마트에 손님을 빼앗긴 데다 경기침체까지 이어지면서 이제 장사를 접어야 할 것 같다는 상인들의 위기감만이 시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서울의 대표적인 시장인 남대문시장과 동대문시장, 경동시장은 물론 영등포와 마천동, 망원동 등 주택가 부근의 재래시장들까지 사정을 별반 차이가 없었다.
 

지난 6일 오후 추석대목을 맞은 영등포시장의 모습. 한참 사람들로 북적여야 할 때이지만 시장골목은 텅 비었다. [사진=류선우 기자]

◆“경기가 전혀 없다”

본격적인 추석 대목이 시작되는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에는 추석 장을 보러 나온 서울 시민보다 외국인 관광객이 더 많이 보였다. 행인 10명 중 6~7명이 관광객일 정도였다.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빈대떡, 비빔밥, 떡볶이 등 길거리 음식점들은 그나마 장사가 괜찮은 편이었지만 추석 대목을 맞아야 할 수산물·청과물 상점은 한산하기만 했다.

광장시장에서 청과상을 하는 문모씨(80·여)는 "추석 경기가 전혀 없다. 단골만 오는 편"이라고 말하며 연신 손부채질만 했다.

한과·이바지 전문점을 운영하는 조명자씨(63·여)는 "경기가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면서 "예전엔 추석 일주일 전 혹은 열흘 전이면 어느 집이나 바빴는데 지금은 하나도 안 바쁘다"고 말했다.

대대적인 상가 리모델링을 하는 등 추석대목을 별러 왔던 몇몇 전통시장들도 손님들을 붙잡지 못하고 있었다.

서울 강서구 마천중앙시장은 지난해 경쟁력 있는 전통시장을 육성하는 ‘골목형 시장육성사업’에 선정돼 간판 교체와 바닥·천장 보수 등 시장을 전면 리모델링했다. 하지만 상인들은 “손님이 과거에 비해 3분의1이나 줄었고, 매출은 반토막이 났다”고 입을 모았다.

마천중앙시장에서 떡집을 운영해온 김덕화씨(57)는 “요즘 경기가 10점 만점에 2점도 안 된다”며 “상인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이벤트만 하고 있다”고 상가운영진을 향해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대형마트들이 추석대목을 누리는 것도 아니었다.

5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의 한 대형마트. 한창 사람들로 북적여야 할 저녁시간대였지만 이곳 역시 평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추석 선물 세트 판매 코너를 통해서만 추석이 다가왔음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마트는 한산했다.
 

지난 6일 오후 서울 마포구 망원중앙시장의 모습. 대목을 앞둔 전통시장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한산하다. [사진=조아라 기자]

◆상인들 "매년 매출 줄어··· 이만 장사 접어야 하나" 울상

상인들은 매년 매출이 줄어들고 있다며 장사를 접어야 할 판이라고 입을 모았다. 손님들의 발길이 끊어진 것도 문제지만 고객 1인당 구매액도 크게 줄었다는 것이다.

영등포전통시장에서 대를 이어 60년째 정육점을 하고 있다는 장은주씨(50)는 "손님들이 많이 올까봐 미리 손질해놓고 있는데 얼마나 팔릴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또 다른 정육점을 운영하는 박정민씨(63)는 “예전엔 세 근 사던 사람들이 이젠 두 근도 안 산다”면서 “하루에도 열 번씩 장사를 그만두고 싶다”고 말했다.

실제 장사를 포기한 이들도 많다. 영등포상인회에서는 "작년에 비해 점포가 최소 7~8개는 줄었다"며 "매년 폐업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밝혔다.

◆추석상 예산 줄이는 손님들

추석 장을 보려고 시장을 찾았다는 박양순씨(73)는 추석상 예산을 지난해 30만원에서 올해 20만원으로 줄였다.

박씨는 "이제는 꼭 필수적인 음식만 하고 간단히 먹기로 했다"며 "이전에 세 가지 사던 걸 두 가지로 줄였다"고 말했다.

시장에서 과일을 둘러보고 있던 김모씨(62)도 "올해는 제사상도 간소화하고, 반찬도 줄였다"며 "예전엔 과일 다섯 개 올리던 걸 이젠 세 개로 줄였다"고 말했다.

생새우를 사러 시장을 찾았다는 이모씨(42) 역시 "이번 추석 상에 오르는 음식 가짓수를 줄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시장을 찾은 소비자들은 하나같이 '경기가 나빠' 추석상 예산을 줄였다고 말했다.
 

지난 5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 손님들의 발길이 크게 줄었다. [사진=정석준 수습기자]

◆구매력 저하··· 떨어지는 통계 물가에도 오르는 ‘체감물가’

추석 시장에서 만난 소비자들은 하나같이 ‘물가가 많이 올랐다’고 걱정했다. 명절 차례상 예산을 줄이는 것도 경기침체는 물론 물가를 이유로 꼽았다.

하지만 실제 통계물가는 떨어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를 기록해 통계 작성 이래 최저점을 찍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5일 발표한 올해 추석 차례상 차림비용은 전통시장이 22만5859원, 대형유통업체가 31만3879원이다. 이는 지난해에 비해 1.1% 하락한 수준이다.

물가가 떨어지고 있는데도 물가가 오른다고 느끼고 ‘추석대목 실종’ 현상까지 나타나는 데 대해 전문가들은 전반적인 경기침체와 그에 따른 구매력 저하를 원인으로 꼽았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가처분소득이 줄어 구매력이 떨어진 탓"이라며 “저소득 계층은 고용에 타격을 입어 소득이 더 줄었고, 소득이 있는 계층에서는 소득 증가에 비해 세금이나 사회보험료 등이 더 올랐다"고 설명했다.

전통시장의 매출 하락에 대해서도 "경기 자체가 워낙 나쁘다 보니 전통시장이 그 타격을 가장 크게 입은 것"이라며 "소비자가 온라인이나 대형 마트 등으로 옮겨간 이유도 있지만, 지금 그런 곳들도 다 사정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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