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m혹등고래와 6m범고래 혈투…'알래스카 납량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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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논설고문 ·​ 서울시립대 교수
입력 2019-08-13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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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높이 750m 거대 빙하를 크루즈 안에서 감상

  • 골드러시 역사 품은 폐광도시는 관광타운으로 변모

바다의 최상위 포식자 범고래가 유람선 옆에서 시속 50km로 유영을 하고 있다. [사진=황호택 논설고문]

[황호택의 알래스카 기행 <2>]
알래스카의 주도(州都) 주노에서 미국 시애틀까지는 크루즈로 40시간 가량 걸린다. 주노는 주민수 3만2천여명으로 인구밀도가 희박한 알래스카에서 앵커리지 다음의 2대 도시다. 관광철에는 매일처럼 크루즈 5, 6 척이 정박한다. 작은 항구도시에 거대한 호텔군이 신장개업한 듯하다.
 크루즈에서 아침 식사를 마치고 버스로 이동해 고래 관광 유람선을 탔다. 알래스카에는 주로 두 종류의 고래가 서식한다. 날쌔고 포악한 범고래(killer whale)와 몸집이 거대한 혹등고래( humpback whale)의 불안한 동거다.  길이가 6m 정도인 범고래는 바다의 최상위 포식자다. 범고래는 혹등고래의 새끼를 공격해 잡아먹기도 한다. 범고래는 영화 죠스로 유명한 백상아리도 죽여서 간만 꺼내먹는다.
 고래가 사는 바다에는 관광객 50~100명이 탄 대형 유람선 5, 6 척과 30~40명 정도가 탄 소형 유람선 5, 6척이 교대로 항상 떠 있다. 고래를 보지못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접어두어도 좋다. 관광 안내 팜플렛에 고래 관람을 보장한다는 광고 문구가 들어 있다. 고래를 발견하면 유람선이 고래의 항로를 따라간다. 나도 고래를 10여 차례나 목격했다.
 머리와 턱에 혹이 수십 개 나있는 혹등고래는 다 자라면 길이가 15~16m나 된다. 몸집이 커서 과거에는 포경선의 주요 표적이었다. 일본은 최근 국제포경위원회(IWC)를 탈퇴하고 상업포경을 재개했다. 한국은 그물에 걸려 죽은 고래만 유통을 허용하는 반면 일본은 조사 포경을 명분으로 남극의 밍크고래 등을 계속 잡았다. 일본은 고래의 개체수가 너무 늘어나면 어족자원 보호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논리를 앞세운다.
 알래스카의 고래들은 추운 바다에 살지만 출산과 양육은 따뜻한 바다에 나가서 한다. 1만km 떨어진 멕시코나 하와이 해역에 가서 새끼를 낳아 길러 알래스카 바다로 돌아온다. 고래 바다의 해안에 있는 식당에서 자연산 생연어구이로 점심을 먹었다. 서울에서 먹는 양식 연어보다 느끼한 맛이 적고 부드럽다.
 주노에서 당일치기 관광을 마치고 크루즈를 타면 다음날 아침 7시경 1900년대 골드러시 열풍이 불었던 스캐그웨이에 닿는다. 주노와 스캐그웨이 일대의 산들은 지구 생성 초기에 태평양 판과 북아메리카 판이 충돌하면서 융기한 지형이다. 크루즈의 선실 발코니에서 기암절벽들의 풍광을 즐길 수 있다.
 스캐그웨이는 골드러시가 몰아닥쳤을 때 인구가 1만명에 이르렀으나 지금은 1000명에 약간 못미친다. 골드러시에 찾아온 사람들은 말에 짐을 싣고 절벽과 협곡을 건너 정상을 향했다. 이 험준산로는 화이트 패스(white pass)라는 이름과 함께 죽은 말들의 산길(Dead Horse Trail)이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사람보다 무거운짐을 실은 말이 먼저 지쳐 쓰러져 죽었다.  화이트 패스에서 무려 3천마리의 말들이 죽어나갔다. 말이 쓰러지는 바람에 수많은 사람들이 중도에서 포기하고 돌아갔다.
 1898년에 캐나다에 철도를 건설한 마이클 헨니가 예로부터 인디언들이 이용한 화이트 패스에 산악철도를 건설했다. 핸니는 “다이나마이트와 씹는 담배만 충분히 준다면 지옥에도 철도를 건설하겠다”라는 말을 남긴 사람이다. 이 철도를 건설하다 근로자 30명이 죽었지만 1천명당 1명 꼴로 죽어나간 다른 철도공사에 비하면 사망률이 낮은 편이었다. 해발 0m인 스캐그웨이에서 900m 정상까지 20 마일에 철도를 까는데 2년이 걸렸다. 화이트 패스는 캐나다 유콘주로 이어진다.
 산악철도가 깔리면서 금을 쫓아온 사람들의 고통과 비용은 줄어들었지만 골드러시에서 돈을 번 것은 광부나 일확천금을 노린 초심자들보다는 호텔, 술집, 화물운송업자 등 서비스업 종사자들이었다. 지금도 스캐그 웨이 시내에는 당시 매춘업소였던 레드 오년 살롱(red onion salon) 건물이 남아 있다. 매춘업소 시절의 사진과 유물이 전시된 1층에서는 술과 음식을 판다. 2층에서는 돈을 받고 핍쇼(peep show)를 보여준다. 1982년 금속 가격이 폭락하면서 광산은 문을 닫았고 철도도 운행을 중단했다. 그러나 1988년 크루즈가 찾아오면서 금광석을 운송하던 화이트 패스 철도위로 관광열차가 달렸다. 폐광도시가 관광타운으로 변모한 것이다.

마그리에 빙하는 알래스카의 10만개 빙하중에서 백미다. [사진=황호택 논설고문]

 저녁 무렵에 스캐그웨이를 출항한 크루즈는 밤새 차가운 바다를 가르고 글레이셔 베이(빙하 만)로 들어갔다. 글레이셔 베이에는 사람도 거주하지 않고 항구도 없다. 관광객들은 크루즈 안에 갇혀 빙하와 주변 경치를 감상한다. 수백년 동안 눈이 다져져 형성된 빙하는 숨이 턱 막히는 절경이다. 그 중에서도 마그리에 빙하가 으뜸이다. 크루즈는 마그리에 빙하 앞에서 배를 360도 돌리며 승객들이 경치를 감상하고 사진 찍을 기회를 제공한다.
 물개 한마리가 유빙(流氷)위에 엎드려 일광욕을 즐기는 모습이 한가롭다. 마그리에 빙하는 폭이 1마일, 높이가 750m이고 바다 밑으로도 300m가 들어가 있다. 글레이셔 베이의 수심은 대부분 3000m를 넘는다. 알래스카에는 10만 개가 넘는 빙하가 있는데 지구 온난화로 빙하가 점점 밀려나고 있다. 그렇지만 페워웨더 산맥(Fairweather Mountain)에 폭설이 멈추지 않아 글레시어 만은 세계에서 드물게 규모가 줄지 않는 빙하로 남아 있다.
 글레이셔 베이를 빠져 나온 크루즈는 그날 밤과 다음날 낮 동안 꼬박 27시간을 달려 캐나다 빅토리아 항에 들렀다. 관광객들은 버스를 타고 빅토리아 근교에 부처스 가든으로 갔다. 시멘트 회사 회장 부인이 석회석을 채굴한 폐광지에 정원을 조성해 세계의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명소로 만들었다. 크루즈로 돌아와 하룻밤 묵는 사이에 마지막 기항지인 시에틀에 아침 7시경 도착했다.
 여유계층이 휴가와 노후 여행을 즐기는 크루즈에는 얼굴이 뜨거워지는 이면(裏面)도 있다. 내가 탄 크루주는 카니발 크루주 사 소속으로 인도인 루마니아인 필리핀인등 수십개 국가의 외국 근로자들이 근무한다. 룸 서비스를 하는 한 근로자는 6개월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하루 13시간 일을 한다고 말했다. 한달에 1,200달러 정도 번다. 시간당 임금이 3000원 정도인 셈. 6개월 동안 일하고 나서 2개월 쉴 때는 무급(無給)이다.
 이 크루즈는 조세피난처인 버뮤다 선적으로 등록이 돼있다. 모회사는 영국과 미국 증시에 동시 상장돼 선수(船首)에 영국과 미국 국기를 함께 달고 있었다. 크루주가 제공하는 음식과 각종 서비스는 고품질이다. 마치 제3세계 국가에서 저임금 근로자를 고용해 나이키 신발을 만들어내는 것과 마찬가지다. 덕분에 크루즈 비용이 싸지겠지만 찝찝한 기분이었다.
 미국은 1867년 러시아 제국으로부터 알래스카를 720만 달러에 사들였다. 에이커(4.7 평방km2)당 2센트다. 구입 직후엔 이 계약을 성사시민 미국 국무장관의 이름을 따 ‘윌리엄 소워드의 냉장고’라는 조롱을 받았다. ‘북극곰의 정원’을 사는데 국민의 세금을 낭비했다는 반론이 거셌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보면 미국 50개 주 중에서 면적이 가장 넓은 알래스카의 자원, 경관과 안보전략적 가치는 무궁무진하다.
 이번에는 알래스카의 손잡이(팬핸들)만 보았지만 다음번에는 앵커리지에서 페어뱅크스로 이어지는 알래스카의 프라이팬을 찾아가보리라고 기약하면서 크루즈의 모항인 시애틀에서 10일간의 일정을 접었다.

1900년대 골드러시의 금광도시 스캐그웨이의 매춘업소 '레드 오년 살롱'에는 당시의 시대상을 전하는 사진과 유물이 전시되고 있다. [사진=황호택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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