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낱말인문학]왜 알아야만 면장을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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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논설실장
입력 2019-08-13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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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의 '서당']



남을 이끌려면 남들보다 많이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로 '알아야 면장을 하지'라는 말을 써온 사람이라면, 당연히 면장은 읍면동의 행정체계에서 면을 관장하는 직책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쓰면서도, 의문을 가졌을지 모른다. 왜 하필 면장(面長)이람? 동장이나 통장은 몰라도 할 수 있나? 면장부터는 학력이 필요하다는 얘긴가?

'알아야 면장'이란 관용어는, 일반의 오해가 빚은 오용(誤用)인 경우가 많다. 면장(面牆)은 '담벼락을 마주 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 말은, 흔히 면면장(免面牆)이라는 표현으로 쓰인다. '담벼락을 마주 하고 있는 듯한 답답함을 면하다'라는 의미다. 사람이 배움이 적고 소견이 좁아 대화가 안 되고 답답한 상황이 '면장'이란 의미이고, 그 답답함을 해결하는 것이 '면면장'이다. 면면장을 줄여서 면장(免牆)이라고도 한다. 마치 담벼락을 보고 얘기하는 것 같이 꽉 막힌 사람이 어느 시대엔들 왜 없었겠는가.

이 말은 논어 양화(陽貨)편에 나온다. 공자가 아들 리(鯉)에게 이렇게 말한다. "주남과 소남의 시를 공부했느냐. 사람이 이것을 읽지 않으면 면장(面牆)을 한 것처럼 더 나아가지 못한다." 주남과 소남의 시는 시경의 글로 수신제가를 담고 있다. 서경(書經)에도 '배우지 않으면 면장을 한 것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나온다. 이런 전거(典據)로, '알아야 면장'이란 말이 생겨난 것이다. 즉 공부를 해야 말귀가 트이고 생각이 밝아져서 담벼락처럼 답답한 구석을 벗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책깨나 읽지 않은 사람이면 의미를 알기 어려운, 현학적인 표현이기도 하다.

이 속담은 부메랑처럼, 그 비판의 손가락이 스스로에게로 돌아오는 맛이 있다. '알아야 면장을 한다'는 것은, '면장'이라는 의미를 알아야 이 속담의 진실을 아는 것인데 '면장'이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알아야 면장'을 쓰는 것만큼 원초적으로 답답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이런 조롱이나 풍자가 슬쩍 깃들어 있는 것이, 식자들의 마음에 들었기에 일상 속으로 자주 불려나온 표현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배움이 부족해서 소통이 잘 안 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에는 저 담벼락 인간 외에도 소 같은 인간이 있다. 그걸 벽창우(碧昌牛)라 하는데 이것은 평안도의 벽동과 창성에서 나는 소를 말한다. 이 소는 아주 크고 억세기로 소문 났는데, 그래서 벽창우는 미련하고 고집이 세면서 남의 말을 잘 안 듣고 답답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이 표현 또한 오해가 생기면서 '벽창호'로 바뀌어 쓰이기도 한다. 벽창호(壁窓戶)로 오분석을 한 것이다. 벽창호는, 아까 공자가 말한 담벼락과 거의 같은 뜻이 아닌가.

요즘 말이 안 통하는 사람, 고집불통의 사람, 소통불능의 사람, 확증편향으로 똘똘 뭉친 아집의 무리들이 도처에서 담벼락같이 버티고 서서 구석구석 답답증이 창궐하는 중이라, '면면장'이 여름날 찬물 한 그릇처럼 그리워지는 것이다.


                         이상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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