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초대석] 서스틴베스트 류영재 "착한 기업은 바른 기업 아닌 멀쩡한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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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미 기자
입력 2019-07-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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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는 4일 "환경(E)과 사회(S), 지배구조(G)를 따지는 ESG 투자가 늘어야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없앨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서스틴베스트 제공]


'착한 기업'에서 형용사 '착한'은 '바르다'보다는 '멀쩡한'에 가깝다. 환경(E)과 사회(S), 지배구조(G)를 따져 기업에 점수를 매기는 일은 이제 자연스럽고, 그렇게 투자할 종목을 골라야 돈을 더 번다는 통계도 많다. 주식시장에서 투자자를 울렸던 기업치고 ESG 점수를 후하게 받았던 '멀쩡한' 곳도 드물다.

◆주식시장에서 ESG는 돈이다

수탁자책임원칙(스튜어드십코드) 도입으로 낯설었던 의결권자문사가 제법 익숙해졌다. 세계적으로 가장 큰 의결권자문사는 미국 젠스타캐피털 자회사인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다. 의결권자문사는 상장법인 주주총회 안건을 분석해 기관투자자에게 의견을 내놓는다.

4일 본지는 우리나라 1호 의결권자문사로 불리는 서스틴베스트 류영재 대표를 만나 'ESG 투자론'을 들어보았다. 그는 대뜸 "ESG나 사회책임투자(SRI)에 더는 '착한 투자'라는 말을 안 썼으면 좋겠다"고 했다. 비재무적인 요소까지 깐깐하게 따져 돈을 지키는 것이지, 어수룩하고 순진한 투자는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ESG 점수를 높게 받은 상장법인 수익률은 눈에 띄게 좋았다. 코스피는 2015년 4월 1일부터 2018년 11월 1일까지 거의 제자리걸음(-0.2%)했다. 이처럼 주식시장이 상승 탄력을 잃었을 때도 ESG 모범생은 달랐다. 서스틴베스트가 ESG 점수를 'AA' 또는 'A'로 매긴 상위권 기업 주가는 같은 기간 7% 넘게 올랐다. 일부 기업만 가지고 집계한 통계도 아니다. 서스틴베스트는 코스피와 코스닥을 합쳐 상장법인 1000곳 이상을 대상으로 10년 넘게 ESG 점수를 매겨왔다.

과거에는 사회책임투자가 피상적인 도덕이나 윤리를 강조했다. 담배나 술을 파는 회사 주식은 사지 말라는 식이었다. 물론 이제는 달라졌다. 이런 기업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사고를 치고 투자자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 비재무적인 환경과 사회, 지배구조까지 따져 투자할 회사를 고르는 이유다. ESG 평가는 요즘처럼 성장성과 기술력을 맨 앞에 내세우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더 중요하다.

금융사도 돈을 빌려줄 때 담보뿐 아니라 ESG까지 따져야 한다. 기업가치 가운데 유형자산보다 무형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과거보다 훨씬 커졌다. 류영재 대표는 "ESG 평가를 제대로 해야 혁신성장도 꽃피울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아직 걸음마 단계

ESG 투자는 아직 우리나라에서 걸음마 단계다. 금융 선진국은 이미 2008~2010년 연기금 펀드를 중심으로 ESG 투자를 본격화했다. 국제연합(UN)은 2006년 UN PRI(책임투자원칙)를 내놓았다. 당시 원칙에 서명한 미국 기관투자자만 30곳에 달한다. 이제는 2400여곳이 국제연합투자원칙을 따른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2009년 홀로 가입한 국민연금마저도 소극적이다.

류영재 대표는 "세계지속가능투자연합(GSIA)이 얼마 전 내놓은 자료를 보면 미국은 전체 자산 가운데 50%를 ESG까지 고려해 투자한다"며 "일본도 17%에 달하지만, 우리나라는 0.46%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는 "외국에서는 자산운용사뿐 아니라 신용평가사인 S&P나 무디스도 ESG를 챙긴다"고 덧붙였다.

정부가 나선다면 ESG 투자는 늘어날 수 있다. 해당 펀드에 대한 세제 지원이 먼저 꼽을 수 있는 방안이다. 류 대표는 "기관투자자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ESG 투자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며 "ESG 투자에 대해서는 (1년 단위로 점수를 매기는 다른 투자와 달리) 5년 단위로 평가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국내 기관투자자는 지금까지 해오던 것 이상으로 위험을 감수하기를 꺼린다"며 "ESG 투자를 위탁할 때 구체적인 원칙과 지침을 정해 요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우리 주식시장 저평가도 ESG로 풀어야

한국 주식시장이 저평가돼온 이유는 한두 개로 줄이기 어렵다. 그래도 ESG 투자 활성화만으로도 저평가 해소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한다. 일반투자자를 외면하는 지배구조와 턱없이 낮은 배당성향을 개선해야 제값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류 대표는 "ESG를 중심으로 상장법인을 평가하면 대다수 기업이 지배구조 개선에 나설 것"이라며 "정부가 나서서 지원해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ESG 펀드는 여러 펀드 가운데 하나일 뿐이었다. 전 세계적인 흐름과는 달리 사회책임투자에 대한 인식이 나아지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류 대표는 "모든 펀드를 평가할 때 ESG를 반드시 활용해야 한다"며 "평가를 어떻게 계량화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할 때"라고 전했다. 그는 "일본은 2018년까지 3년 만에 ESG 투자를 8배 넘게 늘렸고, GSIA 보고서에 단독으로 나라 이름을 올릴 만큼 시장을 키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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