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남북미 정상, 판문점에서 평화의 새 역사를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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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 기자
입력 2019-07-01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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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 정치부장]

전대미문의 일이었다.
남·북·미 정상이 분단의 상징인 판문점에서 정전 66년 만에 처음으로 한자리에 섰다. 미국 현직 대통령이 역사상 처음으로 판문점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북한 땅을 밟았다. 그리고 북·미 정상은 판문점에서 1시간가량 번개회담을 했다. 사실상 3차 북·미 정상회담이었다.

전 세계의 시선은 일제히 판문점으로 쏠렸다.
정전협정 두 당사국이자 70년 적대국의 최고지도자가 군사분계선을 넘나들며 분단을 허물었다. 리얼리티 TV쇼보다도 더 극적인 드라마였다.

게다가 이번 '판문점 번개 회동'은 사전 각본도, 합의도 없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트위터’ 제안부터 실제 만남까지 격식과 의전을 과감히 파괴한 '파격의 연속'이었다.

지난 2년 반 동안 꾸준히 쌓아온 북·미 정상 간 신뢰가 없었더라면, 승부사 기질을 가진 북·미 정상의 특별한 캐릭터와 신비로운 케미(궁합)가 없었더라면, 무엇보다도 구불구불 가더라도 평화로 가는 길은 결코 멈추지 않겠노라고 지독하리만큼 끈질기게 포기하지 않았던 문재인 대통령의 인내심이 없었더라면, 판문점에서의 새 역사는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번 회동으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를 구축하기 위한 평화 프로세스가 큰 고개를 하나 넘었다"고 했다.

 

판문점에서 함께한 남·북·미 정상 [연합뉴스]


잠시 멈췄던 비핵화 시계가 다시 돌아간다.
지난 하노이 노딜의 한계로 실무협상의 부재가 지적된 만큼 북·미 정상은 비핵화 실무협상부터 본격화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비핵화에 관한 '주고받기' 해법을 논의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그 결과를 갖고 김 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하겠다는 구상으로 읽힌다.

북·미 비핵화 협상의 관건은 양측이 제시한 비핵화 로드맵의 간극을 좁히는 것이다. 미국은 그동안 일괄타결과 선(先) 비핵화 후(後) 제재 완화 또는 후 보상을 내세우고, 북한은 동시 행동·단계적 해법에 따른 상응조치를 내세웠다.

트럼프 대통령은 서두르지 않겠다고 했다. 속도보다는 좋은 협상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새로운 전략 노선에 따라 경제 발전과 민생 개선을 위해 힘쓰며 특히 외부 환경이 개선되길 희망하고 있다. 김 위원장이 판문점 회동을 선뜻 수락한 것도 그만큼 제재 완화를 통한 경제발전이 절실하다는 방증이다.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북핵 비핵화 협상 타결은 구미 당기는 카드가 될 수 있다.

남북 모두 이 기회를 잘 살려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을 백악관에 공식 초청했다. 김 위원장이 워싱턴행을 결행한다면 세계사적 격변으로 기록될 것이다. 좀 빠를 수는 있지만, 김 위원장이 오는 9월 유엔총회 계기에 미국을 방문해 국제지도자로서 외교무대에 공식 데뷔하면서 3차 북·미 정상회담을 주도적으로, 성공적으로 견인하기를 기대해본다. 이를 위해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적극 설득하고 판을 만드는 데 중재자로서 역할을 다할 것으로 믿는다.

이번 남·북·미 판문점 회동에서 가슴이 울컥해진 장면이 있다.
트럼프·문재인 대통령은 북·미 회동을 마치고 북측으로 돌아가는 김 위원장을 군사분계선까지 따라가 배웅했다. 그 장면은 취재진들에게 가려져 생중계되지는 못했지만, 그날 늦은 오후 언론을 통해 공개된 몇 장의 사진들은 내게 진한 여운을 남겼다.
 

[연합뉴스]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보는 앞에서 문 대통령과 꼭 껴안고 깊은 포옹을 나눴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에게 "고맙습니다"라고 말했다 한다. 김 위원장은 북측 군사분계선으로 넘어가서도 뒤돌아서서 문 대통령을 향해 수줍으면서도 정겹게 손을 흔들었다. 문 대통령도 김 위원장에게 손을 흔들었다. 석별의 정을 나누는 남북 정상의 표정이 마치 형님 아우처럼 너무나 애틋해 보여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만나자, 판문점에서’
엄혹했던 독재시대 1980~90년대 청년들은 최루탄 가루가 날리는 거리에서 이 구호를 외치며 민족통일과 화해를 부르짖었다. 그리고 꿈만 같았던 이 구호는 30년이 지나 정말로 현실이 됐다.

이제 20년 후에는 자신 있게 통일의 미래를 그려볼 수 있지 않을까? KTX를 타고 백두산·개마고원까지 내달리고, 점심은 평양 대동강변 옥류관에서 냉면을 먹고, 저녁에는 부산 해운대에서 친구들과 꼼장어 안주에 소주 한 잔 기울이는, 남북이 하루생활권이 되는 꿈같은 그런 날도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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