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도시재생 선진모델 현장을 가다](6)정부가 움직이는 싱가포르 도시재생...올해 달라진 마스터플랜 살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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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 윤지은 기자
입력 2019-06-24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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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부 주도의 치밀한 도시계획...리더십이 만든 아름다운 경관

  • 최근 '톱다운'에서 '바텀업' 시도...싱가포르 정부 의식 달라져

야간에 바라본 마리나베이샌즈의 전경. 싱가포르 국민들과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크루즈를 타고 수변 건축물을 둘러보며 하루를 마무리했다.[사진 = 윤지은 기자]

싱가포르 창이국제공항에 첫발을 디뎠을 때 가장 먼저 실감했던 건 이곳이 도시국가라는 점이었다. 영토의 동쪽에 치우쳐 있는 창이공항에서 시내까지는 차량으로 20~30분이면 충분히 닿을 수 있었다. 싱가포르는 국토면적 692㎢, 인구 556만명의 작은 도시국가다. 국토면적은 서울(605㎢)보다 조금 넓은 수준이다. 토지면적상 제약을 고려하면 싱가포르는 토지사용을 가능한 최적화할 필요가 있었다. 정부 주도의 치밀한 개발이 움트게 된 배경이다.

◆ 정부 산하 기관 주도의 치밀한 도시계획...강력한 리더십이 만든 아름다운 경관

싱가포르 정부는 10년 주기 콘셉트플랜, 5년 주기 마스터플랜 등 도시계획을 세워 국가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1971년 최초 수립된 콘셉트플랜은 현재 싱가포르의 도시 구조를 정의한 최초의 전략적 장기 토지 이용계획이다. 이 같은 플랜을 주도하는 것은 싱가포르 정부 산하의 '도시재개발청'(URA)이다. 우리나라의 국토교통부격이라고 볼 수 있지만, 도시계획 분야만 집중적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싱가포르가 정부가 가장 심혈을 기울여 관리하는 지역은 중심사업지구(CBD) 등 시내다. 싱가포르의 핵심 부지인 만큼 스카이라인이 깔끔하게 정돈돼 있었고 건물과 건물 사이 간격마저도 치밀하게 계획된 느낌을 줬다. 가장 눈에 띄는 건축물은 마리나베이샌즈였다. 상단부가 유람선과 나무 등으로 장식돼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곳은 우리나라의 쌍용건설이 시공한 호텔로 잘 알려져 있다. 내부에 들어서면 프리미엄 쇼핑몰, 카지노, 컨벤션 등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오늘도 수없이 많은 싱가포리언과 관광객들이 발길을 모으는 곳이다. 이곳을 중심으로 새롭게 지어지는 건축물들이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마리나베이샌즈로 쇼핑을 자주 온다는 주민A씨는 "싱가포르에서 16년을 살았고 이곳에 수도 없이 왔지만 아무리 와도 질리지 않는다"며 "마리나베이샌즈뿐 아니라 인근 루이비통 아일랜드도 외양과 내부가 아름답다"고 평했다.

싱가포르는 국토의 80%가 국유지다. 건국 초기 정부가 보상을 전제로 토지를 대거 강제수용했다. 이 때문에 건물을 새로 올리고자 하는 디벨로퍼는 정부로부터 30~60년 장기 '리스'(lease)를 받아야 한다. 싱가포르 공공주택 임대기간이 99년임을 감안하면 리스 기간이 길지 않은 편이다. 도시계획은 한 번 수립되면 끝나는 게 아니라 끝없이 변모하고 발전해야 한다는 싱가포르 정부의 철학이 읽히는 부분이다.

이관옥 싱가포르국립대학교 도시계획과 교수는 "URA는 공사 시작부터 끝까지 참여하며 디테일한 부분까지 챙긴다. 마리나베이샌즈나 CBD에 짓는 오피스 같은 경우 특히 그렇다. 예컨대 오피스 옆에 어느정도의 공간이 있어야 하고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 나무가 심겨 있어야 한다는 식으로 굉장한 디테일을 요구한다"며 "다만 디벨로퍼의 제안이 도시 전체의 미관이나 경관에 도움이 된다면 조정은 유연하게 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싱가포르에는 '화이트 사이트'(White site)라는 토지 범주가 있다. 이 지역은 용적률 같은 토지이용규제가 전혀 없다. 시장의 요구가 급변하는 만큼 토지이용규제로 지역을 묶어두는 건 비효율적이라는 게 URA의 생각이다. 화이트 사이트는 싱가포르 국토의 10% 미만을 차지하며 주로 CBD 등 프라임 지역에 분포해 있다. 싱가포르 정부는 향후 프라임 지역을 중심으로 화이트존을 더욱 늘려간다는 계획이다. 화이트 사이트로 지정된 곳이 난개발되지 않을까하는 의구심이 들 수 있지만 싱가포르 정부는 이미 콘셉트플랜 등 장기적 비전을 두고 있는 상태인 만큼 정부와 디벨로퍼간 협상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 교수는 "싱가포르 정부는 디자인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마리나베이샌즈가 아이코닉한 디자인으로 유명하지만 일반적인 콘도 같은 경우도 특이한 디자인이 많다"며 "정부가 비딩을 할 때 예전에는 입찰가를 가장 중요하게 봤다면 요즘은 디자인을 굉장히 중요한 평가요소로 꼽는다. 아이코닉한 건축물이 도시에 많아져야 도시의 이미지가 향상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디벨로퍼들도 유명한 건축가를 많이 섭외한다"고 말했다.
 

올해 갱신되는 마스터플랜 가안을 펼쳐놓은 전시회. 지난 20일까지 URA시티갤러리에서 열렸다.[사진 = 윤지은 기자]

◆ 최근 '톱다운'에서 '바텀업' 시도...싱가포르 정부 의식 달라져

다만 '톱다운'(Top-down) 방식을 고수하던 싱가포르 정부도 최근 들어선 '바텀업'(bottom-up)에 관심을 보이는 추세다. URA는 올해 갱신되는 마스터플랜의 가안(Draft plan)을 온라인과 소셜미디어, URA시티갤러리 등 오프라인 플랫폼을 통해 공유하고 있다. 지난 20일까지 URA시티갤러리에서 열린 전시회에는 URA가 그려놓은 청사진이 각종 시청각물과 함께 나열돼 있었다. 싱가포르 국민은 물론 관광객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전시회를 체험하는 모습이었다. 국민들이 피드백을 하면 URA는 이를 반영해 연말께 정식 마스터플랜을 내놓는다는 구상이다.

URA 관계자는 "국민들을 초기 도시계획 과정에 참여시킴으로써 주민들의 도시계획에 대한 이해도와 지역사회에 대한 주인의식을 높일 수 있다"며 "이는 URA가 사회 각 분야의 다양한 필요와 기대를 충족시키는 데 있어서도 중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싱가포르 동쪽에 위치한 템피니스는 이 같은 변화가 잘 드러나 있는 공간이다. 재작년 URA가 주민 의견을 수렴해 오픈한 템피니스 허브는 수영장, 배드민턴장, 축구장, 조깅트랙, 암벽등반시설, 바비큐장 등 각종 편의시설을 품고 있었다. 여러 개의 나무의자가 주르륵 놓여 있는 휴식공간도 눈에 띄었다. 방학기간 마땅한 학습공간을 찾기 어려운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공부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었다. 중앙에는 영화를 단체관람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돼 있었는데, 어르신들이 모여 집중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올해 갱신되는 마스터플랜 가안의 면면을 살펴보면 진일보한 부분이 여럿 눈에 띈다. 기존 도시재생에 대한 반성도 읽힌다. 싱가포르는 그동안 경제성을 강조하는 데 치우쳐 지역이 가진 고유의 특성을 잃어버렸다는 지적을 받았다. 지나치게 관광지화해버린 차이나타운, 클락키 등이 단편적인 예시다. 싱가포르 정부는 이 같은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영국 식민지 시절 세워졌던 '숍하우스'의 외양을 보존하고 내부를 리모델링해 새롭게 이용하는 방식 등을 장려하고 있다. 숍하우스가 몰려 있는 지역은 외관을 바꾸지 못하게 하는 규제도 만들었다. 숍하우스는 차이나타운, 클럽스트리트, 탄종파가 등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교회 외관을 그대로 보존하고 내부만 리모델링해 트렌디하면서도 예스러운 매력을 갖춘 차임스도 인상적이다.

URA 관계자는 "우리가 보존해야 할 유산이 있는 지역은 시장 수요에 따라 변화하기 마련"이라며 "따라서 우리가 견지하는 보존의 원칙은 과거 건물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과 같은 맥락에서도 계속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재작년 오픈한 템피니스 허브의 내부 모습. 템피니스 주민들은 주말이나 공휴일이면 이곳에서 여가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다.[사진 = 윤지은 기자]

에코프랜들리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싱가포르에서는 마리나베이샌즈뿐 아니라 오피스 등 다양한 건축물 곳곳에 나무가 심긴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보타닉가든처럼 자연적으로 형성된 유산뿐 아니라 가든스바이더베이 같은 인공적 녹색지대도 시내와 가까운 곳에 두고 있다.

URA 관계자는 "우리는 자연친화적 공간을 보호하고 향상시키기 위해 의식적이고 신중한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며 "자연유산을 보호하고 자연생태계의 복원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계획적이고 체계적인 노력 덕택에 우리는 4개의 자연보호구역, 20개의 자연지역, 그리고 자연공원 등 네트워크를 갖게 됐다"고 전했다.

이어 "녹지공간은 현재 7800헥타르 정도지만 향후 1000헥타르가량 늘어날 것이며 미래에는 90% 이상의 가구가 '공세권'에 살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URA 관계자는 유산과 녹지를 보호하는 과정에서 원하는 모든 것을 지킬 수는 없다는 점을 전제했다. 한정된 토지와 다양한 필요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유산을 보존하는 것과 국가의 발전을 지원하는 것 사이의 미세한 균형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며 말을 맺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기금 취재 지원을 받아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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