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접시 닦는 정세균이 꾸는 꿈

임병식 객원 논설위원 (전 국회 부대변인)입력 : 2019-06-19 18:14

[사진=임병식 객원 논설위원]




21대 총선까지는 10여개 월 남았다. 그럼에도 언론과 정치권 관심은 벌써부터 뜨겁다. 그 가운데 서울 종로가 있다. 도대체 종로가 어떤 곳인가. 종로는 단순한 지역구 한 석을 뛰어넘는다. 정치적 무게가 다르다. 상징성은 물론이고 총선 판도를 뒤바꿀 만큼 휘발성이 강한 곳이다. 우선 걸출한 인물들이 거쳐 갔다. 윤보선, 노무현, 이명박 전 대통령이 그렇다. 정세균 의원 역시 마찬가지다. 19대, 20대 당선을 발판으로 20대 국회의장을 지냈다. 상대는 19대 홍사덕, 20대 오세훈이다. 홍사덕은 한나라당 원내대표와 국회 부의장을 지낸 6선 의원이었다. 또 오세훈은 재선 서울시장을 거친 유력한 새누리당 대선 주자였다. 정 의원은 이들을 차례로 꺾고 민주당 정권 탈환에 필요한 초석을 다졌다. 종로에서 입지는 단단하다. 오세훈이 쫓기듯 지역구를 옮긴 이유도 이 때문이다.

국회의장을 지낸 정 의원이 대선을 꿈꾸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런데 복병을 만났다. “국회의장을 지내고 출마한 전례가 없다. 당내 어른으로 남아야 한다”는 여론이 그것이다. 여기에 임종석 전 비서실장은 종로로 이사했다. 이낙연 총리까지 거론된다. 이런 정황과 맞물려 정 의원 행보에 관심이 집중된다. 정 의원은 아직까지 가타부타 말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지역구 의원이라면 마지막까지 성실한 지역구 활동은 당연한 책무다. 게다가 지역구는 호주머니 속 공깃돌이 아니다. 사사로이 주고받는다면 역풍을 맞을 게 뻔하다. 민주당은 좋은 후보를 내고, 지역민들은 선택하면 되는 것이다.

정세균 의원은 19대 총선을 앞두고 전북 무진장을 떠났다. 주변은 만류했지만 종로에서 보기 좋게 당선됐다. 그는 열린우리당 의장, 민주당 대표를 지낼 만큼 당 안팎에서 후한 평을 듣는다. 야당과 공직사회 평가도 마찬가지다. 산업통상자원부 간부 A씨는 “역대 최고였다. 정치력과 친화력을 겸한 선이 굵은 장관이었다. 그때는 일하는 게 신명났다”고 기억했다. 국회의장 불출마 관행과 세대교체론은 넘어야할 산이다. 하지만 국회의장 불출마는 관행일 뿐이다. 의장을 지내고도 출마한 선례는 숱하다. 14대 후반기 의장을 지낸 황낙주는 15대 출마해 당선됐다. 박준규는 13, 14, 15대 의장을 지냈다. 또한 14대 전반기 의장을 지낸 이만섭은 15대 의원을 거쳐 16대 전반기 의장을 지냈다. 그러니 국회의장 불출마 관행은 걸림돌이 아니다. 당선 경쟁력을 우선해 당에서 결정할 문제다.

세대교체론 또한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획일적인 세대교체가 능사는 아니다. 노장청(老壯靑)이 어울릴 때 강하고 오래간다. 청년의 기개, 장년의 성숙, 노년의 지혜다. 그럴 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세대교체라는 명분으로 소중한 자산을 내팽개치는 잘못을 경계해야 한다. 언젠가 정 의원에게 정치에 뜻을 두게 된 계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는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깡촌 출신이다. 가난이 떠나지 않았다. 면 소재지까지 왕복 16km를 걸어 중학교 과정을 마쳤다. 검정고시로 시골 고등학교에 진학했으나 대처인 전주에 있는 공업계 고등학교로 옮겼다. 다시 인문계 고등학교로 편입했다. 고등학교를 세 곳 다니게 된 연유다. 그리고 학교 매점에서 빵을 팔며 근로 장학생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적어도 가난 때문에 가고 싶은 학교를 가지 못한다면 너무 불공평하지 않은가. 최소한 교육 기회는 모두에게 주어져야 하는 건 아닐까.” 그가 정치에 뜻을 두게 된 계기다.

정 의원은 속된 말로 튀는 정치인이 아니다. 조용하고 담백하다. 오랫동안 정치를 해왔지만 큰 소리치고 상대를 공박하는 일은 여전히 낯설고 어색하다. 언론과 지지층으로부터 환호 받을 수 있는 기회도 마다했다. 국회의장 재직 당시 일화다. 최순실 특검법 연장이 뜨거운 관심사였다. 여론은 압도적으로 특검법 연장을 찬성하며 국회의장 직권상정을 요구했다. 참모들도 강하게 건의했다. 그러나 그는 직권상정 요건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반대했다. 천재지변, 전시 또는 사변 등 국가비상사태가 아니라는 이유다. 대통령 직무 정지를 국가비상사태로 해석하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툼의 여지가 있는 데 자의적으로 해석할 경우 잘못된 선례를 남길 수 있다며 거부했다. 자신에게 돌아올 환호를 스스로 걷어찬 셈이다. 정 의원이라고 그런 정치적 셈법을 모를 리 없다. 그러나 의회주의자 정세균 의원에겐 한때 인기에 영합하는 것보다 원칙이 중요했다. <정치에너지 2.0>이란 책에서 그는 “정치란 우리가 공동체를 이루어 합의에 도달하고 그것에 따르도록 만드는 기술이자 예술이다”고 했다. 그런 소신과 상통한 결정이었다.

정 의원은 2006년 산업자원부 장관 취임식에서 이렇게 당부했다. “일하다가 접시를 깬 사람은 용서하겠지만 일을 하지 않아 접시에 먼지가 낀 사람은 용서하지 않겠다.” 정세균 의원이 다음 총선에 출마하든, 대선을 꿈꾸든 공동체를 위해 접시를 닦는 과정이라면 이를 마다할 일이 아니다. 그가 권위에 머물러 있기보다 접시 닦는 일에 매진하겠다면 오히려 박수칠 일이다. 종로가 ‘정치 1번지’라면 화합과 통합의 리더십을 지향하는 정세균이 지닌 가치를 눈여겨 봐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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