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인사이드]베트남 내수시장 이끄는 힘...'싱가포르 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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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언 기자
입력 2019-06-20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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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찌민 시내 부동산 절반이 싱가포르?...내수의 제왕 싱가포르

  • 부동산, 유통, 물류, 의료 등 "베트남 곳곳 뿌리 깊게 자리잡아"

  • 싱가포르 기업 '그랩' 미국 우버 물리쳐...현지화 전략 유효

베트남과 싱가포르 국기[사진=주베트남 싱가포르 대사관 제공]

탄 셍 탁(52) 씨는 베트남에 거주하는 싱가포르 교민이다. 그는 싱가포르계 회사인 환미병원(Hoan My)의 총괄이사로 근무한다. 베트남에 온지 벌써 20년이 다됐다는 그는 현지에서 베트남인 아내를 만나 1남 1녀를 둔 베트남-싱가포르 가정의 가장이기도 하다.

환미병원은 베트남에서 탄탄히 자리잡은 외국계 병원 중 하나다. 현재 베트남 전역에만 6개 지점이 있으며 저가의 베트남 정부 의료시설과 유럽계 고급의료시장 사이에서 중저가 병원으로 위치를 확고히 했다. 탄 셍 탁씨는 싱가포르에서 첫 파견직으로 베트남에 입국해 환미병원의 성장과 함께 자신의 인생을 이곳에서 보냈다.

현재 베트남에 사는 싱가포르 교민은 약 5000여명으로 추산된다. 이 중 절반인 2500~3000명 이상이 호찌민시에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중·일 다른 3국에 비하면 상당히 적은 숫자다. 싱가포르인들의 특징은 한국인이나 일본인들처럼 한 곳에 몰려있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현지화를 통해 넓게 분포해서 산다는 점이다.

탄 셍 탁 이사는 “본인 또한 시내 외곽지역인 9군에 살고 있다”며 “같은 국적의 친구들을 만날 때나 가끔 싱가포르식당 같은 곳을 가지만 이를 제외하고는 특별히 싱가포르인들만 뭉쳐서 사는 곳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픽=아주경제]


◆철저한 현지화와 싱가포르 장점 결합..."작지만 힘 좋은 일본 경차 같은 느낌"

베트남에 거주하다보면 인구는 적지만 베트남 곳곳에 자리한 싱가포르 자본이 상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싱가포르 자본은 한국이나 일본처럼 대규모 투자가 돋보이지는 않지만 의료, 부동산, 물류, 유통 등 베트남 생활 전반에 스며들어 위력을 떨치고 있다.

평소 싱가포르인 친구들을 만난다는 한 한국 교민은 “대부분의 싱가포르 교민들은 현지에서 결혼하고 싱가포르계 회사에 다니거나 작은 사업들을 벌이고 있다”며 “이들의 특징은 현지에서 결혼을 많이 하고 철저하게 현지화한 것”이라고 말했다.

베트남에 사는 싱가포르인들의 특징을 모두 일반화하기는 힘들지만 장기 거주한 싱가포르 교민일수록 현지화와 자신들의 장점을 통해서 나름의 사업 수완들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부동산에서는 싱가포르 자본의 힘이 무섭다. 베트남의 대표적인 부동산 기업인 캐피털랜드(Capitaland), 키펄랜드(Keppelland), 메이플트리(MapleTree) 같은 회사들이 모두 싱가포르투자청(GIC)소속 국부펀드가 투자한 싱가포르 계열이다.

캐피털랜드는 베트남 전역 7개 주요도시에 걸쳐 2개의 통합개발 포트폴리오, 8600개 이상의 주거시설, 6300개의 서비스 아파트 등 20년 이상을 동종업계에 투자해왔다.

메이플트리는 2005년 베트남 시장에 처음 진출해 현재는 관리자산이 약 10억 달러(약 1조1870억원)에 달하는 베트남 최대 부동산회사 중 하나로 성장했다.

이들은 비스타 베르데, 이스텔라, 빌라 리비에라, 리비에라 포인트 등 호찌민의 주요 고급아파트 프로젝트를 모두 성공시키며 이 분야에서 뛰어난 사업 면모를 보여주었다.

싱가포르 부동산 개발은 주거용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한국기업이 많은 빈즈엉성에도 싱가포르 공단개발사 VSIP가 주관한 싱가포르 공단 1.2.3이 있다. 이 같은 싱가포르 공단은 베트남 전역에만 이미 수십 곳이 분포해 있다.

한 교민은 “지속적이고 대대적인 투자로 이미 부동산 시장에서 싱가포르는 독보적인 수준”이라며 “사이공 시내에 있는 M플라자, 사이공센터 등 이름난 빌딩들이 모두 싱가포르계열 자본의 소유로 알고 있다. 심지어 호찌민 시내 빌딩이 절반은 싱가포르 계열이라는 얘기도 나온다”고 전했다. M플라자는 한때 금호아시아나 빌딩으로 불렸다.

물류(로지스틱스) 분야도 싱가포르 기업이 영향력을 발휘하는 분야 중 하나다. 주요 싱가포르 업체로는 FMI, KMS, APL 등이 있다. 물류는 싱가포르의 전통적인 강세 분야다. 중개무역을 통해 성장해온 싱가포르의 경제를 떠받친 게 우수한 물류 인력과 선진 시스템이다.

빈컴, 다이아몬드, 타카시마 등 주요 호찌민 쇼핑몰에도 싱가포르 식당은 하나씩 꼭 있다. 하이난 치킨, 바쿠테 같은 싱가포르 프랜차이즈 음식점들이다. 싱가포르 식당은 싱가포르인들뿐 아니라 싱가포르에 방문하거나 거주했던 베트남인들도 자주 방문한다.

호찌민 한인타운에 위치한 SC비보시티(VIVO city) 또한 싱가포르 회사가 투자했다. 한국 롯데마트 사이공지점은 푸미흥 변두리에 있는 반면, 비보시티는 푸미흥 초입 노른자위 땅을 일치감치 선점했다.

푸미흥의 한 교민은 “호찌민에서 만난 싱가포르인들은 작지만 힘 좋은 일본 경차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는 “무엇보다 싱가포르인들은 비슷한 기후와 제도환경에 익숙하다”며 “한국기업의 베트남 내수시장 진출이 확대되는 추세에 싱가포르인들에게 상당히 배울 점이 많다”고 강조했다.

◆자국 색채 뺀 글로벌기업 표방..."전 국민이 사업가, 공무원은 국가기업인"

베트남 기획투자부에 따르면 올해 2월 현재 싱가포르는 베트남에서 2190건의 프로젝트를 통해 총 484억 달러(약 57조4500억원)를 투자했다. 누적투자액 순위로는 3번째다. 주목할 건 싱가포르 직접투자 분야가 대기업의 인수합병, 국부펀드 중심에서 중소기업, 제조, 첨단산업 등으로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베트남 외무부에 따르면 싱가포르와 베트남 간의 무역교역액은 2018년에 209억 달러에 이르렀다. 지난 10년 간 2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내수 위주의 투자에서 건설, 제조 등 다양한 분야로 투자가 늘다보니 교역액이 자연스레 늘어나고 있다.

베트남 현지 매체인 VN익스프레스는 “싱가포르의 중소 제조기업들이 베트남에 큰 관심을 보인다”며 “베트남은 아세안 회원국 가운데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에 이어 4번째로 많은 싱가포르 기업의 투자를 유치하고 있다”고 전했다.

앞서 홍콩상하이은행(HSBC)은 최근 진행한 설문조사를 통해 싱가포르 중소 투자자들이 베트남에 적극적으로 나선다는 것을 확인했다. 싱가포르 1036개 기업을 대상으로 한 해외 투자 관련 설문조사에서 76%가 이미 베트남에서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고 답했다.

노먼 림(Norman Lim) 싱가포르비즈니스그룹(SBG) 호찌민 협회장은 “최근 싱가포르 투자자와 기업들이 동남아시아의 지역 통합을 확대하기 위해 계속해서 베트남의 다양한 분야에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VN익스프레스에 “싱가포르는 땅이 없고 베트남은 많다. 또 싱가포르는 인력이 없는데 베트남은 많다”며 “이 모든 장점들이 베트남과 싱가포르 양국을 더욱 협력하게 할 수밖에 없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한편에서는 싱가포르만의 특징적인 사업스타일을 읽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노재환 서우리얼티 베트남 대표는 그랩의 성공 사례에서 유독 동남아 내수시장에 강한 싱가포르계 화교들의 특성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당초 그랩은 막대한 자금력을 동원한 우버에 상대가 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지난해 5월 우버는 베트남 사업 공식 철수를 선언하고 그랩에 인수합병을 제안했다. 우버가 베트남에서 사업을 시작한 지 8년 만이었다.

그랩은 후발주자였지만 철저한 현지화로 우버를 앞섰다. 먼저 그랩바이크를 도입했고 현지 현금결제가 많은 점을 감안해 드라이버들에게 소액을 항상 준비할 것을 주문했다. 또 이후 이용해 배달서비스가 가능한 그랩푸드까지 도입했다.

그랩은 말레이시아에서 설립된 후 싱가포르로 본사를 이전했다. 주요 인사가 모두 싱가포르인들이라는 점에서 사실상 싱가포르 회사라고 봐도 무방하다.

노 대표는 싱가포르의 최대 강점으로 국가의 기업화를 꼽았다. 총리는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공무원은 국가라는 기업의 구성원, 전 국민이 사업가라는 싱가포르의 독특한 경제관념이 싱가포르를 더 돋보이게 한다는 것이다.

그는 “싱가포르인들과 사업을 하면 간결한 의사결정구조, 강력한 추진력에서 우리와는 다른 점이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인들은 베트남에서 사업을 하면 대부분 드러내놓고 한국 기업임을 포장하지만 싱가포르는 철저히 현지 스타일에 순응하고 글로벌기업을 표방한다”며 “지나치게 한류에만 편승한 내수형 한국 기업들이 눈여겨봐야 할 교훈"이라고 지적했다.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총리(오른쪽)와 리센룽 싱가포르 총리. 지난 2017년 3월에 열린 베트남-싱가포르 회담에서 양국 총리가 악수를 나누고 있다.[사진=베트남통신(TTX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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