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낱말인문학]'배움'이란 말의 뜻은 '생각을 임신시키다'?

이상국 논설실장입력 : 2019-06-17 14:42

[김홍도의 '서당']



공자의 언행을 기록한 논어의 첫 구절이 '학(學)'으로 시작한다는 점에 주목해본 적이 있는가. 안 그래도 똑똑한 양반이 너무 욕심이 많으신 건가. 뭘 더 배우실 게 있다고 논어 첫 마디가 '학(學)'을 떼는 소리란 말인가. 거기다가, 배운 뒤에 자주 익히는 것까지 세트로 구성해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 줄여서 '학습')'라 했다.

우리는 학습행위를 권력 형성의 과정으로 세속화시킨 혐의가 있다. 지식은 권력을 얻는 무기가 된 측면이 있다. 배움이란, 학력(學歷과 學力)이란 기이한 이름을 지닌 자산과도 같이 취급되기도 한다. 학습의 괴물적 양상을 유감없이 보여준 것이 드라마 '스카이 캐슬'이다.

공자가 말한 학습은 스킬이나 노하우를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삶의 가치를 고양하는 인식기반의 확장이며 자아와 세상을 의미있게 들여다보게 하는 인식행위의 심화다. 공자는 친구가 방문해서 함께하는 일을 '즐거움(樂)'이라고 표현한 반면, 학습은 기쁨(說=悅)이라 표현했다. 공부하는 일 자체가 즐거운 것이 아니라, 공부로 깨닫고 다지는 단계단계가 기쁜 것이다.

학(學)은 아이들(子)이 집 안에서(家) 산가지(爻)를 가지고 숫자놀이를 하며 노는 모습을 가리킨다고 한다. 산(算)가지는 수를 셈하는 데 사용하는 막대로 옛 사람들의 주판이다. 배움이란 걸 옛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했는지 느끼게 해준다. 습(習)은 어린 새(羽)가 날개를 퍼득이며 날마다 스스로(日, 自) 날아오르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익힌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깨닫게 한다. ​화담 서경덕이 어린 시절 학문의 의미를 깨우쳤다는 조삭비(鳥數飛, 어린 새가 자주 날아오르며 날기를 배우다)가 떠오른다.

공자는 이 행위를 통해 자기 고양의 비밀을 느꼈으며, 역시 이 행위를 통해 세상이 더 평화롭고 가치있는 상태로 나아갈 수 있음을 확신했을 것이다. 이것이 논어 첫 글자 학(學)이 지닌 가르침의 진수가 아닐까.

'배우다'라는 말은 '배다'에 사동(하게 하다)의 의미를 지닌 '우'가 들어간 것이다. '배다'라는 말은 우선 '임신하다'라는 의미가 있다. '배다'라는 말은 '뱃속에 아이가 생겨나서 자라다'란 뜻으로 배(腹)와 상관이 있다. 이 말은 사람에게만 쓰이는 게 아니라 포유류 동물의 새끼, 조류나 어류의 알, 줄기 속에 든 이삭도 가리킬 수 있다. 이런 의미로 쓰인 '배우다'는 '배게 하다'로, 임신하게 하거나 생산하게 하거나 속에서 자라게 하는 것을 뜻한다.

지식이 단순이동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의 원천 소스를 '배우는 사람'이 품어서 그것을 스스로 부양하는 것이 '배움'이다. 아기를 낳는 것은 결국 산모이듯, 뭔가를 배우는 일 또한 스스로 그 지식의 어미가 되어 내부에서 피와 살을 붙이고 생명을 돋우는 일이다. '배우고 익히다'를 같이 쓰게 되면, 더욱 심오하다. 몸 속에 '생각의 아기'를 잉태하는 것이 배우는 행위인 학(學)이고, 그것을 뱃속의 아기처럼 숙성(熟成)시키는 일이 바로 습(習)이다.

또 하나. '배다'는 '스며들다'의 뜻이 있다. '배우다'는 '스며들게 하다'라는 의미도 된다. 스며드는 것은 조금씩 파고들어 큰 부분을 적시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지속적인 이동이 있으며 점차 확장되는 움직임이 있다. 또한 '버릇이 되어 익숙해지다'라는 뜻도 있다. 습관이 된다는 것은 배움이 인간의 행동과 삶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말하는 요체이기도 하다. 냄새가 배는 경우는, 배움이 지닌 접촉과 영향의 과정을 생생하게 설명해준다.

배움이란 말이 '임신하게 함'과 '스며들게 함'이란 본래의 뜻으로 소급되는 순간, 공자가 말했던 학이시습지의 기쁨을 쉽게 이미지화할 수 있게 된다. 생각을 잉태하고 그것을 안에서 키워내주는 생명행위가 바로 배움이라는 이 배움이야말로 최고의 '배움'이다.

                이상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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