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칼럼]묵자(墨子)의 포용성장론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현상철 기자
입력 2019-04-02 18:00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 권기홍 동반성장위원장

권기홍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사진 = 동반성장위원회]

겸상애교상리(兼相愛交相利)! 전국시대 사상가인 묵자(墨子·BC 470~391)의 가르침이다. “차별 없이 서로 사랑하고 이익을 서로 나누라”는 뜻이다. 겸애(兼愛)는 보편적 사랑이다. 나와 직접 관계있는 사람만 사랑할 것이 아니라 모든 사회 구성원을 차별 없이 사랑하라는 말이다. 개인적 사랑이 아니라 사회적 사랑이다. 보편적이고 사회적인 묵자의 겸애는 그 개념상 이미 단순한 정신적·윤리적 사랑에 머물 수 없다. 그에게 있어서 사랑은 곧 이익을 나누는(交利) 실천적 행위다. 이익을 나누지 않는 사랑이란 허구일 수밖에 없다. 이익을 나누지 않고는 끊임없는 전쟁으로 피폐해진 당시의 사회도, 도탄에 빠진 민생도 다시 일으켜 세울 방법이 없었다. 당대 최고의 기술자이기도 했던 묵자다운 실천적 포용성장론이다. 묵자의 겸애를 영어로는 'impartial love' 또는 'inclusive love'로 번역한다. 포용성장이 'inclusive growth'의 번역어라는 사실이 우연은 아니다.

2500년 전 고대에 이미 이런 논쟁이 있었다니,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 데자뷔다. 자본주의 초기부터 있어온 자유와 평등을 둘러싼 논쟁이 떠오른다. 절차적·소극적 자유냐, 실천적·적극적 자유냐를 둘러싼 논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자유주의자들은 주장한다. 속박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자유다. 거기까지가 국가의 역할이다, 해방된 자유인이 실천적으로 자유다운 자유를 누릴 수 있느냐의 여부는 개인의 문제일 뿐이다. 여기에 국가가 개입하면 자유는 왜곡된다. 반면에 평등주의자들은 반론한다. 아니, 굶어 죽을 자유도 자유란 말인가? 실천적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단순한 절차적 자유는 허구에 불과하다. 모든 사람이 실천적으로 자유다운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국가가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할 것 아닌가. 원론적으로는 둘 다 옳은 말이다. 다만 구체적 현실이 어느 쪽 주장에 무게를 실어줄 만한 상황인지가 남을 뿐이다. 문제는 현실에 대한 상황판단이다.

묵자와 그 제자들은 당시의 현실을 적극적으로 이익을 나누어야 할 상황으로 판단했던가 보다. 그랬기에 맹자(孟子)의 “애비 없는 자식(無父者)”이라는 공격에도 “모든 노인을 차별 없이 내 아버지처럼 공경하라”는 가르침을 꿋꿋하게 견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오늘날은 어떠한가? 양극화가 감내할 수 없는 지경으로 심화되었다는 사실에는 누구나 동의한다. 문제는 이 현실이 시장의 자생력에 의해 자연적으로 치유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인식 차이다. 포용성장을 대놓고 반대하는 목소리는 그리 크지 않다. 그러나 포용성장을 위한 국가 개입을 놓고는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이유다. 포용성장도 궁극적으로는 시장에 의해 달성되어야 하기에 국가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원론적으로는 옳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궁극적이다. 당장은 아무래도 좋다는 말인가. 또한, 지금의 양극화가 일시적 현상인가, 아니면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현상인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나 많은 전문가들에 따르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양극화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기술 변화에 따른 구조적 요인 때문에 앞으로도 양극화는 더욱 심화될 것이다. 이대로 가면 지속가능한 성장이 불가능해진다. 포용성장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버렸다. 그렇다면 나누어야 한다. (재)분배정책은 국가의 몫일 수밖에 없다.

포용성장정책이 (재)분배정책에 국한되어서는 부족하다. 포용성장은 사람을 위한(for) 성장이자 동시에 사람에 의한(by) 성장으로 진화해야 한다. 새로운 교육·훈련 시스템을 정착시켜 빠짐없이 모든 사람들의 잠재력을 극대화하고(포용교육), 이들 모두를 적소에 배치함으로써(포용노동) 최고의 효율을 이끌어내야 한다(포용경제). 이 과정에서 탈락하는 사람들에 대한 빈틈없는 사회안전망을 구축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포용복지). 이러한 포용성장 시스템에 기업 차원의 혁신 메커니즘까지 장착된다면, 그것이 바로 혁신적 포용국가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 묵자가 오늘에 살았다면 바로 이런 나라를 디자인하지 않았을까!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