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지는 한일갈등②] 日 '경제보복' 카드 만지작…현실화 가능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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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주 기자
입력 2019-03-18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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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우리 대법원의 일본 기업에 대한 강제노역 배상 판결 이후, 한·일 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일본이 이례적으로 경제보복 카드까지 꺼내들면서 양국 사이에 빨간불이 켜졌다. 

경제보복 문제는 '망언제조기'로 불리는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상의 발언으로 촉발됐다. 보복 조치로는 관세 인상 외에 일본 제품 공급 중단, 한국인 비자 발급 제한, 반도체 제조에 필수적 물질인 불화수소 수출 중단 등이 거론된다. 

특히 일본 정부가 고려 중인 보복 조치가 100개 전후에 달한다는 언론 보도까지 나오면서, 이 조치가 현실화할 경우 관광업·반도체 등 우리 산업계가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3·1절인 1일 부산 동구 초량동 정발 장군 동상 앞에 임시로 설치된 강제징용 노동자상. 2019.3.1 [연합뉴스]

가장 큰 타격이 예상되는 분야는 반도체다. 한국 반도체 제조사들은 반도체 제조에 필수적인 순도 99.99%의 고순도 불화수소(불산 플루오르화수소)를 일본 기업에 의존하고 있다. 

고순도 불화수소는 일본 기업이 세계 수요 90% 이상을 생산하며 사실상 독점한 상황이다. 일본으로서는 한국을 압박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강력한 무기로 꼽힌다. 불화수소의 수출을 금지한다면 우리 제조사들은 생산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아울러 반도체 장비의 3분의 1이 일본산이라는 점도 일본의 경제보복에 대한 우려를 키운다. 세계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는 삼성·SK·LG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주요 장비와 부품 상당수가 일본산이다.

다만 불화수소 수출을 중단할 경우, 일본 스스로도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작 한국산 반도체 상당수가 일본으로 수출되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도 타격을 면하긴 힘들다는 의미다.

또 한국인을 대상으로 취업 비자 발급을 제한하거나 관광객 무비자 정책을 폐지할 경우, 양국의 관광 산업은 상호 타격을 입게 된다. 심지어 일본의 피해가 더 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일본을 방문한 한국인은 753만명에 달한다. 한국에 온 일본인 292만명보다 2.5배가량 많은 수치다.

일본무역진흥기구(JETRO)가 지난해 12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진출한 일본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84.9%에 이르는 기업이 '영업 흑자를 기대하는 나라'로 한국을 꼽았다. 이는 중국(72%)·태국(67%)을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일본에게 한국은 한해 241억 달러에 달하는 무역수지 흑자를 올리는 '돈 벌기 좋은 시장'인 셈이다. 

이처럼 일본이 한국을 향해 경제보복 칼날을 빼들 경우, 스스로도 뼈아픈 타격을 받게 되기 때문에 재작년 중국과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처럼 전면전으로 확산할 가능성은 적다는 평가가 나온다. 
 

가나스기 겐지(金杉憲治)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이 김용길 외교부 동북아국장과 강제 징용 배상문제 등 한일 현안을 논의하기 위해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로 들어서고 있다. 2019.3.14 [연합뉴스]

그러나 외교가에서는 일본의 이 같은 조치를 단선적으로 보면 안 된다는 분석이 나온다. 과거사 문제가 경제 문제로 확전될 경우, 양국이 외교적으로 돌이키기 힘든 상황에 이를 수 있다는 우려다. 

한 외교 전문가는 "이 같은 조치들이 일본 국내에는 정치적으로 보여주기는 좋겠지만, 그렇게 될 경우 한·일 과거사 문제가 경제문제로 확전되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며 "과거 중국과 일본 간의 센카쿠 열도 영토 분쟁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지난 2010년 센카쿠 열도 영토 분쟁이 일어나자 중국이 희토류 원소를 인질 삼아 이슈가 국제적으로 판이 키워진 바 있다. 과거사가 경제 분야로 비화될 경우, 양국관계는 물론 동북아 정세에도 파장이 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한반도 비핵화를 비롯해 미·중 무역전쟁을 두고 동아시아 정세가 출렁이는 상황에서 미국의 동맹국인 한·일이 치고 받는 관계가 되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를 수 있다"며 "양국이 경제적 이익을 넘어서 국제 상황 전반에 미치는 파동을 생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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