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칼럼] 나라 위해 출산하는 사람 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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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세희 국립중앙의료원 공공보건의료연구소 실장
입력 2019-03-05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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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산율 0.98 시대, 그리고 청춘 남녀의 젠더 갈등

황세희 국립중앙의료원 공공보건의료연구소 실장(전문의 ·의학박사)

당신은 국가를 위해 출산하는 사람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조국을 위해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바치는 애국자는 늘 존재한다. 생존 본능이라는 생명체로서의 한계를 뛰어넘어 국가라는 거대한 공동체를 위해 극한의 이타심을 발휘하는 영웅담의 주인공들이다.

반면 국가를 위해 아이를 낳는다는 말은 생소하다(만일 절대 왕정의 세습군주제, 혹은 그와 유사한 제도를 운영하는 국가라면 왕손 출산이 국가 이익과 부합한다는 주장도 하겠지만 민주공화국 국민으로서는 인정하기 쉽지 않다).

출산의 목적은 남녀 간 사랑의 결실, 가족 내 유대 강화 등 여러 가지 설명이 가능하나 본질적으로는 생주이멸(生住異滅)의 숙명을 타고난 인간이 영생(永生)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선택하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다. 자녀를 통한 유전자 전달은 사회적으로는 종족 유지 본능을 실천하는 일이기도 하다.

물론 자녀가 없어도 잠시 머물다 가는 지구촌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방법은 다양하다. 예컨대 평생을 독신으로 지낸 베토벤이나 슈베르트는 음악으로, 고흐는 미술 작품을 통해, 칸트 역시 자신이 정립한 사상을 매개체로 시대를 초월해 지금도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며 현존(現存)한다. 하지만 보통 사람이 불세출의 천재들이 가는 길을 뒤따르기는 힘들다.

자연, 자신의 유전자를 최대한 많이 남길 수 있는 다산(多産)은 예로부터 하늘이 내린 축복으로 여겨졌고, 농경 사회에서는 노동력을 확보하는 길이기도 했다. 즉, 2세 출산은 이기적 유전자를 타고난 인간의 이익과 일치하는 행위였다.

하지만 문명화가 급속히 확산되면서 양질의 자녀 양육이 보편화됐고 이를 위해 부모는 시간과 에너지, 재산 등을 투자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특히 의학의 발달로 피임을 통한 산아 제한이 가능해지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이 되는 적절한 자녀 수를 찾기 시작했고, 결과는 출산율 감소로 나타났다. 여성의 교육 수준이 높은 선진국에서 출산율이 낮은 것은 지역을 막론하고 보편화된 현상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어떤가. 1인당 국민소득은 1963년 100달러에서 55년 만인 2018년 3만 달러로 300배 급증했고, 대학 진학률은 세계 최고다. 특히 여성의 대학진학률은 두드러져 이미 10년 전인 2009년, 남성을 앞지른 바 있다.

따라서 2018년 통계에서 나타난 합계출산율 0.98은 최고의 교육 수준을 자랑하는 선진 대한민국 청년들이 각자의 삶의 질을 고려해 도출해낸 수치로 봐야 한다.

정부는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13년간 저출산 극복을 위해 143조원을 투입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정책이 청년들의 집단 지성과 얼마나 괴리가 심한지를 보여줄 뿐이다.

게다가 지금은 사회적으로 청춘 남녀 간에 젠더 갈등까지 심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출산율은 더더욱 감소할 것이다. 제대로 된 정책 입안자라면 저출산 예산을 짜기에 앞서 열린 마음으로 젠더 갈등의 진정한 원인을 파악하고 시급히 해소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그런데도 정부는 20대 남성 지지율 하락요인이나 분석하고 있는 딱한 모습만 보여주고 있다. 20대 청년들의 지지율 이탈 현상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사는 고학력 20대 청년들이 하루하루의 삶에서 절감하는 상대적 박탈감의 본질부터 공감해야 한다.

행복은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공동체 안에서 느끼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우리 때는 이런저런 고생도 했는데···”라는 식으로 지금의 청년세대를 비난하는 일은 무지의 소산일 뿐이다. 기득권층이 경험했던 그때 그 시절은 나만 고생하고 배고팠던 게 아니다. 우리 모두가 가난에 절어 살던 시절이다. 그래서 가난해도 견딜 만했던 것이다. 

반면 세계 1위의 IT 강국에서 자신을 흙수저로 생각하는 이 시대 20대 청년들의 좌절과 고뇌는 깊다. 당연히 내적 갈등과 분노가 커지면서 젠더 갈등으로 비화하기도 쉽다.

정부가 진정으로 저출산 대책을 세우고 싶은 의지가 있다면 오늘부터라도 폭 넓은 연구를 통해 서로 사랑해야 할 청춘 남녀 사이에서 나타나는 젠더 갈등의 본질부터 제대로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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