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원 칼럼] ​“에어포켓에 빠진 한국경제를 살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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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원 가천대 교수
입력 2019-02-12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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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원 교수]


대한민국이 위기의 에어포켓에 빠져들고 있다. 여의도발 정치 혼돈과 세종시발 정책 난맥의 와류에 대한민국호가 온통 휘말리고 있는 것이다. 광화문의 중앙 컨트롤타워는 속수무책이다. 자칫 추락의 길로 가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시중에 팽배하다.

세계 도처에 지정학적, 지경학적 리스크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어 이같은 우려는 증폭되고 있다. 대한민국호는 스스로 자초한 에어포켓에 빠져 무엇을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위기는 기회다. 지금이야말로 에어포켓에서 재빨리 탈출해 순항 모드로 올라서야 할 시점이다. 에어포켓 탈출의 방법은 무엇인가.

첫 번째로 할 일은 긴박감을 갖고 세계 경제의 풍향을 치밀하게 파악하는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1월 21일 올해를 ‘성장의 역동성을 잃은 세계 경제’로 규정하며 경제 감속(減速) 전망을 내놓았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이를 뒷받침하듯 최신호 표지에 지구를 등에 업고 기어가는 달팽이 그림을 실으며 ‘슬로벌라이제이션(Slowbalisation)’이란 신조어를 소개했다. 이는 전 세계의 투자, 무역, 은행대출, 서플라이체인의 축소 혹은 정체를 뜻한다. 슬로벌라이제이션은 2개의 불이익을 가져온다고 한다. 첫째, 지난 1990년~2010년까지 개도국들이 성장했지만 이제부턴 무역으로 성장하기 어려워진다. 또한 지역통합의 심화는 글로벌 시스템과의 마찰을 쉽게 일으킨다. 둘째, 글로벌화에 따른 문제들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선진국 생산직 노동자들에게 돈을 벌 재생의 기회를 주지 못할 것이며, 중국을 봉쇄하면 오히려 중국의 주변 지역 지배를 촉진시킬 것이다. 결국 슬로벌라이제이션은 글로벌화보다도 더 나쁜 부작용들을 초래해 불안정과 불만을 키울 것이란 분석이다.

뿐만아니라 미국과 중국 간의 기술패권 다툼을 큰 시각에서 심각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무역전쟁은 이제 기술세계대전으로 가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향해 시장개방과 무역흑자 감축을 겨냥한 관세인상 카드를 흔들어 대고 있지만 그 본질은 인공지능(AI), 빅 데이터, 양자 컴퓨팅 등의 기술패권을 둘러싼 싸움이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사례가 화웨이 사건이다. 중국 최대의 통신장비제조회사인 화웨이에 대한 미국의 견제는 노골적으로 글로벌하게 전개되고 있다. 

미국은 화웨이에 대해 불법무역을 이유로 제재를 가하고 있으나 실은 화웨이가 주는 안보상의 위협에 대한 대항조치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앞으로 5G 이동통신 시스템이 도입되면 이 분야에서 경쟁력있는 화웨이가 세계를 제패하는 게 아닌가하며 몹시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사이버보안법’으로 불리는 ‘파이브 아이즈(5Eyes)’로 정보기관끼리 협정을 맺은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5개국이 화웨이 배척 스크럼을 짜고 있다. 5G시대의 통신, 정보, 암호, 도청 등의 우위를 누가 차지할 것인가를 놓고 서방동맹국들과 중국 간의 다툼이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는 형국이다.

스탠퍼드대학 후버연구소의 니얼 퍼거슨 수석연구원은 “미국과 중국이 설령 달콤한 거래를 한다 해도 그들 관계는 계속 시큰둥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과 중국이 촉발한 기술세계대전을 과거 미소 냉전에 빗대어 ‘Cold War 2.0’ 또는 ‘Cool War’로 불리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매년 초 ‘세계 10대 리스크’를 발표하는 미국의 컨설팅기관인 유라시아그룹은 지난해 ‘미중 간의 기술냉전’을 3위로 꼽은데 이어 올해는 ‘이노베이션의 겨울’을 6번째로 올렸다. 유라시아그룹은 2018년이 기술패권 싸움이 극히 정치적 양상으로 나타난 해라면 올해는 투자가와 시장이 그 대가를 지불하는 해로 내다봤다. 세계적으로 이노베이션이 위축되는 겨울의 시대가 온다는 것이다. 정치적 압력으로 차세대 기술을 추진하기 위한 재정과 인적자본 투자를 줄여야 하는 시대로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노베이션 위축은 세계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기술패권 싸움의 영향으로 3개의 정치적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첫째, 각국 정부가 국가안보상 중요한 영역에 대해 외국 서플라이어와의 관계를 멀리하려는 경향이다. 둘째, 개인정보보호를 이유로 정부가 국민의 데이터 이용을 한층 규제하려는 추세다. 셋째, 경제상의 우려로 각국이 장벽을 설치해 국내의 유망한 신흥기업을 외국의 유력기업들로부터 지켜주려는 경향이다.

미국과 중국이 정책협조로 시너지 효과를 낸다면 첨단기술 개발에 박차가 가해지겠지만, 반대로 양국 간의 마찰이 지속된다면 첨단기술 개발을 위축시키는 ‘이노베이션의 겨울’을 가속화할 것이다. 불행하게도 두 나라는 이미 서로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노베이션 인재의 교류를 방해하는 조치들이 나오고 있는 것은 그 증거다. 유럽연합(EU)과 일본이 미국을 뒤따른다면 문제는 더 커진다.

문재인 정부는 세계적인 경제 감속, 기술패권주의 그리고 ‘이노베이션의 겨울’이라는 우리 경제 환경과 위기의 본질을 인식하고, 이를 타개할 수 있는 근본적인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 국가 경쟁력 강화를 겨냥한 산업정책과 과학기술정책을 담은 기민한 전략을 마련해 에어포켓에 빠진 한국을 구조해야한다. 그 전략에는 정부 연구개발비 20조원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구상을 담아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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