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영상톡]"조영남의 대작서 소변기 '샘'의 향기가?" 마르셀 뒤샹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홍준성 기자입력 : 2019-01-01 17:27
-12월 22일~2019년 4월7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박위진 국립현대미술관장 직무대리 "20세기 개념미술의 선구자"

가수 겸 화가 조영남의 대작 사기 혐의가 지난해 8월 2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사건은 결국 해를 넘겨 대법원에서 판결 나겠지만, 1심 유죄 이어 2심 무죄 선고는 한국 미술계에 큰 논란을 일으켰다. 논란의 핵심은 작가가 직접 만들지 않아도 아이디어를 내고 서명만 하면 그 자체가 예술 작품이 될 수 있느냐이다.
조영남의 무죄 논리는 마르셀 뒤샹이 선보인 '레디메이드'(Ready-made 기성품) 작품과 언뜻 무관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국립현대미술관 마르셀 뒤샹 전에 전시된 소변기로 만든 '샘' 작품]


1917년 당시 30세의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1887~1968)은 철물점에서 소변기를 산 뒤 한쪽 구석에 'R,MUTT'(리처드 뮤트)라는 가명으로 서명을 한 다음에 현대미술전에 출품했다. 이 작품으로 심사위원들 사이에서 격렬한 논쟁이 일어났고, 그들은 투표로 전시를 할 것인가 하지 않을 것인가 결정했다. 아주 근소한 격차로 이 조각 작품은 예술이 아니라는 결론이 났다.

이 사건의 핵심은 뒤샹이 예술가의 감정이나 손재주 같은 것들을 철저히 배제하고 아이디어 자체를 내세워서 예술의 지적인 가치를 앞세우려고 한 것이다.
아이디어가 작품을 만드는 근원이고 그 자체가 된 것은 뒤샹의 소변기 사건으로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현대미술 작품이 이 소변기를 직·간접적으로 중요한 지표로 삼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세계에서 뒤샹의 작품을 가장 많이 보유한 미국 필라델피아미술관과 공동으로 마르셀 뒤샹의 삶과 예술을 집중 조명하는 전시를 내년 4월 7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1, 2 전시실에서 연다.

뒤샹이 세상을 떠난 지 50주년이 되는 해에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는 회화, 레디메이드, 혼합매체 조각, 드로잉, 판화, 사진 등 150여점과 아카이브 자료를 통해 뒤샹의 다각적 면모를 다룬다. 특히 뒤샹의 대표작 중 '큰 유리'와 '에땅 도네'는 이번 전시에서 작품의 기호학적 분석을 가미한 비디오 작품으로 전시됐다.

[박위진 국럽현대미술관장 직무대리가 마르셀 뒤샹 전시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박위진 국럽현대미술관장 직무대리는 지난달 20일 기자간담회에서 "뒤샹은 현대미술의 토대를 만든 20세기 개념미술의 선구자이며 미술의 창조와 해석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근본적으로 바꿔놨다" 며 "미술의 혁명가로서 기존의 공식을 깼던 예술가의 작품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소감을 전했다.

[티머시 럽 필라델피아박물관장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마르셀 뒤샹 전시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티머시 럽 필라델피아박물관장 또한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뒤샹의 삶과 예술을 다룬다는 주제적인 측면에서뿐만 아이라 이 내용이 오늘날의 미술을 공부하는 학자들, 또는 예술가들에게 중요하기 때문에 전시를 기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필라델피아미술관에서는 1950년에 월터 아렌스버스와 루이즈 부부가 기증하게 되면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뒤샹의 소장품을 소유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필라델피아미술관은 현대미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한테는 하나의 성지처럼 여겨져 왔다.

20세기 초반에 이뤄진 현대미술의 전개에 있어서 뒤샹은 매우 큰 영향을 줬고, 그 이후에 이뤄진 미술의 발전에도 뒤샹의 영향이 있었다.

티머시 럽 관장은 "뒤샹을 이해하지 않고는 현대미술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의 유산이 유용한 것이었는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토론의 여지가 있겠으나, 결코 우리가 무시할 수 없는 것은 그의 유산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매튜 애프론 필라델피아미술관 학예사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마르셀 뒤샹 전시 기자간담회에서 전시 설명을 하고 있다.]


전시는 크게 4부로 구성됐다.
각 부은 연대기적으로 구성됐고, 청소년기부터 화가로 이름을 날리게 되는 20대 중반까지의 시기가 1부이다.
2부는 미술을 정신적인 영역에서 작동하게 한 시기로, '레디메이드' 작품이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
3부는 뒤샹이 여장을 하고 '에로즈 셀라비'라는 페르소나(외적인격 persona)로 활동하는 시기를 말하고, 뒤샹 삶의 마지막 20년간의 시기를 마지막 4부에서 다룬다.

▶1부 화가의 삶

뒤샹은 프랑스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면서 당시 유행하던 인상주의, 상징주의, 야수파 등의 학풍을 공부했다. 비록 짧은 시기였지만 뒤샹은 본인만의 독창적인 방법으로 작업을 하고, 결과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No.2'로 당시 26세의 젊은 나이에 화가로 성공하게 된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마르셀 뒤샹 회고전에 출품된 '블랑빌 교회']


전시장 입구에서 뒤샹의 첫 유화 작품으로 알려진 '블랑빌 교회'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15세의 뒤샹이 프랑스 노르망디에 있는 집에서 보이는 블랑빌 교회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인상주의 영향을 받았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마르셀 뒤샹 회고전에 출품된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No.2']


뒤샹의 회화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은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No.2'다. 이 작품은 1913년 국제현대미술전인 뉴욕 아모리쇼에 출품해서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면서 뒤샹에게 유명세 안겨줬다.
누드를 다루는 방식이 침대에 누워있는 수동적인 것이 아닌 움직이는 주체적인 모습이어서 당시 사람들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온 것으로 보인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마르셀 뒤샹 회고전에 출품된 '신부']


입체파 양식에서 조금씩 벗어난 흔적이 보이는 '신부' 작품도 흥미롭다.
이 작품은 뒤샹이 파리 중심의 입체파 활동에서 벗어나 독일 뮌헨에서 작업한 것으로 묘하게 인간의 장기와 비슷한 살구색 조형이 비현실적이고 부자연스럽게 표현됐다.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No.2'와 비교해봤을 때 조금 더 시점이 분명하고 빛과 그림자가 일관되게 그려진 것을 볼 수 있다.

▶2부 예술적이지 않은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2부는 '큰 유리'의 기초작업을 시작했던 1912년부터 레디메이드라는 개념으로 작가의 손길에 우선적인 가치를 두고 진품과 복제품을 구분하던 미술의 기존 상식에 도전했던 시기이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마르셀 뒤샹 회고전에 출품된 '초콜릿 분쇄기']


'초콜릿 분쇄기'(1914) 작품에서는 기존의 틀을 깨고 회화를 붓질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만들기 시작한다.
이 작품은 기계의 차가움에서 영감을 받아 기하학적이고 딱딱한 스타일로 초콜릿 분쇄기라는 기계를 표현한 것인데, 이 분쇄기의 롤러의 기계적인 움직임을 표현하기 위해서 물감을 칠한 것이 아니라 캔버스를 재봉실로 꿰매게 된다. 전시장에서 직접 보면 실이 울퉁불퉁 나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마르셀 뒤샹 회고전에 출품된 '그녀의 독신자들에 의해 발가벗겨진 신부, 조차도'(큰 유리) 영상 작품]


'초콜릿 분쇄기'가 모티브가 된 '그녀의 독신자들에 의해 발가벗겨진 신부, 조차도'(큰 유리) 작품은 아예 캔버스가 아니고 유리에 제작했다.
또한 유리에 유화물감뿐만 아니라 니스, 납, 코일, 철사, 먼지 같이 비전통적인 재료들을 사용해서 독신남들의 구애와 삐뚤어진 신부의 욕망을 작동시키는 하나의 기계적인 메커니즘을 표현하는 데 사용했다.

전시장에서는 필라델피아미술관에 설치된 '큰 유리' 사진과 4분 46초짜리 영상 작품으로 만나 볼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마르셀 뒤샹 회고전에 출품된 '샘(Fountain)']


'초콜릿 분쇄기' 가 붓질이 아닌 방식으로 회화를 표현했다면 '샘(Fountain)'은 조각에서 오늘날의 '오브제'를 만들어낸 작품이다.

뒤샹은 소변기를 구입한 뒤 서명을 통해 자신의 작품으로 삼았다. 즉 작가가 직접 손으로 만드는 예술가의 전통을 부정하고 백화점이나 철물점에서 판매하는 물건을 선택한 것이다.

이미 만들어진 기성품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예술 작품으로 변모시켰다. 이 같은 시도는 오늘날까지도 많은 변주를 낳으면서 현대미술의 토대가 됐다.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는 샘은 1917년 처음 만들어진 것이 아닌 1950년에 재제작한 작품이다. 실물 크기로 만들어진 재제작품 중에 가장 초기에 해당한다. 그 당시 뉴욕 전시를 위해서 파리에 있는 한 벼룩시장에서 사서 뒤샹이 직접 서명한 것이다.

▶3부 '에로즈 셀라비'

3부는 1, 2차 세계대전 사이에 뒤샹이 파리로 돌아갔다가 1942년 전쟁을 피해서 다시 뉴욕에 이민을 오게 되는 이동의 순간을 다룬다.

뉴욕으로 돌아온 뒤샹은 여자로 분장하고 '에로즈 셀라비'라는 페르소나를 만든다. 페르소나는 작품 속에 나타나는 작가의 '외적인격'을 말한다.
'에로즈 셀라비'(Rrose Selavy)는 '에로스(Eros)가 곧 삶'이라고 번역되는 불어 문장으로 성적(性的) 함의가 가득한 뒤샹의 또 다른 정체성이 됐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마르셀 뒤샹 회고전에 출품된 '에로즈 셀라비로 분장한 마르셀 뒤샹']


전시장에는 뒤샹의 친구였던 사진작가 만 레이가 촬영한 사진 '에로즈 셀라비로 분장한 마르셀 뒤샹'이 걸려 있다. 뒤샹은 당시에는 파격적으로 보일 만큼 남성과 여성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넘나들었다.

'에로즈 셀라비'라는 이름은 이후 뒤샹의 많은 작품에 단독으로 혹은 마르셀 뒤샹이라는 이름과 함께 작품에 서명된다.

이지회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사는 "뒤샹은 작품을 통해서 상반된 것들을 조화롭게 만드는, 혹은 상반된 것들의 위계나 구분을 전복시켰다" 며 "바로 그런 구분이 '에로즈 셀라비'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뒤샹은 또 토너먼트 체스선수로서의 정체성도 가지고 있었다.

뒤샹은 수학에 능통했고 체스를 굉장히 잘했다. 그는 1928년부터 1933년까지 세계체스연맹의 국제올림피아드대회에서 프랑스 대표팀 선수로도 활동했으며, 우승도 여러 번 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마르셀 뒤샹 회고전에 출품된 '제3회 프랑스 체스 선수권 대회 포스터']


그는 체스 움직임의 기하학적 공간을 표현하기도 하고 챔피언십 포스터를 디자인하기도 했다. 전시장에는 '제3회 프랑스 체스 선수권 대회 포스터'가 걸려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마르셀 뒤샹 회고전에 출품된 '1932년 상자']


'1932년 상자' 이름을 붙인 상자에는 체스전문가와 함께 발행한 책 '오포지션과 시스터 스퀘어의 화해', 이와 관련된 그림, 노트, 드로잉 등이 담겼다.

▶4부 뒤샹의 생애 마지막 20년과 '에탕 도네'

마지막 4부에서는 뒤샹의 생애에서 가장 찬란했던 생애 마지막 20년의 기간을 다루고 있다.
야스퍼 존스나 리처드 해밀턴 같은 팝아트 작가들에게 전설 같은 존재가 된 뒤샹은 세계 여러 미술관을 돌며 회고전을 열었다.

이 시기에 뒤샹은 전시의 편의를 위해서 전시용 복제품, 즉 레플리카(replica)를 만들기 시작한다.

'레디메이드'를 작품에 도입했던 뒤샹은 복제품이 만들어질수록 작품의 가치가 떨어지고, 평가절하된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것이 자신의 개념을 더욱 향상 시키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뒤샹은 자신의 서명에 힘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또 복제되는 과정에서 작품의 가치를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은 인식했다.

뉴욕현대미술관에 소장된 '샘'도 레플리카이며, 그의 대표작 '큰 유리' 또한 3개의 복제품이 존재한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마르셀 뒤샹 회고전에 출품된 '에땅 도네' 영상 작품. 관람객들이 문에 난 구멍을 통해서 여인의 나체 작품을 보고 있다.]


만년에 이르러 뒤샹은 인터뷰를 통해 "내가 하는 일은 숨 쉬는 일이다"라고 말하며 은퇴했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스튜디오에서 남몰래 '에땅 도네'라는 대작을 만들고 있었다.

전시장의 마지막 코너에 이 작품과 관련된 습작들 그리고 작품에서 다루는 주제와 관련된 조각, 판화 작품들이 전시됐다.

'에땅 도네'는 현재 필라델피아미술관의 한 방에 설치가 돼 있는데,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장에는 그와 같은 크기의 방을 만들어서 비디오 작품으로 '에땅 도네'를 재현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마르셀 뒤샹 회고전에 출품된 '에땅 도네' 영상 작품. 문 너머에 있는 작품을 볼 수 있도록 만든 두 개의 구멍]


실제 '에땅 도네'는 낡은 문이 설치돼 있고, 그 문에 두 개의 구멍이 뚫려 있어 문 너머를 들여다볼 수 있다. 안들 들여다보면 옷을 벗은 여인이 자신의 나체를 등불로 비추고 있는 형상이 보인다. 마치 창호지를 침 묻힌 손가락으로 구멍을 뚫고 신혼부부의 첫날밤을 들여다보듯 묘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뒤샹은 박음질로 회화를 비틀고, 레디메이드로 조각을 비틀고, 복제로 원본이라는 개념을 비틀어 새로운 예술의 정의를 만들어 냈다.

100년 전 소변기로 작품을 만들었던 '마르셀 뒤샹'과 '조영남의 대작'이 명확히 같은 상황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예술의 개념은 고정적인 것에 아니라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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