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우의 미중관계 大분석] ⑥중국은 美와 어떤 관계를 원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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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우 경희대 국제정치학 교수
입력 2018-12-26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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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에 美 '최대위협'인 동시에 대화·협상으로 갈등 피해야 할 대상

 

[사진=바이두]



중국의 ‘신형 대국 국제관계’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지난 2005년 중국 공산당교의 전문가에 의해 담론화되고 2010년 중국 정부가 미국을 겨냥해 설정한 중국의 대국 관계 프레임이다. '대국 간 상호 존중과 협력을 통해 윈-윈하자'는 게 핵심 내용임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간과된 것은 전제조건이다. 신형 대국관계는 '비동맹, 불대항과 제3국을 겨냥하지 않는다’는 전제를 기반으로 한다. 이는 과거 냉전시기 중국 외교에서 가장 강조됐던 원칙이기도 하다. 중국이 제시한 대국관계 프레임과 이를 뒷받침하는 전제조건은 오늘날 중국이 미국과 어떻게 지내고자 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이론적 개념으로 주목할 만하다. 

중국 공산당은 중화인민공화국 이전부터 미국과 우호적으로 잘 지내고 싶다는 염원이 있었다. 당시에도 미국은 적대시하거나 절교하고픈 대상이 아니었다. 오히려 교류와 협상을 통해 최대한의 이익을 취할 수 있는 대상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중국 공산당은 국민당과의 내전에서 승기를 잡기 시작한 1949년 초부터 1950년 1월 초까지 미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할지를 두고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외교관계 수립의 가능성까지 타진됐다.

중국 공산당은 미국으로부터 국가경제 건설에 필요한 지원을 받고 싶었다. 즉, 정치적으로는 완전한 외교관계를 수립할 수 없더라도 최소한 경제적으로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유지하고자 했다. 

미국도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했다. 실제로 미국은 국민당이 패전하자 이들에게서 등을 돌리기도 했다. 국민당 정권 초기에 미국의 경제·국방 지원 예산이 대폭 삭감된 것이 대표적이다. 당시 미국이 극동지역의 방어선으로 획정한 일명 ‘애치슨(Acheson)라인’에서 대만이 배제된 것도 이를 입증한다.

그러던 미국이 다시 중국에 등을 돌린 결정적 이유는 한국전쟁 참전이었다. 이후 미국은 대만과의 동맹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1969년 중국이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라는 결단을 내리기까지 미국에 대한 입장은 이중적이었다. 제국주의 관념에서 볼 때 미국은 중국의 국가생존에 있어 최대 위협국이자 적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미국은 '침략 야욕’을 억제하고 또 다른 전쟁을 최대한 막기 위한 협상 대상국이었다.

중국의 대미협상 의지는 한국전쟁의 경험과 교훈에서 싹텄다. 미국과 전쟁을 겪고 대외적으로 ‘항미원조(抗美援朝, 미국에 저항하며 조선을 돕다)의 승리'를 공식 선언했지만 중국의 출혈은 엄청났다. 40만명 이상의 사상자를 기록했고 대만 통일이나 국가재건 사업 등이 모두 지연됐다.

미국과의 소통이 어려워지면서 참전이 불가피했던 '한국전쟁'에서 얻은 역사적 교훈은 중국의 전략적 판단과 사고의 근간 형성에 반면교사로 작용했다.

한국전쟁의 참전으로 중국이 미국과 어떤 관계를 맺고 싶은지, 구체적인 그림이 사실상 확정되었다. 중국에게 미국은 최대 위협인 동시에 중국 통일이라는 최대 과업의 가장 큰 훼방꾼이다. 이를 극복하고 중국의 통일, 재건·부흥의 꿈을 이루려면 미국과의 직접적인 갈등을 최대한 피하고 대화와 협상을 통해 평화롭게 갈등 요소를 해결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혔다.

이를 토대로 중국은 1955년부터 미국의 대사급 회담 초대에 응했다. 미·중 양국이 불필요한 오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보다 원활하고 직접적인 대화 기제가 필요하다는 점에 인식을 같이한 결과였다.

물론 회담은 순탄하지 않았다. 몇 년간 소강상태도 있었지만 재개되면 하루가 멀다하고 연일 열리기도 했다. 그렇다고 미·중 양국 간에 신뢰가 생긴 것은 아니었다. 두 나라 모두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다만 제3자나 언론을 통해 통·번역되는 자료보다는 직접 대면해 소통하는 것이 불필요한 오해 소지를 줄일 수 있다는 사실을 강하게 신뢰했다.

중국은 미국과의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국가발전을 위해 협력하기를 희망한다. 그럼에도 세 가지 목표와 원칙을 견지한다. 첫째, 중국 주변지역에서 미국 세력을 완전히 척결하는 것이다. 이는 일찍이 1951년에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를 통해 등장했다.

당시 그는 ‘아시아의 일은 아시아인이 관리해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했다. 미국의 개입과 영향력을 공식적으로 반대한 것이었다. 이는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2013년에 선언한 ‘신아시아 안보 개념’의 원천이기도 하다.

실제로 중국은 인도차이나 반도와 대만에서 미국을 어느 정도 밀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제 남은 건 한국과 일본이다. 그러나 미·일동맹을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과 정상 국가화의 제어 장치로 인정하는 한 일본에서의 미국 퇴출을 강력히 요구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과 미국 문제는 평화협정이 정전협정을 대체하는 날에 자동적으로 해결될 것을 확신하고 있다.

둘째는 미·중 양국관계에 있어 ‘평화·공존 5항 원칙’의 관철이다. 이 원칙은 1954년부터 중국 외교의 중추로 견지됐다. 모든 나라와의 수교 성명서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중국의 요구사항이기도 하다.

'영토 완정과 주권을 인정하면서 내정 간섭을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서로 침략하지 않고 호혜상생의 관계를 유지한다. 이를 준수하면 평화 공존이 가능하다'는 내용으로 이는 중국의 오랜 신념이다.

마지막은 ‘핵심이익’을 존중하는 것이다. 중국은 영토 완정과 주권 문제에 목숨을 건다. 중국 역사가 통일 이야기로 도배된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2011년에 ‘핵심이익’ 개념이 처음으로 등장했고 중국의 영토 완정의 와해나 당의 지도력과 국가발전 권리를 위해하여 국가체제 붕괴를 유발하는 모든 요소를 위협 요인으로 정의했다.

중국은 핵심이익의 수호를 위해 무력도 불사하겠다는 결의를 이미 수차례 밝혔다. 또한 중국의 핵심이익을 존중해야지만 중국과의 전쟁을 피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결국 중국은 미국과 평화공존을 원하고 이를 위한 충족조건을 확실히 제시한 상태다. 하지만 이는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 속에서 이루기 쉬운 꿈이 아니다. 2014년 해외공관장회의에서 중국이 앞으로 100년 동안 ‘도광양회, 유소작위’의 견지와 미국 중심 질서에 순응 필요성을 강조한 배경을 여기서 유추할 수 있다. 중국이 미국에 ‘반응적인 국가(reactionary state)’로 대화와 협력을 계속 모색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주재우 경희대학교 국제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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